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 이야기] 북한의 '담담타타', 대한민국은 역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국공내전에서 김정은·김여정의 대남 전략까지

  • 우크라이나·이란 전쟁과 대만해협의 위기가 한반도에 보내는 경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억제할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국은 그 힘을 언제 사용하고 언제 절제해야 하는지 아는 나라다. 평화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힘으로 지키고 지혜로 완성하는 것이다.

2026년 10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언어가 등장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대한민국을 향해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 군부의 고위 인사들도 군사적 대응을 거론하고 있다. 북한은 이달 중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방침까지 예고했다. 남북 사이에 어렵게 유지돼 온 최소한의 긴장 관리 장치마저 다시 흔들리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북한이 위협하면 우리도 더 강한 위협으로 맞서야 하는가. 북한이 대화를 제안하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하는가. 군사적 긴장을 피하기 위해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 평화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맞서는 것이 평화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오늘의 남북관계만 들여다보아서는 부족하다. 역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중국 대륙에서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벌였던 국공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전쟁,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전쟁과 평화는 결코 서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를 말하는 정치의 실패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평화는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힘에서 유지되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도, 평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아니다. 역사를 읽는 통찰력과 현실을 판단하는 냉철함,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장제스가 잃어버린 중국 대륙, 협상과 전쟁의 이중주

1949년 중국 대륙의 운명이 바뀌었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했고,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장제스는 대만으로 이동했다.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국민당 정권은 역사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장제스는 군사교육을 받고 국민혁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마오쩌둥은 농민을 혁명의 기반으로 삼아 공산당의 조직과 군사력을 발전시킨 혁명가였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정치체제와 사회질서, 그리고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충돌이었다.

두 세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만 벌인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국공합작을 추진했고, 항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중국의 정치적 미래를 놓고 협상했다. 1945년 충칭에서는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직접 만났다. 협상의 결과로 평화적 국가 건설을 위한 합의가 발표됐지만 양측의 군사적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전면적인 국공내전으로 이어졌다.

이 역사에서 흥미로운 전략적 표현이 등장한다.

'담담타타(談談打打), 타타담담(打打談談)'.

대화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대화한다는 뜻이다. 협상과 무력행사를 별개의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상호 보완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상황이 불리하면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벌고 상대방의 압박을 완화한다. 유리한 국면에서는 군사적 행동을 강화해 협상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 한다. 협상은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라 때로는 전쟁을 수행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이 표현을 장제스가 생애 말년에 남긴 자서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이유로 설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의 전직 정치인이 이를 인용해 공산주의의 협상전술을 설명한 글도 회자된다. 다만 장제스의 특정 자서전에 이 문구가 실제로 실렸는지, 어떤 정치인이 어떤 원문을 인용했는지는 문헌 확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표현을 장제스의 확정적인 유언이나 직접 인용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 전략적 개념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협상과 무력행사를 교차시키는 전술은 국공내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중국 공산당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여러 국가와 정치세력은 협상과 군사적 압박을 동시에 활용해 왔다.

더구나 장제스의 패배를 공산당의 협상전술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리다. 국민당 정부의 부패, 경제적 혼란과 인플레이션, 농민의 지지 이탈, 군사전략의 실패, 공산당의 조직력과 토지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대한민국이 이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공산주의자는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는 단순한 이념적 결론이 아니다. 상대방이 협상을 제안할 때 그 말의 진정성뿐 아니라 군사적 행동과 정치적 목적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합의의 이행과 검증, 그리고 합의를 위반했을 때 감당해야 할 책임을 통해 실질적인 평화로 발전한다.


◆북한의 대남 전략, 대화와 위협의 반복

한반도 현대사를 돌아보면 대화와 긴장, 화해와 충돌이 반복돼 왔다.

1972년 남북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1992년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됐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도 평양을 방문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과 평양에서 만났다. 같은 해 싱가포르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그 순간마다 한반도에는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남북의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이 커졌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계속됐다. 남북의 군사적 대립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2020년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후 북한은 대한민국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적대적인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사실과 한반도의 평화가 실질적으로 강화됐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공동선언이 발표됐다는 사실과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동일하지 않다.

정상회담은 외교적 성과일 수 있다. 대화는 긴장 완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합의가 이행됐는지, 국민의 안전이 강화됐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북한이 대화를 제안한다고 해서 그 제안을 모두 기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북한이 대화를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확인됐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북한의 말과 행동을 함께 보아야 한다. 선언과 군사적 준비를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 대화의 목적과 결과를 구별해야 한다.

