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40년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독일군이 파리로 진군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파리를 수호하기 위해 시가전 대신 파리를 통째로 넘겨줌으로써 파리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 후 나치의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가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Paris Brule-t-il)?'는 1966년 프랑스와 미국에서 제작된 전쟁 영화다. 1944년 8월 7일 히틀러는 파리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점령군 사령관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파리 수호를 결정한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법보사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수호한 김영환 장군과 장지량 대대장의 결단을 연상케 한다.
파리는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도시일 뿐만 아니라 혁명의 진원지이다. 18세 말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확립한 2개의 시민혁명이 발발했다. 1787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을 쟁취한 미국의 독립혁명은 피식민지 국가의 해방을 의미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그간 켜켜이 쌓여온 구체제(ancien régime)를 한꺼번에 내몬 시민혁명이다. 혁명은 미래의 전달자(porteur d’avenir)이다. 혁명이 추구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폭력과 폭동은 불가피하다. 국민적 욕구가 폭발하면서 그 욕구가 시대정신과 합치할 때 비로소 혁명은 실정법을 위반한 위법성을 국민적 정당성으로 치유된다.
1960년 4월 학생혁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가 송두리째 부정으로 얼룩진 데 대한 국민적 항거의 표시이다. 젊은 청년 학도들이 흘린 피에 응답한 혁명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함을 분명히 한다. 4월 학생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획을 그은 이정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학생들의 고귀한 피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드골 정부는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정권은 유지되었지만 68사태는 전후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진보세력에 의해 국가경영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1789년 시민혁명의 구호이자 현행 프랑스 헌법 제1조에서 프랑스의 국시로 명시되어 있는 '자유·평등·박애'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인권에 대한 열망은 이를테면 성평등과 같은 진보적 가치가 확산되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학생소요는 프랑스를 넘어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각국에까지 울려퍼졌다. 특히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주의자들과 결탁한 진보세력에 새로운 저항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학생들이 시작한 소요는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자들이 함께한 반전운동과 해방운동은 이제 문화운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운동의 주체세력들이 그때 창간한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은 지금도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언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적군파 세력이 대학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학은 적군파에 의해 장악되면서 학생 전원이 1년 유급함으로써 신입생 입시도 사라졌다. 그때의 참혹한 대학 상황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도쿄대학의 한 건물은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789년 시민혁명은 절대군주에 항거한 시민들의 저항이다. 그 상징은 바로 정치적 박해의 현장인 바스티유 감옥의 파괴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즉 인권선언은 인간과 시민의 자유·평등·박애를 온 세상에 천명한 역사적 문서다. 그러기에 1958년 제정된 현행 프랑스 헌법 전문에서도 인권선언의 가치를 수용한다. 헌법재판소는 1789년 인권선언이 현재에도 유효한 헌법적 가치를 가진 규범이라고 판시한다. 하지만 혁명을 통한 미래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유혈이 낭자할 수밖에 없었다. 루이 16세 국왕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도 기요틴(guiotine·작두)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국왕 부부뿐만 아니라 과격 혁명의 상징 같은 존재인 로베스피에르 그 자신도 기요틴의 제물이 되었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징표다.
1789년 시민혁명은 230년을 훌쩍 넘어섰고, 1968년 학원사태가 발발한 지 60년에 이르는데 2026년 학생들의 소요는 프랑스를 또다시 혁명의 공포로 내몬다. 1789년 소요는 온 시민들이 함께하면서 구제도와 구체제를 청산한 인류사적 혁명이었다. 그 혁명의 동참자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1968년 학원사태는 그 출발에 있어서 대학생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후일 진보적 문화혁명으로 나아가면서 노동자와 진보 지식인들이 동참하였지만 1789년과 달리 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였다. 그러기에 68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지금도 68사태로 지칭된다.
2026년 학원소요의 주체는 1789년의 전체 국민, 1968년의 대학생에서 더욱 좁혀져 고등학생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성인이 아닌 아직도 피교육자, 피보호자, 미성년자 신분인 고등학생들이 주축이라는 점이 이례적이라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고등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가 생활비 상승과 정부의 긴축 재정에 항의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합류로 인해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된다. 68사태와 달리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 촉발하였지만 잠재적 불만은 국가 전체로 폭발한다. 2018년 물가 급등과 사회 불평등에 항의한 '노란 조끼' 시위는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학생 시위자들은 '노란 조끼'에 대해 동참을 촉구했고 이들은 지난 주말부터 시위에 참여한다. 이제 학생시위가 시민사회와 연대를 강화한다.
