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베트남이 비교적 빠른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정치적으로는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교역 규모 등 통계수치로 이러한 경제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정치적 변화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 논자들은 베트남에서 정치적 변화가 세대교체를 통해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베트남의 경제와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기서는 정치인, 기업인 등 인적 변화를 중심으로 베트남의 변화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지체된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
베트남에서 고위 정치지도자는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원들이 국가기관의 주요 직책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공산당은 5년마다 전국대표대회, 즉 공산당대회를 개최해 위원 200명으로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한다. 당 중앙집행위원회는 새롭게 구성된 후 바로 제1차 회의를 열어 20명 이내의 위원으로 정치국을 구성한다. 2026년 1월 제14차 공산당대회에서 구성된 제14기 정치국 위원은 19명이다. 베트남에서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최고위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국 위원 중 서열 1위 인사가 공산당 총비서(서기장) 겸 국가주석, 2위 인사가 총리, 3위 인사가 국회의장, 4위 인사가 공산당 비서국 상임비서를 맡고 있다. 이들 네 명을 보통 ‘네 기둥(four pillars)’이라고 일컫는다. 이외의 인사들이 당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지방 성시 당 위원회 비서, 부총리, 장관 등 주요 직책을 맡는다. 이 때문에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의 정치적 변화가 세대 교체에 의해 진전될 것이라고 한다면 당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봐야 한다. 공산당은 연소화를 위한 조치로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은 60세 이하, 정치국 위원은 65세 이하여야 한다는 연령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 승인’을 통해 연령 제한에서 벗어난 인사들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이나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한다. 2026년 1월 제14기 중앙집행위원회 출범 당시 위원들의 평균 연령은 55.4세였다. 이전 회기에서 위원들의 평균 연령은 제12기 53세, 제13기 53.8세였다. 이처럼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은 최근에 연로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고위 정치지도자인 정치국 위원도 연로화 경향을 보인다. 그 평균 연령은 2016년에 출범한 제12기까지 60세 전후였다가 2021년 제13기에 61.7세로 증가했고, 2026년 제14기에 60.8세로 약간 하락했다. 이는 2020년대에 들어 당 정치국 위원들의 연소화가 진전되지 않는 현상을 말해준다. 현 제14기 정치국에는 또럼 당 총비서 겸 국가주석이 69세로 최고령 위원이고, 응우옌타인응이(Nguyen Thanh Nghi) 당 중앙정책전략위원회 위원장이 50세로 최연소 위원이다.
‘붉은 씨앗’
젊은 정치지도자 중 선임 정치지도자의 자녀들이 주목을 받는다. 베트남에서는 이들을 ‘붉은 씨앗’이라고 한다. 이들은 그 부모들이 공산당 또는 국가기관의 고위직을 맡았었기에 기본적으로 최고위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레민흥(Le Minh Hung, 1970년생) 총리, 쩐시타인(Tran Sy Thanh, 1971년생) 공산당 중앙감찰위원회 주임(위원장), 응우옌타인응이(Nguyen Thanh Nghi, 1976년생) 공산당 중앙정책전략위원회 위원장이다. 레민흥 총리는 1996~2002년 당 정치국 위원 겸 공안부 장관을 역임한 레민흐엉(Le Minh Huong)의 아들이다. 그는 제12·13·14기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제13·14기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와 함께 2016~2020년 베트남국가은행 총독(중앙은행 총재), 당 중앙사무처장, 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쩐시타인 주임은 응우옌신훙(Nguyen Sinh Hung) 전 국회의장의 조카로 알려졌다. 그는 제11·12·13·14기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제14기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와 함께 회계감사원장, 하노이시 당 위원회 부비서, 하노이시 인민위원회 주석(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응우옌타인응이 위원장은 2006~2016년 총리를 역임한 응우옌떤중(Nguyen Tan Dung)의 아들이다. 그는 제13·14기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제14기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와 함께 끼엔장 성 당 위원회 비서, 건설부 차관·장관, 호찌민시 당 위원회 상임부비서 등을 역임했다. 이들은 2031년에 열릴 제15차 공산당대회에서 ‘네 기둥’ 후보 물망에 오를 것이다.
최근 지방 성급 당 위원회 부비서로 임명된 세 명도 유력 정치지도자의 아들들이다. 응우옌신녓떤(Nguyen Sinh Nhat Tan, 1975년생) 호찌민시 당 위원회 부비서는 응우옌신훙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응우옌시히엡(Nguyen Sy Hiep, 1974년생) 하이퐁시 당 위원회 상임부비서는 응우옌반안(Nguyen Van An)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쩐꿘(Tran Quan, 1983년생) 랑선성 당 위원회 상임부비서는 쩐다이꽝(Tran Dai Quang) 전 국가주석의 아들이다. 쯔엉민후이부(Truong Minh Huy Vu, 1984년생)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은 쯔엉미화(Truong My Hoa) 전 국가부주석의 조카다. 이들도 장래에 국가의 주요 지도자로 부상할 인사들이다.
