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BTS의 '아리랑'과 이건희 컬렉션

방탄소년단(BTS)이 새 앨범과 월드투어의 이름으로 ‘아리랑’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콘셉트 발표가 아니었다. 세계 대중문화의 최정점에 선 그룹이 한국의 대표적 전통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었다. K팝은 더 이상 한국성을 희석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는 단계에 도달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정면으로 보여줬다.

이 선택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세계 앞에 서 있는가.

그 답을 워싱턴 DC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해외 전시와 갈라 디너는 단순한 전시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K컬처가 ‘주목받는 단계’를 넘어 ‘신뢰받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BTS의 ‘아리랑’이 세계의 귀를 열었다면, 이건희 컬렉션은 그 귀에 무엇을 들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건희 컬렉션은 화려함을 앞세우지 않는다. 박물관이라는 가장 느리고 보수적인 공간에서 한국 미술의 시간을 차분히 펼쳐 보인다. 불교미술에서 조선 회화, 근현대 미술로 이어지는 구성은 “한국 미술이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미감이 어떻게 축적돼 왔는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중국적 관념을 벗어나 자기 땅을 자기 시선으로 바라본 순간을 담고 있고,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유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다. 달항아리는 말이 없지만 오래 시선을 붙든다. 비움과 절제라는 한국적 미학이 설명 없이 전달되는 지점이다.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건희 컬렉션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게 만든다.

개인의 수집이 기증을 통해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된 과정 역시 중요하다. 사적 취향의 결과물은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 인프라가 됐고, 그 인프라는 한국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의 공공 공간으로 나아갔다. 이는 전통문화가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문화 강국들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 장면의 의미는 더욱 또렷해진다. 프랑스는 루브르로, 영국은 대영박물관으로 문화적 신뢰를 쌓아왔다. 이들 박물관은 각국 문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나라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설명하는 기준점이다. 워싱턴에서의 이건희 컬렉션 역시 같은 질문에 대한 한국의 답이었다.

BTS의 ‘아리랑’과 이건희 컬렉션은 서로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 위에 있다. 대중문화는 세계의 문을 열고, 헤리티지는 그 문 안에 머물 이유를 만든다. 하나는 빠르고, 하나는 느리다. 그러나 둘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기억되는 문화로 만드는 것이다.
 

관심은 쉽게 생기고, 쉽게 사라진다.
신뢰는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쌓이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리랑은 출발선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은 그 다음 단계다.

K팝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면, 이건희 컬렉션은 그 문 안에서 한국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워싱턴의 박물관 안에서, 한국은 이미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22일 서울 중구 프리즈 서울에서 열린 ‘V TYPE 非 ON-SITE IN SEOUL’ 전시를 관람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AJP
22일 서울 중구 프리즈 서울에서 열린 ‘V TYPE 非: ON-SITE IN SEOUL’ 전시를 관람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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