Z세대 학생들의 소요는 폭력으로 발전한다. 파리와 마르세유에서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신인 마리안의 흉상이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화유산인 리모주 시청사도 시위대에 의하여 화염에 휩싸였다. 파리 샹제리제와 생토노레가의 명품상가들은 괴한들에 의하여 약탈되었다. 시위대의 봉쇄로 루브르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심지어 파리는 무정부주의자의 A 깃발로 뒤덮이기도 한다. 마침내 정부는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고 국가긴급권 발동을 만지작거린다. 학생시위에 연이은 폭력과 약탈은 이웃 벨기에, 포르투갈, 알바니아, 이탈리아로 확산된다. 미국 LA 소요사태에서 상점들이 약탈당하면서 우리 교민들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은 아픈 기억을 반추하게 한다.
학생들의 소요는 교육 여건 개선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열악한 교육 여건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계층 간 소요사태로 번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기차게 사회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즉 후속 세대를 위해 연금지급연도를 62세에서 64세로 늦추려 했지만 반대세력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주 35시간 노동, 연 5주 휴가, 법정 공휴일 11일까지 그야말로 여가공화국인 프랑스가 ‘고복지·저노동’에 병들어 간다. 공휴일 2일 줄이기도 반대에 부딪쳐 실패했다. 반면에 보건·복지 지출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에 국가재정은 파탄 직전에 이른다. 국가부채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39세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서 ‘개혁의 아이콘’이던 마크롱은 이제 사상 최저인 15% 지지율 속에 내년 봄 5년 중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다. 노동당 정부의 방만 재정으로 1976년 IMF 구제금융에 허덕이던 영국을 1979년 집권한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긴축재정으로 영국병을 치유하였다. 지금 프랑스는 바로 대처리즘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프랑스의 2026년 학원사태가 1789년 시민혁명이나 1968년 학원사태와는 그 궤를 같이하기는 힘들다. 이번 학원소요의 후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간 쌓여온 불만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 과격파들이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유럽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중도적인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각축장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이미 진보 후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극우파에 밀려난 바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극우파의 르펜이 선두를 달린다. 중도보수와 중도보수가 지리멸렬하는 가운데 극단적 세력이 발호한다.
특히 중동아프리카 이민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EU 국가들에서는 전통적인 사회연대의 가치보다는 국수주의적인 극우세력이 발호한다. 전 세계적인 양극화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냉전 체제가 부활하는 양상이다.(성낙인칼럼, '극단적 분열정치는 안 된다', 서울신문 2026.8.31.)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4년 넘게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우방 사이에도 갈등이 증폭된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이란 침공 이후 전쟁은 아랍국가 전체로 비화한다. 세계 석유자원 이송창구인 호르무즈 해협은 새로운 갈등의 현장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도 갈등으로 치닫는다. 엄혹한 국제정치에서 자국이기주의를 비난할 수만 없다. 하지만 기존에 형성된 국제질서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거나 재편하려는 현상은 자칫 지구촌을 혼돈으로 빠뜨릴 수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제거되고, 리비아의 카다피 최고지도자가 제거되면서 중동 국가에 자유와 평화를 초래할 ‘오렌지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의 팔레비 국왕 체제를 무너뜨린 이슬람혁명은 지금도 신정일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랍세계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엄혹한 카오스 상태다. 정치세력 간에 균형이 무너진 중동과 아프리카의 불안정은 유럽으로의 이민행렬로 새로운 불씨를 야기한다. 이민정책의 강온에 따라 EU 국가 사이에 분열이 드러난다. 아랍아프리카의 정치적 혼란이 빚은 유럽으로의 이민행렬은 이제 유럽 각국에서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까지 유발한다. 심지어 시위대는 저항의 상징인 팔레스타인 국기까지 흔든다.
혁명은 새로운 기운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시민들은 놀라면서도 미래를 향한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혁명의 결과는 반드시 시민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를 창출하지 못한다. 여기에 혁명은 데드록(deadlock)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비록 주어진 현실의 삶이 거칠고 힘들더라도 혁명적 변화는 반드시 아름다운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개혁이 실패한 자리에 혁명의 기운이 싹트기 마련이다. 하지만 점진적 개혁은 과격한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도 지금은 혁명보다는 관용과 연대로 변화를 함께 추구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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