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곁에 계실 때, 화천의 어르신에게 묻자

  • 노인의 날 행사에서 돌아본 화천을 지켜온 삶과 존중

13일 오전 화천체육관에서 열린 제30회 강원 화천군 노인의 날 기념행사 모습 이날 행사에서는 화천을 지켜온 어르신들의 삶에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사진박종석 기자
13일 오전 화천체육관에서 열린 제30회 강원 화천군 노인의 날 기념행사 모습. 이날 행사에서는 화천을 지켜온 어르신들의 삶에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사진=박종석 기자]

13일 오전 화천체육관에서 열린 제30회 강원 화천군 노인의 날 기념행사. 이를 취재하며 우리 곁의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을 생각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화천에는 이분들이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이웃과 함께 마을을 지켜온 날들이 쌓여 있다.
 
이날 이화원 대한노인회 화천군지회장은 인사말에서 화천의 어르신들이 6·25전쟁을 거치며 어렵게 살아온 세대라며, 앞으로 “백년만년”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세훈 화천군수도 화천과 함께하며 지역을 지켜온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어르신들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앞으로 더욱 존중하고 존경하겠다는 취지였다.
 
두 사람의 인사말을 들으며 기자는 어르신들이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함께 생각했다. 화천을 지켜온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오늘의 어르신을 살피는 일로 이어졌으면 했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온 분들이 이제는 덜 아프고, 덜 외롭게 곁에 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기자는 2018년 3월부터 화천에서 여든을 넘긴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부모님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만, 함께 산다는 사실만으로 두 분의 삶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행사장에서 어르신들의 지난 세월을 생각하다 보니 부모님께 아직 여쭙지 못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역의 한 상가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의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고인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나온 그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살아 계실 때 우리는 얼마나 듣고 물었는지 되묻게 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역사는 큰 사건과 연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 생계를 꾸리던 일터, 서로 의지했던 이웃의 사연도 그 안에 있다. 오래 살아온 주민에게는 익숙한 기억이 다음 세대에는 처음 듣는 화천의 이야기가 된다.
 
분단과 전쟁, 수복과 재건을 거친 화천에서는 그 목소리가 더욱 소중하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증언과 이후 마을의 변화를 지켜본 주민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억이 서로 다른 대목은 자료와 대조하며 살피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사람의 삶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르신들이 화천을 지켜왔다는 말은 거창한 공적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려운 형편에도 하루의 일을 해내고, 자녀를 키우고, 이웃의 사정을 살피며 이곳에서 삶을 이어온 일이다. 그렇게 쌓인 평범한 날들이 마을을 버티게 했고 오늘의 화천을 이루었다. 그 시간을 헤아리는 데서 존경은 조금 더 깊어진다.
 
부모님을 대하는 기자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답을 드리거나 대신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한다. 자녀에게 익숙한 부모님의 모습 너머에는 두 분의 젊은 날과 선택, 아직 다 듣지 못한 바람이 있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을 일이다.
 
어르신을 존경하는 마음은 오늘의 생활을 살피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병원에 가는 길은 불편하지 않은지, 혼자 식사하는 날이 많지는 않은지,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고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한다. 행사장에 함께한 어르신뿐 아니라 건강이나 이동의 어려움으로 오지 못한 분들에게도 관심이 닿았으면 한다.
 
삶의 이야기를 청할 때도 기꺼이 들려주시는 기억은 귀하게 듣고,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는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큰 희생이나 특별한 공적을 증명해야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오늘도 똑같이 소중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며 상가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떠나보낸 뒤에는 묻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기자도 부모님께 아직 묻지 못한 이야기를 더 여쭤보려 한다.
 
백년만년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어르신들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일상의 안부로 이어졌으면 한다. 화천을 지켜온 삶에 감사하고, 지금 원하시는 삶에 귀 기울이는 것. 노인의 날 행사에서 돌아온 기자가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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