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발견]39. 허균과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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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환 기자
입력 2019-04-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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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경진 '허균평전'

# 호민은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일이 이뤄질 만한 때를 노려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밭이랑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외친다. 그러면 저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드는데 함께 의논하지 않았어도 그들과 같은 소리를 외친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아 어쩔 수 없이 호밋자루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 <허균평전(허경진 지음∙돌베개), 306쪽>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고 배워온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허균의 제자였던 이식의 '택당집'에는 "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허균을 홍길동전의 지은이로 여겨왔습니다.

허균은 초당 허엽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허엽은 선조 때 집권세력이었던 동인의 우두머리였던 인물로, 높은 벼슬에 오를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명망이 높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허균에게는 열등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첫째 부인이 아닌 둘째 부인에게서 난 서얼이었다는 점입니다. 허균의 외할아버지가 예조참판으로 조정 대신이었음에도 서얼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이 열등감이 허균의 일생을 지배했습니다. 본인 능력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정치적 야망도 컸지만, 서얼이라는 신분 탓에 언제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용이 되고 싶었지만 이무기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습니다. 유교적 관습에 따르지 않고 승려, 기생들과 어울리고 자유롭게 행동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런 분노가 쌓이면서 혁명 사상도 함께 커졌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는 나라를 꿈꿨습니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과 같은 곳이죠. 그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꿈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발각되며 역적 혐의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지은이인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허균과 홍길동이 같은 꿈을 꾸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강릉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사진=홍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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