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새말']정신 차린 당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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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이사장
입력 2020-01-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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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 기획담론]'민심의 계절' 4월로 가는 대한민국 정치에게 '품격'을 묻다

오는 4월 15일 실시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 17일 경기 의왕시 한 상가 건물에 의왕·과천 선거구 예비후보들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 여당은 복고정당, 미래 제시는 없어··· 헌법 무시하는 무지와 독주
# 야당 통합, 기능적 통합으론 곧 다시 찢어져··· '가치의 통합' 절실
# 정당다운 정당 없는 나라··· '정신'을 못 가진 정치의 미숙과 비극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의식을 잃지 말라는 뜻 정도이겠지만, 여기서 ‘정신’이 함축하는 의미의 넓이나 깊이는 좁지도 않고 얕지도 않다. 100년 가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몇 백년 가는 대학들은 있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 그럴까? 정신이다.

기업에서는 정신보다 이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대학에서는 이익보다 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신을 유지하는 대학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보다 길게 가는 이유이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철학이나 비전과 같이 정신적인 가치로 결속된 기업이 그러지 않은 기업들보다 더 성장하고 오래간다. 대학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난다. 자본이 정신의 지배를 받는 대학은 성장하고, 정신이 자본의 지배를 받는 대학은 쪼그라든다. 자본의 의미와 가치를 소홀하게 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정신을 차리느냐 안 차리느냐는 수명과 성취에 거대한 격차를 만든다. 하지만, 본질을 지키는 일에 훈련되지 않은 채 기능에 빠진 삶을 살다 보면, 이런 사실을 알기 어렵다.

목표에 집중하는 삶과 목적에 집중하는 삶 사이에도 큰 격차가 난다. 목표와 목적 사이에 있는 차이는 다름이 아니라 정신이 어느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가 결정한다. 학생도 꿈을 가진 상태에서 공부하는지, 아니면 그냥 성적이나 대학 합격을 전부로 생각하는 상태에서 공부하는지가 인생 전체의 격차를 만들 수 있다. 알기 쉽지 않지만, 정신을 차리느냐 안 차리느냐가 모든 일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는 것은 맞는다. 오죽하면,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겠는가. 정신은 꿈이기도 하고, 비전이기도 하고, 목적이기도 하고, 본질적인 가치이기도 하고, 사상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사상무장이나 의식화가 관건이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는 효과가 다른 일에서보다 더 직접적이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말들이 많다. 민주당의 독주에서는 헌법 정신마저도 눈 아래로 깔아보는 무지와 오만이 보인다. 자신이 타도하려고 했던 대상들에게 덮어씌웠던 모자를 자신이 그대로 다시 쓰는 반항아적인 면만 남고 혁명가의 수준에 닿는 면모는 없다.

민주당은 또 하나의 복고 정당이지 미래적인 정치 세력은 이미 아닌 것 같다. 물론 한국당도 탐욕과 무능과 복고 이외에 무엇이 남았는지 알 길이 없다. 한국당이 얼마나 반시대적인가 하는 비판은 날이 새도록 해도 다 하지 못할 정도다. 미래를 향한 정치 복원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둘 다 수준 이하인 것은 맞는다. 선뜻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비극이다. 다른 군소 정당들 가운데도 이보다 나은 정당이 없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당다운 정당이 있어본 적이 없다. 한국당의 나이가 이제 겨우 세 살이다. 민주당의 나이는 이제 겨우 네 살이다. 대한민국 정당들은 다 이렇다. 왜 이리 수명들이 짧을까? 정신은 없고, 기능만 있기 때문이다. 기능 속에서 이뤄지는 정치 행위가 기능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정치의 복원은 제대로 정신을 갖춘 정당이 출현해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있는 정당들은 어떤 정당도 아직 정당답지 않다. 정당답지 않은 정당이 하는 정치가 정치다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우리는 정신을 가진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둘 다 이런 상황인데도 언론에 공개되는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의 지금까지의 지지율에는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지속적인 차이도 사상의 유무, 즉 정신의 유무가 결정한다. 민주당에는 그것의 내용이 어떠하든지 간에 당의 결속을 강화하는 접착제로서의 정신이 있다. 주체사상이다. 아니면 최소한 주체사상의 경험이거나 기억이다. 주체사상 속에서 살았던, 주사파로서의 활동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당의 핵심을 장악하고, 권력의 중추를 맡게 된 것은 일의 형편상 당연하다. 대한민국 권력에 주체사상의 흔적이 있고, 주도 세력이 주사파인 것이 황당한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다.