이것이 국공내전의 역사에서 오늘의 한반도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김여정의 위협, 무엇을 노리는가

최근 김여정의 발언은 단순한 선전전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요새화를 강조하는 것은 남북의 적대적 관계를 군사적 현실로 굳히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더 이상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려 한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경계를 영구적인 국경으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전략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북한 내부의 정치적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면 주민에게 군사적 긴장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체제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기 쉬워진다.

둘째는 대한민국의 대응을 시험하는 것이다. 북한이 확성기 방송과 군사적 위협을 강화했을 때 한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살피고, 그 반응을 다음 행동의 판단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는 남한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자극하는 효과다. 북한의 위협이 강해질수록 한국 정치권에서는 강경 대응과 대화 추진을 둘러싼 논쟁이 커질 수 있다.

넷째는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 계산이다. 북한은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별도의 협상 공간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것은 북한의 행동에 대한 전략적 분석이다. 북한 지도부의 내부 의도가 모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동시에 과장하지도 않는 것이다.

북한의 거친 발언이 반드시 전면전의 예고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친 발언이 단순한 허풍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국가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의 힘을 두려워하는 것만이 아니다. 적의 의도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정부가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북한도 같은 의미의 평화를 원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쟁을 결심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정확한 정보와 냉정한 분석, 일관된 대응 원칙이 필요하다.


◆정동영 장관에게 묻는다, 평화는 누구의 책임인가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의 긴장 완화와 평화적 공존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대화와 교류를 통한 갈등 해결을 강조해 왔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대화의 통로를 복원하겠다는 정책 목표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과 평화를 보장하는 정책은 다르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성과와 결과, 그리고 국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 북한은 남북의 경계를 요새화하면서 우리 군의 정당한 경계작전을 문제 삼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군이 경계를 넘을 경우 한국군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실시한다. 북한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위험한 군사활동을 벌이고 우리 군의 경고조치를 비난한다면, 정부는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우리 군의 정당한 방위활동을 보호해야 한다.

북한은 10월 21일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이달 중 접경지역 전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가동하겠다고 예고했다. 박정천 국방성 고문도 남부 국경 요새화 현장을 시찰하면서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한 반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국군은 북한의 위협에 비례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정동영 장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대화만 강조하는 것이 충분한 대응인가. 북한이 남북 간 신뢰 회복 조치를 거부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 북한의 위협을 억제할 군사적 수단과 대화의 통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 질문은 정 장관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이라는 국가적 직책에 요구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것인지는 군사적 효과와 확전 위험, 접경지역 주민의 피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방송을 재개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굴종인 것은 아니며, 재개한다고 반드시 현명한 대응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실질적인 전략이 있느냐는 점이다.

정 장관의 대화 중심 접근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반면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두 주장 모두 국민의 안전이라는 동일한 기준에서 검증해야 한다.

정부가 북한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평화만 강조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 공격의 기회로 삼아 군사적 충돌을 부추기는 것도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정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냉철함과 정책의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다.

평화는 장관의 정치적 신념을 실현하는 사업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적 의무다.


◆진보는 평화를 독점할 수 없고, 보수는 안보를 독점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오랫동안 정권의 성향에 따라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진보 정부는 대화와 교류, 경제협력과 긴장 완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보수 정부는 핵 위협에 대한 억제와 제재, 한미동맹의 군사적 대응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보수 정부에서도 남북 대화와 정상회담이 추진됐다. 진보 정부에서도 군사력 증강과 대북 제재가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화 중심 접근의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이들 정부 역시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또한 각각의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려 했다.

어느 한쪽이 평화의 유일한 수호자이고 다른 한쪽이 안보의 유일한 수호자라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진보 정부가 북한과 중국에 지나치게 우호적이고 미국과 거리를 둔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우려가 나오는 배경에는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와 한미동맹에 대한 정치적 인식 차이가 있다.

그러나 외교정책은 이미지나 구호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한미 연합방위체계가 실제로 약화됐는가. 확장억제의 신뢰가 흔들렸는가.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대한민국의 안보 원칙을 훼손했는가. 이러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정부라고 해서 모든 외교적 판단이 옳은 것도 아니다.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북한과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진보의 평화정책과 보수의 안보정책을 기계적으로 절충하는 일이 아니다. 평화와 안보를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통합하는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지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은 여당과 야당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쟁이 발생하면 피해를 입는 것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다.

