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양'영'화] 사극을 빌린 신랄한 현실 풍자 영화 '장안의 리치'

  • '5000리 밖에서 생리치를 공수하라'

  • 무리한 황제의 명에 희생되는 백성들

  • 권력 부패와 직장내 부조리 풍자

  • 현대 직장인 생존분투기 연상케 해

장안의 리치 영화 포스터
'장안의 리치' 영화 포스터

“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荔枝來."(말 한 필이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자, 양귀비가 미소 짓는다. 그 미소 뒤에 리치가 도착했음을 모르는 이 없다.)

황실의 사치와 애첩을 향한 사랑을 풍자한 당 나라 시인 두목의 시 '과화청궁절구(過華清宮絕句)'에 나오는 이 시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 '장안의 리치(長安的荔枝)'가 올여름 중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오늘날 현대사회 직장인의 고충과 함께 공직사회의 권력 위계질서와 부패의 부조리함, 파벌 경쟁을 비꼬아 풍자한 영화로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 ‘1일 만에 색이 변하고 2일이면 향이 사라지며 3일이면 맛도 사라지는 열대과일’ 리치를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남쪽 광둥에서 5000리 떨어진 장안까지 하급 관료 리산더(다펑 분)가 신선한 상태로 운송하는 이야기다.

시골 출신의 리산더는 장안에서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집을 사기 위해 대출까지 받으며 가족과 힘겹게 살고 있는 하급 관료다. 그러던 중 상사의 꾐에 빠져 양귀비의 생일상에 올릴 신선한 리치를 운송하는 ‘리치 대사’ 임무를 맡게 된다. 

그는 전국의 역참망과 농민·군민을 강제 징발하는 등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하지만, 그 과정은 고달프고 부조리로 점철된다. 관료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권력 눈치 보기에 바쁘다. 결국 왕실 사치품 운송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백성들의 노동과 세금이다.

황제를 향한 충성 경쟁의 정치적 이벤트였던 ‘리치 공정’은 국가 자원 낭비와 민생 피폐를 초래해 민중의 불만은 커지고, 결국엔 당나라 멸망의 지름길이 됐음을 영화는 시사한다.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 양귀비의 사촌오빠 양국충(류더화 분)이 “流程這種東西,是弱者才要遵循的規矩(절차란 약자나 지키는 규칙이다)”라며 리산더에게 요패를 건네줄 때, 오랜 친구 두샤오링(장뤄윈 분)이 리산더에게 “做官之道,其實就三句話:和光同塵,雨露均沾,花花轎子眾人擡(벼슬살이란 속세와 어울리고 이익은 골고루 나누며 꽃가마는 함께 드는 것이다)”라며 처세술을 조언할 때 촌철살인 대사는 빛을 발한다. 

영화 속 리산더가 겪는 각종 직장 생활의 부조리함은 오늘날 중국 직장인의 현실과도 닮았다. 핵심성과지표(KPI)를 달성해야 한다는 중압감,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까지 일하는 '996 근무 문화'에 시달리며 실질적 보상 없이 희생을 감내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 

리산더가 “仟古艱難唯做事,一事功成萬頭禿(예로부터 가장 어려운 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큰 성과 뒤에는 수많은 희생이 따른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쉴 때 관객들도 함께 공감한다. 

중국 배우 겸 감독 다펑(大鵬)이 메가폰을 잡고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개봉 일주일 만에 3억5000만 위안(약 674억원)이 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마보융(馬伯庸)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최근 드라마로도 방영돼 인기몰이했다. 

중국 영화평론사이트 더우반에서 누리꾼들은 “성당(盛唐) 시대의 화려함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처럼, 웃음 속에서 역사의 피비린내를 느낄 수 있다”, “리산더가 필사적으로 보낸 것은 리치가 아닌 성당의 부고와 조가(弔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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