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관동(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 실태를 상세히 조사하고도 가해자를 최소한으로 검거하고 재판에도 거의 넘기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을 덮었다는 일본 연구자의 분석이 나왔다. 당시 일본 정부 조사에서도 조선인들이 집단 범죄나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뒷받침할 사건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12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인 고토 아마네(77) 씨는 당시 가나가와현이 작성한 보고서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고토 씨는 요코하마에서 약 40년간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이곳에서 시작된 조선인 학살의 실태를 조사해 왔으며, 조사 결과를 담은 '연구노트'를 158호까지 펴냈다. 그는 2023년 8월 30일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관방장관이 "정부가 조사한 범위에서는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힌 데 대해 내무성·사법성·군·조선총독부·경찰 등이 작성한 조사 보고서가 여러 종류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고토 씨가 분석한 문서는 내무성의 요청으로 가나가와현 지사가 작성한 1923년 11월 21일자 50쪽 분량의 보고서 '선고비수(鮮高秘収) 제22호'다. 지진 당시 가나가와현 내 조선인·중국인의 범죄와 보호 상황 등을 조사한 자료로, 조선인 학살 연구를 개척한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말년에 고서점에서 입수했다. 강 교수 사후인 2023년 관동대지진 100년을 맞아 공개됐다. 내무성 조사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이때 처음 드러났다고 고토 씨는 설명했다.
학살은 지진 발생 당일인 9월 1일 밤 요코하마에서 시작돼 며칠에 걸쳐 도쿄·사이타마·지바로 번졌다. 요코하마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처음 퍼진 곳이고, 가나가와현은 학살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 기록된 조선인의 범죄 혐의는 14건에 그쳤다. 이 가운데 9건은 용의자가 민중에게 살해됐고, 용의자의 이름이 확인된 사건은 5건이었다. 조사 내용도 불분명해 어떤 범죄였는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절도 4건뿐이었다. 이마저도 한 명이나 두세 명이 저지른 것이었고, 집단 범죄나 폭동은 한 건도 없었다. 고토 씨는 "수백 명의 조선인이 습격해 온다"는 소문을 뒷받침할 사건은 당시 정부 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선인을 범죄자로 오인해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사건은 보고서에 80건이 기록돼 있었다. 이들 사건으로 170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이는 이 보고서에 기록된 가나가와현 내 피해 규모로, 학살 전체의 희생자 수는 아니다.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 전문조사회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 희생자를 조선인으로 오인된 중국인·일본인을 포함해 수천 명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 기록된 피해자는 모두 남성이었으며,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34명뿐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조선인으로 분류됐다. 가해자는 모두 민중이었다. 그런데도 조선인 살상 사건 가운데 가해자 검거로 이어진 사건은 살인 2건과 상해 1건, 모두 3건에 불과했다.
고토 씨는 다른 내무성 자료에서도 가나가와현의 검거 실적이 유독 저조했던 것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당시 계엄령이 일부 적용된 4개 부현 가운데 학살 사건이 가해자 검거로 이어진 비율은 도쿄부 97.5%, 사이타마현 100%, 지바현 46.1%였지만 가나가와현은 5.1%에 그쳤다. 그는 학살이 벌어진 것을 알면서도 가해자를 거의 붙잡지 않고 재판에도 넘기지 않았다며 "근대국가에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처리"라고 비판했다.
학살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보수파의 반발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것을 중단한 사례를 들었다.
고토 씨는 당시 경찰과 군의 책임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는 "조선인을 죽여도 괜찮다"는 소문이 퍼졌고, 현장에서 경찰이 학살을 용인하거나 지시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를 보더라도 경찰의 이런 태도가 이후 수사와 가해자 검거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군이 직접 살상한 사건도 확실히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가 학살을 주도했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국가 주도설이 여러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2차대전 후 반식민지주의 운동이 그려 온 도식에 얽매이면 학살이 왜 일어났고 왜 오랫동안 잊혔는지라는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주장으로 국가 책임을 추궁하면 오히려 "학살은 없었다"거나 "조선인 폭동은 있었다"는 역사수정주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토 씨는 재난 때 혐오와 거짓 소문이 퍼지는 일이 21세기 일본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중은 자발적으로 거짓 소문과 폭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쓰라린 교훈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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