따라서 국가안보의 기본 원칙만큼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주권을 지킨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한다. 군사적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둔다. 국제법과 인권의 원칙을 지킨다.

이 다섯 가지는 진보도 보수도 독점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공동 자산이다.


◆우크라이나의 비극, 평화의 약속은 왜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유럽에서 대규모 국가 간 전쟁이 다시 벌어졌다. 세계는 국제질서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이후 자국 영토에 남아 있던 핵무기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러시아로부터 주권과 기존 국경의 존중 등에 관한 안전보장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약속은 러시아의 침공을 막지 못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부다페스트 각서가 미국과 영국의 자동적인 군사개입을 보장하는 상호방위조약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동일하게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국제적 약속은 필요하지만 약속만으로 국가의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자신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전쟁은 도시와 산업시설을 파괴했고 수많은 사람을 피란민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피해는 군인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평범한 시민에게 집중됐다.

대한민국이 이 전쟁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억제력의 중요성이다. 상대방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동맹과 국제협력의 중요성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을 통해 저항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조약에 기초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다른 안보적 조건을 갖고 있다.

세 번째는 자주적인 방위능력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강한 동맹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을 지키는 일차적인 책임은 자국 정부에 있다.

네 번째는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하는 국가의 종합적인 능력이다. 현대전은 군대의 전투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생산과 에너지, 정보통신, 금융, 식량과 국민의 사기가 함께 작용한다.

다섯 번째는 전쟁을 예방하는 외교의 중요성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 승리하는 것보다 전쟁이 시작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히 강력한 무기를 많이 보유해야 한다는 교훈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복합적인 국가적 역량이 필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먼 나라의 이야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는 가깝다. 수도권에는 막대한 인구와 산업시설이 집중돼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군사적 피해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전쟁을 피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전쟁을 억제할 힘을 갖추는 것도 호전성이 아니다.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한다.


◆이란과 중동의 전쟁, 힘의 사용은 언제 정당한가

중동의 전쟁은 우크라이나와는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대립, 미국의 개입, 역내 무장세력의 활동은 현대의 전쟁이 얼마나 복잡하게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핵개발 문제와 지역 패권, 국가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상호 보복이 결합하면 군사적 충돌은 처음의 목적을 넘어 확대될 수 있다.

어떤 국가는 상대방의 군사적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제한적인 공격을 계획할 수 있다. 그러나 공격을 받은 국가는 체제의 권위와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복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 그 보복에 대한 재보복이 이루어지면 충돌은 연쇄적으로 확대된다.

여기서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나온다.

군사적 행동을 시작하는 것은 한 국가의 결정일 수 있지만, 그 행동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는 한 국가가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다.

특히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는 우발적인 충돌과 잘못된 정보, 지도자의 오판이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과 한국군의 경고방송·경고사격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확성기 방송 자체가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병력이 밀집하고 상호 위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작은 사건이 심각한 충돌로 확대될 수 있다.

중동의 전쟁은 군사력의 효용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정밀한 군사공격으로 상대방의 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군사시설의 파괴가 반드시 정치적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보복 의지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이 교훈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할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응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인가. 추가적인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내 정치적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인가.

군사적 대응은 국가의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국가의 목적이 군사적 대응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강국이자 국제무역국가다.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되면 원유와 천연가스의 공급, 해상운송과 국제금융시장에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더욱 직접적이다.

국가안보는 전쟁의 승패만을 계산하는 기술이 아니다. 국민이 전쟁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종합적인 국가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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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생성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동북아의 위험한 계산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으며 통일을 국가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대만은 독자적인 정부와 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중요한 전략적 이해관계로 보고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언제 전면적인 군사침공을 감행할 것인지, 실제로 침공을 결정할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군사적 충돌에서 여러 교훈을 얻고 있을 것이다. 첨단무기의 효과와 한계, 장기전의 비용, 국제사회의 제재, 해상봉쇄와 공급망의 중요성,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 등이 모두 분석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그러한 교훈을 반드시 대만 침공의 결심으로 연결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쟁의 위험을 높게 평가해 오히려 군사적 행동을 자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대만 문제에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전면적인 상륙작전만이 아니다. 해상봉쇄와 제한적인 군사행동, 사이버공격, 경제적 압박과 외교적 고립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대한민국이 대비해야 할 것은 하나의 전쟁 시나리오가 아니라 여러 형태의 위기다.

