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홍콩 시위대 '공공의 적'이 된 홍콩 행정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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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지 기자
입력 2019-06-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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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리 람 장관, 범죄인 인도법 개정 강행 탓

  • 우산혁명 강제 해산시킨 ‘철의 여인’...홍콩 첫 여성 수반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분노의 화살이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을 향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 법안을 밀어붙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시위대와 경찰간 충돌로 유혈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홍콩 정부의 강경 진압에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자 '친중파' 캐리 람 장관으로선 궁지에 몰린 모습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며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간 '제2 우산혁명'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국제사회 지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중에 물러서면 법안을 지지하는 중국 지도부의 신임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10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이번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하느냐가 향후 그의 거취를 결정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사실 그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에 발탁된 것도 과거 2014년 정무사장 재임 시절 '우산혁명'을 강경진압한 공을 인정받으면서다. 우산혁명은 2014년 홍콩 시민들이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0일 넘게 벌어졌던 시위다.

람 장관은 당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며 1000여명을 체포했고, 결국 시민들의 직선제 요구는 '무산'됐다. 그에겐 '홍콩판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후 중국 지도부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2017년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 선거에서 홍콩 첫 여성 수반으로 당선됐다. 취임 이후 그는 홍콩 내 비난 여론을 의식하듯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유지하고 (우리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내각 16명 중 15명을 친중파로 채우며 비난을 받았다. 그에게 '친중파',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는 가난한 홍콩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형 관료다.  1957년 홍콩 완차이(灣仔)에서 태어난 그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홍콩대 재학시절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홍콩 행정청을 시작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후 행정청의 예산·재무·사회복지부 등 요직을 거쳐 2007년 도널드 창(曾蔭權) 전 홍콩 행정장관 재임 시절 개발국장으로 선임됐다. 

그의 '강경' 행보가 주목받은 건 사실 이때부터다. 람 장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통치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퀸스피어 철거를 강행했다. 당시 라파엘 후이 홍콩 행정청 정무사장이 그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거친 싸움꾼'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을 정도다. 이후 홍콩 4대 행정장관인 렁춘잉(梁振英) 체제에서는 '권력 2인자'인 정무사장까지 역임했다.  이후 2017년 렁춘잉 장관에 이어 홍콩 5대 행정장관에 취임했다.
 
 

캐리 람(林郑月娥) 홍콩 행정장관. [사진=신화통신]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의 시위대가 12일 의회인 입법회 밖 도로를 메우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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