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남는 것은 오직 해골뿐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입력 : 2018-01-22 06:00

[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동양과 달리 서양 예술에서 해골(skull)은 매우 친숙한 오브제다. 서양 예술사를 두루 공부하다 보면 옛날과 지금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작품에서 해골이 마치 정물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1993년에 나왔던 팀 버턴(Tim Burton) 감독의 컬트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에서 남녀 해골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에게 해골은 ‘이웃집 친구’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들도 해골 그림 걸작을 꽤 남겼다. 우선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죽음과 삶’이라는 작품은 1911년 로마 국제 예술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클림트 특유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가족이 눈을 감고 있는 한편에서 사제복을 입은 해골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다.

우리나라 여성들 사이에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도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희망의 부재(Without Hope)'라는 그림도 해골이 올라탄 대형 깔때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을 누르고 있다. 한때 그녀의 남편이었던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가 그린 '일요일 오전 알마에다 공원의 꿈(Dream of a Sunday Afternoon in Almaeda Park)'은 거대한 벽화의 일부분이다. 이 그림에서는 해골 여성이 정장을 차려 입고 젊은 디에고의 손을 잡고 서 있는데, 해골 옆 뒤에는 프리다 칼로가 전면을 응시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해골은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매우 지속적인 예술 모티프였다. 아즈텍 사람들은 해골을 묘사한 돌 조각과 펜던트 목걸이 등으로 부활을 약속했다. 스페인 점령기에는 ‘해골 예술’이 탄압을 당했지만, 독립을 쟁취하자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전통문화의 상징으로 재등장했다.

당연하게 여기겠지만 뭉크(Edvard Munch)는 ‘죽음과의 키스’라는 작품에서 해골과 함께 누워 있는 여인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매우 불편한 관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하리만큼 안 알려진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 ‘불타는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은 제목 그대로 담배를 앙다물고 있는 이빨의 해골이 매우 섬뜩하다. 자신의 깊은 절망을 표현했다고도 하고, 자신의 작품성을 알아주지 않는 기성 화단에 대한 도전적인 반발이라고도 해석된다.

1968년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인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저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거리의 매춘부였던 솔라니스는 SCUM(남자를 괴멸하기 위한 단체)의 성명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워홀에게 자신이 쓴 연극 '빌어먹을'의 제작을 부탁했지만, 워홀은 이 요청을 거절했고 극본도 돌려주지 않았다. 솔라니스는 워홀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극본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워홀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영화 '나는 남자다'에서 배역 하나를 맡겼지만, 이런 회유에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그를 향해 총을 쏘았고 두 발의 총탄이 워홀의 폐와 위, 간 그리고 목을 관통했다. 앤디 워홀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당연히 죽음이라는 주제에 짓눌렸다. 그의 이런 심리 상태가 ‘해골’이란 1976년 판화 연작으로 남겨졌다.

포르투갈 에보라(Evora)의 상 프란시스코 성당(Igreja de São Francisco)은 사람 해골로 벽을 덮은 ‘납골 예배실’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제단 뒤에 있는 작은 공간의 벽과 기둥에는 5000여명의 뼈와 해골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성당을 비롯해 로마나 프라하 등 유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납골성당은 중세시대의 죽음에 대한 지배적 관념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관념의 발현이다.

중세시대 성당과 교회 주변은 항상 시신으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바로 그런 곳 주변에 식당과 주점과 홍등가가 있었다. 사람들의 신앙과 사교생활, 일상과 일탈이 늘 주검 곁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현대인의 생각처럼 서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다. 상 프란시스코 성당 예배실 입구에 ‘Nós ossos que aqu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라는, ‘우리의 뼈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으스스한 문구가 쓰여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씨와 관련된 온갖 추문을 보고 들으면서 ‘그토록 재산이 많으면서 무슨 욕심을 저렇게 추악하게 부렸을까’, ‘그 많은 재산 지옥 갈 때 다 갖고 가려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필자만일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해골뿐이다. 해골이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이런 진리를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 외면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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