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증인' 김향기 "'자폐소녀' 지우役, 즉석에서 '디테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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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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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인'에서 '자폐소녀' 지우 역을 맡은 김향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감독 이한)의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는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純粹)의 결정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는 젤리는 '파란색', 라면은 '오뚜기'만 먹는 확실한 취향과 한번 본 건 절대 잊지 않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지닌 아이.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의 소통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지우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건너편 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만 것.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는 지우에게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노력 끝에 그는 '증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거짓말할 줄 모르는" 순수한 증인 지우의 발언은 재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주' 등으로 활발한 작품 행보를 펼친 김향기(19)는 이번 영화에서 자폐 소녀 지우 역을 맡게 됐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김향기지만 데뷔 16년 차 중견 배우. 작품과 캐릭터를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할 줄 아는 '베테랑'이다.

"'증인'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밝은 느낌으로 그려진 거 같아서 좋았어요. 막상 영화를 봤을 땐 더 많이 웃고, 따듯한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영화 '증인'에서 '자폐소녀' 지우 역을 맡은 김향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개를 앞두고 김향기는 '자폐 소녀'와 '웃음 코드'에 관해 많은 우려를 안고 있었다고. 작품 시작 전부터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웃음 포인트'가 나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지우와 순호가 만났을 때 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지우는 순수한 아이고, 대화를 할 때 숨길 줄 모르는 아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말할 때 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괜찮았는데 똑같은 표현도 실제 지우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들 혹은 그들의 지인들이 보았을 때는 불편한 부분이 생길 수 있잖아요. 우리는 모르더라도 아주 작은 부분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도 됐어요."

과연 '베테랑'다운 생각이었다. 자신의 작품과 연기에 책임질 줄 아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고민과 우려는 오히려 지우를 '순수'하지 않게 만들었고, 김향기는 다시금 지우를 비우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있는 그대로 지우를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제가 너무 계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우는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인데 말이에요. 이한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현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대화하면서 상황과 연기를 맞춰나갔죠. 그러면서 부담도 덜어졌던 거 같아요."

지우의 '순수'를 표현하기 위해 김향기는 즉석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윤동주 시인의 '눈'을 낭독하는 장면 역시 "지우의 느낌으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한 가지 틀을 정해놓기보다 함께 현장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해 보는 편이었어요. '지우라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고요. 윤동주 시인의 '눈'을 보면서 낭독할 때도 지우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얼 증후군을 가진 아이니까 자연스럽게 시를 다 외워버리는 거죠. 그게 지우의 첫 촬영이었는데 현장에서 나온 디테일이었어요. 이 외에도 음식을 한쪽으로만 씹는다든가, 손동작한다든가 하는 디테일이 있었죠."

영화 '증인' 스틸컷 중, 윤동주 시인의 '눈'을 낭독하는 '자폐소녀' 지우의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향기는 이한 감독이 준 스펙트럼 장애에 관한 책자 등을 보며 지우에 관해 알게 됐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것, 안정을 느낀다는 것이나 특정한 영상이나 대화를 따라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자료보다는 확실히 해외 자료가 많았어요. 영화 '템플 그랜딘'도 찾아보고 정보들을 이해하려고 했죠. 지우를 알아가며 놀란 건 아이들이 갑작스레 발작하거나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게 타고 나기를 '감각'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극도의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그런 부분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버렸던 게 미안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어요."

앞서 김향기와 정우성은 16년 전 모 제과 브랜드 CF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바. 당시 아역배우와 메인 모델로 만났던 두 사람의 인연이 공개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바 있다. "상대 배우로 다시 만난 정우성은 어땠냐"는 질문에 김향기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었다며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극 중 순호와 지우가 대화가 잘 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건 (정)우성 삼촌이 가진 편안한 느낌 덕이었던 거 같아요. 연기하면서 소통하는 과정이 잘 그려진 건 우성 삼촌의 자연스럽고 편안함이 많은 도움을 준 거 같아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순호와 지우의 반응을 위해 정우성과 김향기는 미리 '짜 맞춘' 연기는 하지 않았다고. 즉석에서 서로의 연기를 바라보며 호흡하고 느끼면서 '리액션'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재판 장면은 확실히 우성 삼촌 덕에 다른 느낌으로 잘 그려진 거 같아요. 지우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데, 순호 아저씨의 진심 어린 대사가 크게 느껴지면서 재판 장면은 더 따듯하고 강한 느낌으로 마음에 와닿았어요. 제 표정 연기도 미묘하게 달라졌던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잘 끌어내 주신 거 같아요."

영화 '증인'에서 '자폐소녀' 지우 역을 맡은 김향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느덧 데뷔 16년 차.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둔 새내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개 글이지만 오랜 시간 연기 활동을 펼친 김향기는 활동 기간 동안 많은 갈증, 고민, 깨달음을 거듭하며 '베테랑' 배우로서의 면모를 떨치기도 했다.

"확실히 '연기를 하고 싶다'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늑대소년'(2012) 이후였어요. 두 작품 개봉 이후 1년간 학교생활에 집중했었는데 괜히 촬영장에 가보고 싶고 연기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라는 게 내게 큰 부분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후 이한 감독님의 '우아한 거짓말'(2014)을 함께 하면서 연기에 대한 고민, 욕심이 생겼고 많은 걸 배우게 됐어요. 연기에 대한 의무감이 생기게 되면서 '확실성'이 커지게 된 거 같아요."

짧은 시기, 김향기는 큰 '성장'을 거두게 됐다. 연기에 대한 고민과 환경에 대한 불안은 "잠도 못 자게 할 정도"로 그를 괴롭혔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던 시기, 영화 '신과함께'를 촬영하게 된 김향기는 자연스레 환경도, 나이도 "사실은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깨치게 됐다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막상 고등학생이 되니 똑같더라고요. 사실 제 욕심이었던 거 같아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데 '잘 해보고 싶다'는 부담과 욕심이 컸던 거죠. 그땐 너무 힘들어서 엄마와 대화도 많이 했는데 막상 지내보고 나니 정말 좋더라고요. 그 시기를 지내보니 대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도 덤덤해요. 오히려 기대되는 부분도 있고요."

김향기는 올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19학번 대학 새내기가 된다. "학식 마스터"가 목표라는 그는 "대학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보다 잘 녹아들기를 바란다"는 다소 현실적인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빨리, 잘 적응하고 싶어요.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하지만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잖아요. 동아리 활동이나 대학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현장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느낌일 거 같아서 기대돼요. 어떤 느낌일까요? 그 친구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것들 만든다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요."

김향기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올해 4월 초 JTBC 드라마 '열여덟 순간'으로 계속해서 '열일' 행보를 펼칠 예정이다.

"학교도 열심히 다니면서 드라마도 열심히 찍을 생각이에요. 오랜만에 장편 드라마라 떨려요. 학생들의 이야기라 새로운 점이 있을 거 같아요. 스무 살이 되긴 했지만, 아직 '성인'이 됐다는 실감이 안 나서 교복을 다시 입는다는 것에 부담감은 없어요. 오히려 자연스러운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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