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52] 열린 마음이 무엇을 열었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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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9-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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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환경이 가져다 준 열린 마음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유목민들, 그들은 낯선 곳,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자리를 잡으면 그 곳이 고향이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이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다. 모든 변화에 유연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열린 마음(Open Mindness)을 가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몽골인 유목민들에게 살아온 환경이 가져다 준 선물이 바로 열린 마음이다.

▶ 일 년에 서너 차례 이동

[사진 = 양떼의 이동]

통상 유목민들은 긴 겨울을 산기슭이나 계곡 등 비교적 따뜻하고 매서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동영지(冬營地)로 정하고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에 가축들이 새끼를 낳은 뒤 한 달 남짓 지나면 여름을 보낼 하영지(夏營地)를 찾아 이동한다. 그리고 가을에는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가축들을 살찌운 뒤 다시 동영지를 찾아 나서는 이동을 반복하게 된다.

▶ 4개월만의 이동

[사진 = 터브 아이막 룬 솜(郡)]

룬 솜(郡)은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백 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 초원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많은 가축들과 천막가옥 게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몽골 초원에서 8월 중순이면 풀들이 녹색 빛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여름이 끝나 가는 시점이라 이때부터 벌써 겨울을 의식한 이동이 시작된다.
 

[사진 = 룬 솜 유목민 삼바]

이곳에서 만난 삼바씨 가족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른 봄에 옮겨와 4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는 삼바씨는 미리 봐둔 다른 곳으로 다시 옮겨가 가을동안 가축들을 살찌운 뒤 근처 산기슭에서 올 겨울을 날 생각이다. 며칠 전부터 그리 멀지 않은 주변 지역을 둘러본 결과 30km 정도 떨어진 에르딘 산트라라는 곳이 가을과 겨울을 나기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삼바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가축은 양과 소 그리고 말 등 모두 합치면 2백여 마리가 된다. 가축의 수가 비교적 적은 편으로 유목민치고는 가난한 편에 속했다. 이 가축을 키워 부인과 세 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5명의 가족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가축 2백여 마리는 이미 옮겨갈 지역으로 떠났고 이제 게르를 허무는 대로 그 곳으로 떠날 예정이다.

▶ 모두가 다른 곳으로 떠나야할 시간
삼바씨는 다른 곳의 남향 산기슭에서 매서웠던 바람과 추위를 피해가며 지난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지난 4월말에 이곳으로 옮겨와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당시 초원은 여전히 누런빛을 띠고 있었지만 서둘러 이곳으로 옮겨 가축들을 풀어놓고 봄을 맞았다. 유목민들은 초원이 푸른빛을 띠면 이미 봄 이사시기로는 늦었다고 생각한다.
 

[사진 = 게르 허물기]


그래서 서둘러 이곳으로 옮겨왔던 삼바씨는 채 4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가축들을 살찌우면서 지낸 이 짧은 기간 동안 이웃 유목민들과도 상당한 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이웃도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할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살았던 천막집 게르를 해체하고 이삿짐을 꾸리는 데는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대부분 아일식 목축
몽골 유목민들은 통상 반경 3-50km 안에서 일 년에 서너 차례 이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초원의 여건이 열악한 곳에서는 이동회수가 더 늘어나고 이동 거리도 멀어진다. 심한 경우 한번에 100km이상을 이동하기도 하고 일 년에 수십 차례 이동하기도 한다.
 

[사진 = 이동하는 말무리]

많아야 서너 가족이 함께 이동해 다니는 형식을 아일식이라하고 수십, 수백 가족이 이동해 다니는 것을 쿠리엔식이라고 한다. 현재의 형식은 거의 아일식 목축이 대부분이다. 전쟁이 잦았던 몽골제국 당시는 외부의 공격을 막고 함께 전쟁에 나서기 위해서도 모여 사는 것이 필요했지만 목축만 놓고 보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차 아일식으로 변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다른 곳에 자리 잡으면 또 다른 고향

[사진 = 초원의 관광 게르]

몽골인들이 사는 집을 게르라고 부른다. 이동이 잦다보니 이 게르를 해체하고 짓는 일에 익숙하다. 통상 게르를 해체하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천막을 걷어내고 조립식 형태의 기둥들을 철거하고 나면 목초가 말라죽은 빈 땅만 둥그렇게 남게 된다.
 

[사진 = 게르 세우기]

한동안 유목민들의 삶의 터전이 됐던 초원지역은 금방 낯선 곳이 돼 버린다. 게르가 서있던 곳에 눌린 풀들이 그곳에 사람이 살았던 곳의 흔적으로 남을 뿐 살았던 유목민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 흔적은 유목민이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가축을 먹일 풀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는 것을 다른 유목민에게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새로운 초원에다 게르를 짓고 자리를 잡으면 그 곳에서 또 다른 고향이 된다.

▶ 세계정복의 바탕이 된 열린 마음

[사진 = 유목민, 말 사육]

어디서나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몽골의 유목민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다. 과거 몽골의 푸른 군대가 초원을 넘어 거침없이 다른 나라로 내달릴 수 있었던 힘과 남의 것을 쉽게 내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은 바로 유목민들의 이러한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칭기스칸이 정복지에서 종교와 민족 그리고 계급의 귀천을 가리지 않은 것과 유능한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적극 활용할 수 있었던 밑바닥에는 유목민들의 이러한 열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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