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금융위원장만 보인 거래소 개장식

조준영 증권부 부장입력 : 2019-02-07 06:00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2002년 9월 11일 정오에야 개장했다. 평소보다 2시간 30분이 늦었다. '9·11' 1주기 추모식이 예상보다 길어져서다. 당시 나스닥만 추모식 도중에 문을 여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전까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제각기 열린 적은 없었다. 나스닥은 전산을 이유로 댔다. 모든 업무가 전산화돼 있어 미리 정한 시간에 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런 나스닥과 달리 뉴욕증권거래소는 구두호가로 매매를 성사시킨다. 추모식을 마칠 때까지 모든 뉴욕증권거래소 중개인이 호가를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변에 해당한다. 누구나 머리를 끄덕일 만한 일이 아니라면 미국 주식시장은 제때 열려왔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은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2일에도 평소와 똑같이 오전 9시 30분 개장했다. 올해 휴장하거나 조기 폐장하는 날이 있기는 해도 모두 그럴 만한 기념일이다. 예를 들면 1월 21일 마틴 루서 킹 기념일에 문을 닫았었고, 이달에는 오는 18일 조지 워싱턴 기념일에 휴장한다. 3시간쯤 일찍 폐장하는 날도 있다. 독립기념일 전날인 7월 3일과 성탄절 전야인 12월 24일이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1월 2일 오전 10시 시초가를 뿌렸다. 신년 개장식을 오전 9시 30분부터 30분가량 여느라 평소보다 1시간 늦게 개장했다. 정지원 거래소 이사장은 가장 먼저 나와 손님을 맞느라 바빴다.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질 만큼 추웠지만, 행사장 안은 9시도 안 돼 꽉 차 있었다. 행사장에 원형으로 줄지어 늘어선 수많은 참석자와 하나하나 악수하면서 인사를 마치니 9시 30분쯤 됐다. 그제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도착했고, 행사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거래소 개장식은 해마다 한결같았다. 연합뉴스가 1991년 첫 거래일인 1월 3일 쓴 기사를 보았다. 그날 주식시장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단일장으로 열렸다. 그 무렵에는 오전장과 오후장이 나뉘어 있었다. 즉, 그날만 이런 구분 없이 지각 개장에 조기 폐장을 했다는 얘기다. 개장식 때문이었다. 당시 박종석 증권감독원장과 고병우 거래소 이사장이 제각기 치사와 개장사를 맡았다. 그날 치사에는 "개인과 기관 투자자 확대로 자본시장 수요기반을 확충하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담보부족(깡통) 계좌를 정리하는 바람에 망연자실하는 투자자가 셀 수 없이 많았던 때였다.

이번 개장식도 비슷해 보였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유관기관에서 온 수많은 참석자가 한참 도열했다가 최종구 위원장을 맞았다. 그와 정지원 이사장은 모두 모험자본 공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자본시장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모험자본을 대는 일이다. 새로운 모습이 없지는 않았다. 새해 운수를 점치는 쪽지를 담은 바구니가 개장식에 등장했다. 참석자가 뽑은 쪽지에는 "가렸던 구름이 물러나고 붉은 태양이 솟을 정도로 운수대통"이라거나 "생각지 않은 곳에서 재물이 들어온다"와 같은 얘기가 적혀 있었다.

그때는 맞았더라도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애초 정부가 나서서 주식시장을 만들었고, 관치 덕분에 일찍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개장식을 앞으로도 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3위 주식시장을 가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신년 연휴를 마친 1월 4일 닛케이지수 시초가를 평소처럼 오전 9시 뿌렸다. 미국이나 일본이 안 하니 그만두라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이유가 안 보여서 그렇다. 이제는 투자자 대부분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사고판다. 알릴 게 있다면 거래소가 시장공지를 띄울 수도 있다. 개장식 말잔치가 시장을 늦게 열 만한 명분은 아니다. 도리어 정시 개장이 투자자에게는 와닿을 것이다.

증권가 분위기도 개장식 신년운수와는 차이가 크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증권사가 많아졌다. 가장 큰 미래에셋대우가 통합(2016년 미래에셋증권·대우증권 합병) 이래 처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신청자 수가 300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역시 대형사인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움츠러드는 바람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증권사 대신 돈을 벌어줄 수는 없다. 경기가 꺾이는 마당에는 사람을 줄이는 회사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고민해야 할 대목은 당국이 밥그릇마저 찬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조사가 증권가 인ㆍ허가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적으로 승수효과가 높은 초대형 투자은행 사업은 사실상 멈추었다.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때다. 제재를 엄격하게 하더라도 금융업 육성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신년운수에 등장하는 구름이 정부여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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