가장 위험한 상황 가운데 하나는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동시에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경우다.

미국의 군사적 역량이 대만해협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이 반드시 그런 행동을 선택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가능성이 낮더라도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돼 있다. 대만해협의 위기는 한국의 수출입과 금융시장, 에너지 수송과 첨단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원칙은 명확해야 한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일방적인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해야 한다.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외교적·경제적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과 협력한다고 해서 친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반중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외교는 감정적인 편 가르기가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중심축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전략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안보체계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기반이다.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방위체계, 미국의 확장억제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단순히 미국이 대한민국을 보호하는 일방적인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며 동북아의 안정과 국제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기술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한미동맹은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관계를 넘어 상호 책임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반도체, 우주와 사이버, 첨단 방산과 공급망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동맹이 강하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전략적 판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의 협력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국가이익에 기초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법치주의를 지키는 것은 미국의 요구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선택하고 발전시켜 온 국가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야 한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경제협력 상대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미국은 조약에 기초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중요한 경제·외교적 협력 상대다. 관계의 성격과 책임이 다르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전략적 외교의 출발점이다.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갈등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역사적 문제를 덮어두거나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원칙을 지키면서 미래의 협력을 발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외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흔들리는 외교가 아니라 확고한 원칙 위에서 여러 국가와 협력하는 외교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무엇이 강한가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대규모 병력과 미사일, 장사정포와 특수전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위협을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의 힘은 군사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과 기술력, 높은 교육 수준과 국제적 경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자유로운 언론과 선거, 민주적 제도와 시민사회의 역량도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통해 대한민국을 압박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합적인 국가역량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정보통신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경제적 번영의 기반인 동시에 국가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과 무인체계, 위성정보와 전자전, 인공지능 기반 정보분석이 현대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군사적 억제력과 연결하는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첨단무기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인공지능은 전쟁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전쟁의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는 첨단무기의 핵심 부품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의료와 교육,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군사기술만 뛰어난 국가가 아니다. 첨단기술을 인간의 생명과 자유, 경제적 번영과 평화를 위해 활용하는 국가다.

진정한 기술 강국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나라다.


◆북한의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대한민국 내부의 분열

장제스의 패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중국 국민당은 공산당보다 많은 병력과 우수한 장비를 보유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는 내부의 부패와 경제적 혼란, 민심의 이반으로 점차 지지 기반을 잃었다.

국가의 힘은 무기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민이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사회가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가, 지도자가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대한민국도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갈등이 심각하다.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은 때로 상대방을 협력해야 할 민주적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취급한다.

안보문제조차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이 반복된다.

한쪽은 상대를 친북이라고 비난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를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라고 공격한다. 이러한 언어가 반복될수록 국민의 불신은 커지고 국가의 통합 능력은 약화된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분열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국내의 정당한 정치적 비판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군사적 대응의 적절성을 묻는 것도 정당하다. 중요한 것은 비판이 사실과 책임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축소해서도 안 된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국민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진리와 정의, 자유는 국가안보에서도 분리될 수 없는 가치다.

진리는 북한의 위협과 우리의 대응을 사실에 기초해 판단하는 것이다. 정의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주권을 지키면서 국제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유는 외부의 군사적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잃는다면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보유해도 국가의 품격을 지킬 수 없다.


◆북한 주민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논할 때 반드시 구별해야 할 대상이 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와 군사적 도발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 모두를 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밥을 먹고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들에게도 자유와 존엄성,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북한 정권의 군사적 위협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과 생존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군사적 협상과 구별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식량과 보건, 재난 대응과 같은 문제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 다만 지원이 실제 주민에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는 단순히 남북의 군대가 서로 총을 쏘지 않는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다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력의 차이만이 아니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국가의 기본 가치로 인정하는 체제라는 점이다.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도덕적 힘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 해야 할 다섯 가지 결단

