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쌍둥이에게만 책임을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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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8-11-1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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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오늘 아침 신문도 온통 쌍둥이 자매 소식이다. ‘아버지 파면, 쌍둥이는 퇴학’, ‘암기장엔 정답이 빼곡’, ‘아버지와 쌍둥이 모두 기소의견 송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착잡하다. 여고 2학년이면 17살이다. 예민한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었다. 문득 쌍둥이 자매 앞날이 염려된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들은 철저히 망가졌을 것이다. 웃음은 사라졌고, 수런대는 비난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 싶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사건은 단순하다.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시험지를 빼돌려 두 딸 성적을 조작했다. 잘못된 부정(父情)이다.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우리 언론은 왜 그렇게 그악스럽고, 경찰 수사는 거친지 못마땅하다. 사회적 분노에 편승한 수사와 경마식 보도가 그렇다. 사람에게만 문제를 찾을 뿐, 근본 원인을 살피는 데 소홀하다는 느낌이다. ‘아빠 없는 쌍둥이 자매 성적 뚝’. 2학기 시험 성적 결과를 보도한 신문 제목이다. 또 다른 언론은 자퇴서 제출을 징계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단정했다. 이렇게까지 조롱하고 난도질을 해야만 분이 풀리는 것인지 답답하다. 잘못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당사자에게만 화살을 쏘는 손쉬운 분노에 대한 가벼움이다. 근본 원인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험지 유출 사건은 대학 서열화와 성적 지상주의가 빚은 단면이다. 일류 대학-좋은 직장-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그것이다. 우리사회는 단 한 차례 시험으로 인생이 좌우된다. 명문 대학 진학은 첫 번째 관문이다. ‘SKY 서성한 중경외시’로 이어지는 대학 서열화는 정점에 있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하고, 서열화함으로써 견고한 학벌이란 성을 쌓았다. 누구나 아는 병폐지만 누구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학벌 기득권은 적당히 눈감고, 문제 제기는 학력 콤플렉스로 치부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릇된 부정(父情)은 부정(不正)한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미국 보스턴, 영국 옥스퍼드,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다. 또 유럽인들 사이에 스웨덴 웁살라와 핀란드 오울루도 꽤 이름 높다. 이들 도시는 수도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다. 특별하게 회자되는 이유는 이름난 특성화 대학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대학으로 분류된다.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으로 학위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입지적 우위를 누린다. 지방은 황폐화되고 수도권은 몸살을 앓는 이유다. 기형적인 국가 발전은 그 결과물이다.

지방대학을 육성하고 대학 서열화를 바로잡겠다는 다짐은 정권 때마다 시도됐다. 그러나 정책은 번번이 길을 잃었다. 예산과 정책이 수도권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 그것도 소위 명문 대학 독식은 심각하다. 최근 5년간(2013~2017년) 재정 지원 실태가 이를 방증한다. 서울지역 사립대 9곳이 지방 거점국립대 9곳보다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갔다. 9개 사립대학에는 5년 동안 4000억원이 집중됐다. 반면 지방 거점국립대는 2900억원에 그쳤다. 특히 ‘SKY’는 전체 교육재정 가운데 10%를 독식했다. 서울대, 연대, 고대는 5년 동안 무려 6조1161억원을 쓸어담았다. 학생 비율은 3.5%에 불과한데 국가 예산은 3배 이상이다. 과도한 SKY 사랑이다. 정부가 나서서 대학 서열화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방 국립대학 A총장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없어질 것”이라며 지방대학 소멸을 우려했다. 대학 서열화가 계속되는 한 그럴 개연성은 높다. 최근 정부는 강남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에 홍역을 앓았다.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누구도 근본적으로 해소됐다고 믿지 않는다. 강남 집값이 비싼 이유는 주거환경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다. 명문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은 교육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성적 지상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바로잡지 않는 한 강남 부동산 신화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지방은 말라간다.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라는 책은 대학 서열화를 변형된 신분사회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인도 카스트 제도와 다른 게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크게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학벌사회는 슬픈 현실이다. 출신 대학 졸업장이 평생을 먹고사는 면허증이 된 지 오래다. 대학별로 기능화·특성화하는 교육혁신을 고민할 때다. 대학 서열화를 바로잡지 않으면 제2, 제3의 시험지 유출 사건을 배제하기 어렵다. 농촌진흥청이 소재한 전북대학은 농업 분야에서, 예술인을 양성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분야에서,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성균관대학은 유교철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가 되어야 한다. 정책과 자원은 그렇게 집중 지원하는 게 맞는다.

다시 쌍둥이 자매를 생각한다. 쌍둥이 자매도 우리 딸이다. 이제 비난과 분노를 멈추고 제도 개선을 위해 고민하자. 쌍둥이도 실패에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분노를 넘어설 때 대학 서열화에 억눌린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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