‘붉은 씨앗’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던 인사는 1992~2001년 국회의장, 2001~2011년 공산당 총비서를 지낸 농득마인(Nong Duc Manh, 1940년생)이었다. 그가 호찌민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베트남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후 인사로 팜빈민(Pham Binh Minh, 1959년생)은 응우옌꺼타익(Nguyen Co Thach) 전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의 아들이다. 그는 제12·13기 당 정치국 위원과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 등 직책을 맡았다가 퇴임했다. 쩐뚜언아인(Tran Tuan Anh, 1964년생)은 1997~2006년 국가주석을 역임한 쩐득르엉(Tran Duc Luong)의 아들이다. 쩐뚜언아인은 2016년 제12·13기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제13기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됐다. 그는 공상부 장관, 당 중앙경제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가 2024년 1월에 퇴임했다. 이 밖에도 의료보건부 장관을 역임한 응우옌티낌띠엔(Nguyen Thi Kim Tien, 1959년생)은 베트남공산당 제3대 총비서 하후이떱(Ha Huy Tap)의 친척으로 알려졌는데 부패로 인해 퇴임한 후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새 세대 중 가장 두드러졌던 인물은 보반트엉(Vo Van Thuong, 1970년생) 전 국가주석이었다. 그가 보반끼엣의 아들이라고 알려졌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그는 호찌민공산청년단에서 경력을 쌓았고, 당 중앙선전교육위원회 위원장, 당 비서국 상임비서, 국가주석 등을 역임했다. 그도 부패에 연루돼 2024년 3월에 퇴임했다. 그가 브엉딘후에(Vuong Dinh Hue) 전 국회의장과 함께 차기 총비서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중도 퇴임하고 말았다.
제2세대 기업인의 등장
한편 경제 부문에서 재벌기업의 성장과 세대교체는 이제 막 시작됐다. 베트남이 2000년부터 통합 기업법을 시행하면서 민간기업이 급속하게 증가했고, 일부 기업은 재벌급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장 잘 알려진 민간재벌이 빈(Vin)그룹이다. 빈그룹 총수 팜녓브엉(Pham Nhat Vuong)은 포브스(Forbes)의 10억 달러 자산가(Billionaires) 대열에 2013년부터 올랐다. 그는 금년 9월 기준으로 57위에 올랐고, 그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팜투흐엉(Pham Thu Huong) 부회장과 처제 팜투이항(Pham Thuy Hang) 부회장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 대열에는 응우옌티프엉타오(Nguyen Thi Phuong Thao) 비엣젯(VietJet) 회장, 쩐딘롱(Tran Dinh Long) 호아팟(Hoa Phat) 철강그룹 회장, 호훙아인(Ho Hung Anh) 테크콤 뱅크 회장, 응오찌중(Ngo Chi Dung) 베트남번영은행(VPBank) 회장도 올랐다. 또 응우옌당꽝(Nguyen Dang Quang) 마산(Masan)그룹 회장, 쩐바즈엉(Tran Ba Duong) 타코(Thaco)그룹 회장 등이 후보로 대기하고 있다.
지금 이들 제1세대 기업인들이 한창 활약하고 있는데, 일부 기업인들이 자녀들에게 자산을 양도하면서 제2세대 재벌 기업인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빈그룹 팜녓브엉 회장은 금년 9월 산하 빈패스트(VinFast) 자동차회사를 장남 팜녓꽌아인(Pham Nhat Quan Anh, 1993년생)에게 맡겼다. 꽌아인은 철강회사 빈메탈 CEO도 겸하고 있다. 브엉 회장은 둘째 아들 팜녓민황(Pham Nhat Minh Hoang, 2000년생)에게 빈그룹 산하 그린 에스엠(Green SM) CEO를 맡겼다. 그린 에스엠은 빈패스트가 생산한 전기자동차를 택시로 운영하는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황은 그간 빈그룹 산하 여러 기업에 투자하고 경영에도 관여해왔다. 테크콤 뱅크 호훙아인 회장도 자녀들에게 은행 지분을 일부 양도했다. 그의 아들 호아인민(Ho Anh Minh, 1995년생)과 호투이아인(Ho Thuy Anh, 2001년생)이 각각 테크콤 뱅크 주식을 4.9% 보유하게 됐다. 이로써 이들은 베트남 주식시장에서 12·13위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호아팟그룹 쩐딘롱 회장도 아들 쩐부민(Tran Vu Minh, 1996년생)에게 소유 지분 2.76%를 양도했다. 이렇게 기업인들이 자녀 세대에 기업을 승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정치지도자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해야
베트남의 정치 부문에서나 경제 부문에서 자녀 세대의 등장은 이제 시작돼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경제 부문에서는 세대교체가 이제 막 시작돼 시장 논리에 따라 진전될 것이다. 정치 부문에서는 지난 두 회기 동안 최고위 및 고위 정치지도자들의 연소화가 지체됐기에, 젊은 세대가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최고위 지도자인 또럼 총비서가 고령이면서도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강력하게 국가 건설과 경제성장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민흥 총리가 55세 젊은이로서 또럼을 보완하고 있지만 공산당과 정부는 당분간은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집행할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도 정책 지시와 집행이라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식을 갖춘 젊은 세대의 창조적 사고를 포용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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