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한다. 목적지는 다르지만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과 만원 버스 혹은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출근한다. 앞으로 내딛는 발은 천근만근이고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단히 불행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당신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대로 떠나고 싶다’, ‘이렇게 치여 살기만 하다가 죽기 싫다’는 생각 말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이 생각을 영화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 계나(고아성)는 실행에 옮긴다.
계나는 2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서울 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학자금 대출을 갚고,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도 있다. 누군가에겐 이 평범한 삶이 부러울 수 있겠지만 계나는 매일 울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일상이다. 회사 일이 아닌 바로 출퇴근 때문에. 인천에서 강남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열두 정거장을 가 지하철역에서 내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며 그녀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생각한다.
계나는 자신이 매일 목적을 잃은 채 마모되는 톱니바퀴 같다. 그는 ‘무슨 일을 왜 하는 지 모르겠고, 이 회사는 도대체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겠고, 아예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장장 매일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출퇴근을 해도 점심시간에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자유도 없다. 상사가 고른 동태탕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본 텔레비전 속 가젤에 눈길이 간다. 대단히 잘난 것도 아니지만 그저 순응하기에는 자신의 자존심도 중요한, 그러다 무리에서 낙오돼 강자에 잡아먹히는 그 가젤이 마치 자신 같아서 말이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의 부모님과의 상견례 자리는 조용히 불편하기만 하다. 자신과 다르게 부유하게 자란 지명은 “내가 너희집 사정을 이야기했다”며 계나의 답답한 마음에 더욱 불을 지피고,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없을 것이라는 기시감이 든다. 사회의 바깥 테두리로 밀려난 적도 없는데 계나는 늘 불안하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할수록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는 멀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한국을 떠나기에 이유는 충분했다. 직장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뒤로한 채 그는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오른다. 계나는 말한다. “한국이 싫었다’고.
영화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소설이 발간된 2015년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헬(Hell·지옥)조선’이라는 용어가 만연했다. 널뛰는 집값과 그것을 뛰어넘는 구직난, 어렵게 취업해도 월급 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물가. 이같은 현실 속에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금수저’ ‘흙수저’ 등의 신조어가 생기며 청년들이 느낀 계층 이동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어지던 시기였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열심히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면 언젠간 안정적인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점차 불확실해졌다. 정부 통계를 보면 당시 연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2%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노력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현실에 절망한 청년들은 이 땅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눈에 띄는 것은 원작과 영화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지만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금도 취업난과 주거 불안, 경쟁과 계층 이동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계나도 이런 청년들 중 한 명이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지만 그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공식에 충실할 뿐 딱히 행복할 일도 불행할 일도 없다.
영화는 계나의 선택을 옳다고도, 틀렸다고도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질문을 던질 뿐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가.’
한국을 떠난 계나는 뉴질랜드에서 행복을 찾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겨울에 우풍이 들어오는 집을 떠나서도 계나는 침낭에서 밤을 보내야 했고 서툰 영어로 현지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뉴질랜드에서도 계나는 외로웠고, 흔들리는 시간을 갖는다.
3년이 지난 뒤 계나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자유로워 보인다. 한국어 과외를 하고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저녁에는 파티에 참석해 눈에 띄게 달라진 영어 실력으로 정치 외교에 대해 논한다. 이때부터 계나는 삶의 무게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듯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에서 살아가는가가 아니다. 내 삶의 방향키를 누가 잡느냐이다.
영화 말미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친구의 죽음을 마주한 계나는 “이대로 내 옆에 있어주면 안돼”냐는 지명의 제안에도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난다. 계나는 한국을 떠나 자신만의 따뜻한 땅을 발견했을까.
사실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은 결국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보단 지금의 나를 더이상 견디고 싶지 않다는 고백일 것이다. 남들이 모두 괜찮다고 말하는 삶에서 스스로 다른 파동을 느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 혹은 언젠간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견디는가. 이 물음의 답은 당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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