[지정우 칼럼] ‘아빠건축가의 다른 시각으로 세상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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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우 건축가
입력 2020-04-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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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세계 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에서 주인공이자 아빠인 귀도 오레피체는 아들인 조슈에 오레피체와 함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뒤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일부러 더 유쾌하게 행동을 한다.

특히 자신이 총살을 당하러 가는 순간에도 숨어 있던 아이가 달려 나오지 않도록 마치 게임인 듯 과장되게 걸으며 골목으로 사라진 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조슈에는 아빠가 말한 게임에 이긴 것으로 알고 연합군이 들어온 후 헤어졌던 엄마를 만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지금, 다시 이 영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도시에서는 세계대전의 포화가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후 거리에 나온 사람들 가운데는 힘든 어른들도 많았지만 어린이들 또한 별다른 환경과 보호를 제공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서 놀게 되었다.

폐허로 남은 도시 속에서 아이들은 이런저런 건물 잔해들을 모아서 그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하며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을 붙여 태워가며 놀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놀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런 전쟁 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이후 ‘모험 놀이터(Adventure Playground)’라는 이름으로 발전되고 필자와 같은, 놀이터를 짓는 건축가와 조경가·아티스트들에 의해서 1960, 70년대에 다양한 형식의 놀이풍경(Playscape)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재난은 어른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어린이에게는 어떤 시간, 어떤 풍경으로 기억될까?

어른들은 재난의 상황변화와 그 원인 및 해결책 등에 대해서 최소한 정보라도 제공받으며 스스로 판단하기도, 분석하기도 할 텐데 어린이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또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어른보다 더한 트라우마로 평생 남을 수도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어른들은 모르는) 노력으로 다른 분야가 발전할 수도 있겠다.

십수년 전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병원에서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시며 당신이 어릴 때의 기억을 말씀하셨다. 6·25전쟁 때 집 마당에 떨어진 포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본 기억에 대해. 그 말씀을 듣고 그 기억을 평생 담고 살아오시며 삶의 여러 순간들에 대처해 나가셨음을 느꼈다. 또 그 기억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는 특히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이 누적되어 만든 재해가 많았는데, 어제까지 잘 지나다니던 성수대교가 하루아침에 끊어져 내린 것, 거대한 욕망의 상자였던 삼풍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을 비롯하여 최근의 세월호까지. 그런 재해들은 그 원인이 되었던 지나간 시간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데 어른들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특별히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지혜를 모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지금의 재난인 코로나19는 이전의 전쟁이나 인재(人災)들에 비해 훨씬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일상적인 불안감을 동반하고 있다. 아이들도 개학이 계속 연기되며 학교를 언제 가게 될지 알 수가 없고, 개학을 하더라도 당분간은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도 헷갈리는데 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이 더 어려울 수 있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과 교실 안의 선생님·친구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모습은 그들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몇 년 전 메르스 감염 위험이 있었을 때, 어린이들과 뮤지엄에서 어린이 건축프로그램 워크숍을 진행하며 강사인 필자와 어린이들 모두 마스크를 쓴 채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목소리는 전달할 수 있지만 표정을 나타낼 수 없어서 아이들도 더 긴장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만 남기고 얼굴의 3분의2 정도를 가리게 되는 마스크의 특성 때문에 서구의 많은 공포·액션 영화에서는 입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를 쓴 인물이 악당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의 문화에선 복면이 의로운 일을 하는 상징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방한 마스크를 쓰는 문화이기도 했다. 최근 미세먼지로 마스크 자체가 어린이들에게도 익숙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오랜 기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풍경이 낯섦을 넘어서 아이들에게 공포로 자리잡지 않게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빠 귀도의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무장한, 애쓰는 우리 의료진들의 눈 미소가 '마스크는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헌신과 극복의 상징'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잘 전할 필요가 있겠다. 자신들의 놀이터를 스스로 만들던 아이들처럼 그것을 자양분 삼아 우리 환경을 변화시킬 그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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