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생생한 현장이 담긴 이면의 기록을 주목합니다.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를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포스터 [사진=티빙]
티빙 시리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위아래로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팀장 공은태(이준혁 분)가 로또 1등에 당첨된 뒤 사직서 대신 당첨금 13억원을 품고 이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는 K-직장인 오피스 드라마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윤영빈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로또라는 거대한 행운이 찾아왔는데도 자기 삶의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보게 됐고요. 처음에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 이야기가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재미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 부분을 잘 각색하면 괜찮은 드라마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겨서 작업하게 됐습니다."(윤영빈 감독)
"저는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을 좋아해요. 모두가 올바른 일을 했을 때 세상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작품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작품도 필요하지만 당시에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롤모델이나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때마침 이 작품이 왔고요."(이준혁)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스틸컷 [사진=티빙]
원작 소설을 '영상 언어'로 담아내는 과정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다. 윤 감독은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 설명할 수 없어 관계성으로 하여금 '보여지도록'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공은태가 로또 당첨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새로 만들고 여러 인물의 기능을 줄이거나 합치는 식이었다.
"소설은 개인의 감정이나 심리를 지문으로 풀 수 있지만 영상은 그렇게 할 수 없고 나레이션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로또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카페 사장님을 만들었어요. 전반적으로는 인물을 줄이고 합치는 과정을 거쳤고요. 한 번 기능적으로 쓰이고 사라지는 인물보다 계속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윤영빈 감독)
각색 과정에서 주변 인물의 비중이 커진 만큼 그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을 공은태도 중요했다. 윤 감독은 이준혁이 앞에 나서기보다 주변 배우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받쳐줄 수 있는 배우라고 봤다.
"제가 봤을 때 이준혁 씨는 모든 작품에서 언제나 적확한 연기를 해온 배우였어요. 도드라지기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이준혁 씨가 중심을 잡고 주변 배우들이 날아다녀야 한다고 봤거든요. 그 역할을 정말 잘해주셨고, 본인보다 주변 배우들이 더 잘 보일 수 있게 배려도 많이 해주셨어요."(윤영빈 감독)
공은태를 처음 보여주는 방식도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윤 감독은 주인공의 등장을 감추거나 뜸들이는 대신 첫 장면부터 이준혁의 얼굴을 내세웠다.
"보통 중요한 인물은 발이나 뒷모습부터 보여주면서 등장시키잖아요. 반대로 공은태는 처음부터 얼굴로 시작했어요. 주인공을 일부러 딱 얼굴로 시작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준혁 씨의 얼굴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윤영빈 감독)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스틸컷 [사진=티빙]
원작 소설의 서인하 작가는 '공은태' 역에 배우 이준혁이 캐스팅되자 뜻밖의 비하인드를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웹소설 표지에 등장하는 공은태 일러스트를 두고 이준혁을 참고해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 캐스팅 단계에서 이를 알지 못했던 윤영빈 감독과 이준혁에게도 뒤늦게 전해진 사실이었다.
"저도 나중에 알았어요. 원작자가 처음부터 캐스팅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일러스트 표지의 모델을 이준혁 씨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보고 놀랐습니다."(윤영빈 감독)
"기분 좋죠. 하하. 원작 작가님은 이 세계를 창조한 분이잖아요. 우리 작품에서는 '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그만큼 뿌듯한 게 없죠. 저는 웹툰의 헤어나 이미지 같은 걸 많이 참고했어요.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봤을 때 불만이 너무 크지 않도록 현실에 닿게 만들고 싶었는데 원작자께서 좋다고 해주시니까 감사했어요."(이준혁)
드라마의 중심이 될 공은태를 캐스팅 한 뒤에는 그와 어우러지는 동료들을 채워넣어야 했다. 윤 감독은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낯설고 동시에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을 구성, '실제 사무실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로 보여지기를 바랐다.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어요. 제 기억으로는 300명 정도 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이었고 기본기를 보기 위해 발음하기 어렵고 한 번에 말하기 힘든 문장도 준비해서 테스트했어요. 또 처음 보는 얼굴들이 있어야 진짜 회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잘 아는 배우는 전작의 이미지나 히스토리를 감안해서 보게 되니까요."(윤영빈 감독)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포스터 [사진=티빙]
윤 감독은 영업 5팀의 인물들이 하나의 '스포츠 팀' 처럼 보이길 바랐다. 각각 다른 포인트를 쥐고 있으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는 영업5팀을 한 스포츠팀이라고 생각했어요. 농구로 치면 누군가는 센터고 누군가는 포워드, 가드인 것처럼 각자 역할이 다른 한 팀인 거죠. 게임처럼 전사, 힐러처럼 완전히 다른 종족의 조합이라기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스포츠팀처럼 보였으면 했어요."(윤영빈 감독)
"영업 5팀은 어떤 '센서'가 열려 있어요. 눈빛만 봐도 다 알죠. 현우(양준호 역) 형은 제가 프레임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어느 방향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 거예요. 현균(장경철 역) 형도 마찬가지고요. 모두가 그런 감각을 열고 있을 때 제가 그걸 받고 다시 돌려주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이준혁)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스틸컷 [사진=티빙]
드라마 말미 등장하는 마르티나는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원작에서는 공은태가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거래에 나서지만 드라마에서는 국내 촬영에 맞게 장면을 바꾸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졌다.
"원작에서는 공은태가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딜을 하는 중요한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탈리아에 갈 수 없었고, 중요한 대화를 영어로나 이탈리아어로 길게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상대가 한국에 온다는 설정이었는데 이준혁 씨가 다른 한국 인물을 두는 방향을 제안했어요. 그 아이디어로 윤세아 선배를 캐스팅하게 됐고, 마르티나라는 인물의 정서를 만드는 데 이준혁 씨의 공이 컸습니다."(윤영빈 감독)
"지혜의 캐릭터가 가는 방향을 생각했을 때 기존 상대와 만나는 것보다 마르티나라는 인물을 만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혜가 성장하는 데 동성이 주는 자극도 있을 수 있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장면에 긴장감을 줄 수 있다고 봤어요. 감독님이 그 의견을 빠르게 받아들여서 대본에 반영해주셨고 윤세아 누나가 해주셔서 더 좋았어요."(이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