대한민국은 지금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대화의 가능성만을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째, 군사적 억제력을 확실하게 유지해야 한다. 한미 연합방위체계를 강화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감시정찰과 방어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선택할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이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군사분계선 일대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해야 한다. 남북 간 군사적 소통체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현장 지휘관의 대응 절차를 명확하게 유지해야 한다. 군사적 경계작전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도 불필요한 확전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대북정책의 성과를 정상회담이나 공동선언의 횟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개선으로 평가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줄어들었는가.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낮아졌는가. 국민의 안전이 강화됐는가. 합의의 이행을 검증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정책 평가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넷째,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외교적 균형을 관리해야 한다.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외교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일본과의 협력도 발전시켜야 한다. 대만해협의 위기와 북한의 도발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다섯째,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확대해야 한다. 대통령은 여야 지도자와 국회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정부의 대응전략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국가안보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정권의 성향을 넘어 협력할 수 있는 정치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는 서로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군사력은 외교를 뒷받침해야 하고, 외교는 군사적 충돌을 예방해야 하며, 국민의 신뢰는 두 가지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안보는 국방부만의 업무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와 군, 기업과 언론, 국민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국가경영의 핵심 과제다.


◆역사를 잊은 국가는 같은 함정에 빠진다
1949년 장제스는 중국 대륙을 잃었다. 1950년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발발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 중동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반복됐고, 대만해협에서는 강대국의 전략적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사건이지만 공통적인 교훈이 있다.

국가가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판단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국민의 신뢰를 잃을 때 위기는 커진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국공내전에서 배워야 할 것은 협상과 군사적 압박의 관계만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군사력의 중요성만이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평범한 국민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되는지에 대한 교훈이다.

중동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것은 강력한 무기의 위력만이 아니다. 군사적 충돌이 시작된 뒤 그 결과를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교훈이다.

대만해협의 위기에서 배워야 할 것은 강대국의 경쟁만이 아니다. 한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세계 경제와 국제질서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이다.

이 모든 역사의 교훈이 지금 대한민국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을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된다.

북한의 군사력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현실을 오판하는 일이다. 북한의 선전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내부의 무책임한 정치적 분열이다.

북한이 대화를 제안할 때는 대화의 목적과 조건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가할 때는 단호한 억제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평화는 힘으로 지키고 지혜로 완성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력과 기술력, 민주주의의 경험을 갖춘 국가다. 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역사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수많은 희생을 감당했다.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고 경제적 번영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의 안전과 평화 역시 누군가의 선의에만 의존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반드시 현명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도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대로 대화를 강조한다고 반드시 평화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의 군사적 위협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대화는 오히려 위험한 착각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이 두 가지 위험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김정은과 김여정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 군사적 위협으로 대한민국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핵무기와 미사일, 확성기 방송과 군사적 압박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 수도 없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평화를 추구하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 대화를 추진하되 국민의 안전을 협상의 대가로 삼지 말라. 북한의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라.

대한민국 정치권에도 요구한다. 안보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적대하는 동안 국가의 미래가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는 일에 최소한의 국가적 합의를 이루라.

무엇보다 우리 국민 스스로도 냉정해야 한다.

국가안보는 분노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평화는 감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외교는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선택의 문제다.

인간은 밥을 먹고 일을 하며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국가는 바로 그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문화를 무너뜨리며 자연을 황폐하게 만든다. 평화는 인간이 일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드는 삶의 토대다.

그러므로 국가안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쟁을 예방하고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시대에 사용됐던 '담담타타'와 '타타담담'은 오늘날에도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경고를 준다. 협상과 군사적 압박은 언제든 결합될 수 있으며, 평화의 언어가 반드시 평화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북한의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위협한다고 더 거친 위협으로 대응하는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된다. 북한이 대화를 제안한다고 정치적 성과에 매달려 서둘러 양보하는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은 자신만의 원칙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 원칙은 자유민주주의이고, 그 전략은 강력한 억제력과 책임 있는 외교이며, 그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가 강하다는 것은 군사력이 강하다는 뜻만이 아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정치가 책임 있게 작동하며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고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그러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힘을 국가적 지혜로 결집하는 일이다.

북한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을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북한의 거친 말이 아니라 역사를 잊고 현실을 오판하는 우리 자신의 무지와 분열이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강해야 한다. 그러나 강한 사람이라고 모두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을 갖추고도 절제할 줄 알고, 상대방의 위협을 정확하게 판단하면서도 대화의 가능성을 잃지 않는 국가만이 진정한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담담타타'에 끌려다니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북한의 '타타담담'을 따라 하는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된다.

강한 국방, 현명한 외교, 성숙한 민주주의,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아는 국가의 지혜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의 책임이다.

평화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힘으로 지키고, 지혜로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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