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지 수많은 전쟁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전쟁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유형의 전쟁이다. 그 특징은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드론과 로봇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폭용 드론이 하늘을 날더니, 이젠 드론에 탑재된 로봇(UGV)이 전장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고 있다. 지난 4일 미국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탈환했다고 전했다. 그 주역은 드론과 로봇이었다. 물론 러시아도 더 강력한 드론과 로봇으로 반격할 것이다. 이처럼 아직은 초보적 모습이지만, 전쟁 양상은 AI기반의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 게임에서나 봄직한 전쟁 양상이 이젠 현실에서 거짓말처럼 전개되고 있다. 드론과 로봇이 벌이는 전쟁 앞에 인간의 가치, 생명의 존귀함을 말하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휴머니즘’ 운운하는 것도 어쩌면 시대착오적 인식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숨길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25일 공개된 교황 레오14세의 첫 회칙,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고귀한 인류)는 일종의 가뭄 속 단비 같았다. 교황은 AI를 성경 속 ‘바벨탑’에 비유하면서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전쟁의 일상화,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 소수 AI 빅테크 기업의 독점적 권력 등 AI시대가 초래할 ‘절망적 인류’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글로벌 AI시대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중국 두 정상이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만났지만 AI를 보는 관점은 전혀 달랐다. 중국은 책임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규제에 방점을 두는 반면, 미국은 자율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패권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현실이라면 AI 패권 경쟁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AI 글로벌 패권을 더 확고하게 구축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지난달 24일 시진핑을 위한 국빈 만찬에 미국 AI를 대표하는 빅테크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마디로 AI시대를 주도하는 미국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이들에게 일각의 ‘AI 속도조절론’은 거저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트럼프는 AI 위험성이나 인류 멸망설 등에 대해 아예 ‘사기(hoax)’라고 규정했다. 이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AI 위험성은 ‘무책임한 음모론’이라며 화답했다. 이제 대세는 분명해졌다. AI시대 글로벌 패권을 향한 빅테크 기업의 기술은 충격적일만큼 고도화될 것이다.
한 때 실리콘밸리는 자유와 책임, 창의성, 다양성,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했다. 그 연장에서 미국정치를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제 그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결정적이다. 취임식 당일 행정부 주요 인사들을 제치고 트럼프 가족 뒷줄은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등 AI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본·기술이 손을 잡는 ‘3자 연합’의 상징적 장면이다. 그때 그 모습대로 AI혁명은 지금 그들이 주도하고 있다. 거기에 무슨 AI 규제니, 인류 멸망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이 통하겠는가. 그들은 다만 그들을 추격하는 ‘중국의 AI 굴기’가 부담스럽거나 두려울 뿐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이란을 공격하는 미국의 주요 군사장비는 AI 빅테크 기업들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미국이 사실상 ‘전쟁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할 때, 그 주역은 소수의 AI 빅테크 기업들이다. 일론 머스크는 오래 전부터 유럽의 주요 선거에 개입하면서 노골적으로 극우 정당을 지원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상식을 혐오하고 파괴하는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AI 제국주의가 가는 길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테크노 파시즘(Techno Fascism)’으로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AI 빅테크 기업이 극우 세력 주도의 전체주의 권력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그 초기 단계에 가깝다. 하지만 충격적이라 할 만큼 발전하는 AI 기술을 감안한다면 민주주의 붕괴는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이미 진행형이다.
지난 1일 AI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해킹 공격으로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등 국내 금융권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에서는 오픈AI 통제를 벗어난 ‘AI 에이전트’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백과’ 플랫폼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통제의 문제를 넘어서 AI가 다른 AI를 만들어 인간 위에 군림하는 ‘AI 지능 폭발’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전체주의 사회의 ‘빅브라더’ 탄생은 더 이상 소설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AI시대 정치는 민주주의 위기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전체주의와 더 친밀해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의나 AI 빅테크 기업의 자율에 맡길 일이 아니다. 마치 과거 핵무기 경쟁을 할 때 그랬듯이 글로벌 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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