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오세훈의 절제, 다가오는 '진실의 시간'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정치인의 확신은 목소리의 크기로 드러나지 않는다. 억울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그 말을 어디에서 멈추느냐가 많은 것을 보여줄 때가 있다.
 
7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그랬다. 항소심 선고를 앞둔 시장에게 기자는 시장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이 다시 선고될 경우 시정 동력이 흔들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필자에게는 이 질문이 1심 판단의 유지를 염두에 둔 질문으로 들렸다.
 
오 시장은 먼저 시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런 재판에 처하게 된 점,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시민의 걱정을 앞에 놓았다. 이어 "1심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들이 항소심에는 많이 제출이 됐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증거의 내용을 장황하게 풀지도, 법정을 향해 주문을 외지도 않았다.
 
그 짧은 답변에서 필자가 읽은 것은 불안보다 확신이었다. 물론 기자가 받은 인상이 판결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증거의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질문에 말을 줄이는 그의 태도는 눈여겨볼 만했다. 시민을 설득할 말은 아끼고, 법정을 설득할 증거는 냈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날 필자는 애초 다른 장면을 예상했다. 선고를 앞두고 마련한 간담회라면 수사와 재판을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내지 않을까 했다. 결백을 강조하고, 상대를 비판하고, 여론의 힘을 빌리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오 시장은 재판 답변을 아주 짧게 마친 뒤 시정 현안에 집중했다. 그날의 중심에 놓인 것은 피고인 오세훈의 사정이 아니라 서울시장 오세훈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날이 섰기는 했다. 그는 진실이 밝혀지면 "무리하게 수사를 했던 검찰 그리고 특검이 책임을 져야 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수사의 무리함은 오 시장의 주장이다. 아직 법원의 결론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그 주장에는 자신을 겨눈 수사 역시 검증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문제 제기가 담겨 있다.
 
수사기관이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수사기관도 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혐의를 제기하는 권한이 크다고 해서 그 혐의가 저절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자료와 유리한 자료를 함께 살피고, 서로 어긋나는 진술을 검증해야 한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원칙은 엄격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수사의 승리가 아니라 사실의 확인이다.
 
이 대목에서 정치의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재판을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무대로 삼고, 모든 비판을 적의 공격으로 돌리는 정치에 우리는 너무 익숙하다. 그런 정치에서는 사건의 실체가 사라지고 편 가르기만 남는다. 억울함을 주장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공직자는 자신의 억울함 때문에 시민의 일상과 행정의 시간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
 
이날 오 시장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했다. 그는 시민에게 송구함을 표하고, 항소심에 증거를 제출했다고 설명하고,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재판부를 공격하는 말도 내놓지 않았다. 필자가 무죄를 확신하는 듯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공격의 강도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직무로 돌아가는 절제에 있었다.
 
오는 23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는 기자의 질문은 서울시정의 불확실성을 짚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시장의 답변 또한 그 불확실성을 법정 밖의 정치로 해소하겠다는 선언이어서는 안 된다. 증거는 법정에서 평가받고, 시장은 시민 앞에서 행정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 두 책임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지금 오 시장에게 필요한 자세다.
 
"진실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오 시장이 남긴 말이다. 그 시간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 자신감의 가치는 결국 증거와 판결로 확인될 것이다. 필자는 이날 승리를 예고하는 정치인의 웅변보다, 결과를 기다리는 공직자의 절제를 보았다. 남을 헐뜯는 말로 간담회를 채우지 않은 것, 자신의 재판보다 서울의 일을 앞세운 것. 선고에 앞서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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