국민들도 '기능'을 살았지 본질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상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따질 사고력은 이미 마비된 지 오래다. 정치꾼들이나 국민의 대다수가 모두 진영에 갇혀서 핏발을 세우느라 사고력을 상실했다. 심지어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진영의 선봉대 역할을 하지, 논리나 가치를 살피는 세심한 지성은 거세되었다.

어쨌든 민주당에는 접착제로서의 사상 혹은 그 사상의 기억이 공유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민주당의 현실적인 힘이다. 한국당에는 사상이 없다. 비전도 없고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 능력도 없다. 정신이 없는 것이다. 사상 내용의 선악(善惡)이나 심천(深淺)은 나중 일이다. 우선은 사상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사상무장이 된 그룹이 있는 집단과 그것이 없는 집단 사이의 싸움에서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는 꼴이다. 접착제가 발라진 덩어리를 접착제가 발라지지 않은 덩어리가 이기는 일은 없다.

정상적이거나 수준이 어느 정도만 되는 정치 환경이라면 지금 한국적 상황에서 야당 통합은 이치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이 되지 않은 정치 환경에서는 통합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기능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그 수준에 맞는 연대를 대단한 것으로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통합이 될 수도 있는 수준의 정치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에서는 통합이라고 해봐야 정신적 접착제가 발라지지 않은 기능적인 통합 이상이 되기 어렵다. 상황에 밀려 억지로 하는 기능적인 통합이기 때문에 별 의미도 없고 사후에 다시 흩어진다. 당이 깨지고, 모이고 하는 일에서 기능적인 동작을 넘어선 어떤 정신적인 가치나 사상의 빛을 발견할 수 없다. 종내에는 다 헛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닦은 실력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우선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만 올리라고 계속 강요해 왔던 우리 교육의 결과이다. 기능적인 삶을 사는 것만 배웠지, 본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더 높은 삶을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다.

새로 등장하려는 정치 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은 강하지만, 방향을 가리키는 사상까지는 마련하지 못한다. 고작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커밍아웃하는 정도로 자신들이 내건 깃발의 진실성을 표현할 뿐이다. 이런 것이 아니면, 기능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할 뿐이다. 본질적 가치나 사상의 추구 혹은 꿈을 꾸는 일보다는 먼저 눈앞에 닥친 기능적인 일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라고 교육받은 결과이다. 정치는 정책으로 실현된다.

새로운 인재 영입도 복고적이거나 우스울 뿐이다. 정치의 본질인 정책 능력은 전혀 살피지 않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 혹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기능만을 살피고 있다.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왜 공부하는지 묻지도 않고 성적만 추구하였듯이 왜 정치를 하는지 묻지도 않고 표만 구하는 일들이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늪에 빠진 채 살 것이며, 국가의 비효율은 계속 쌓여만 갈 것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하고 시도하는 일들이 매우 활발해진 것 같다. 그러나 기능적인 새로움은 이제 새로움이 아니다. 시대의 급소를 겨누는 사상의 접착제가 발라진 정치 집단의 출현이 시급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서 한 단계 상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늪에 가둬두고서 거기가 늪이 아니라고 하는 거짓말에는 이제 지쳤기 때문이다.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건명원 초대 원장,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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