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칼럼] 가계부채 '과대평가'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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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자본시장평론가
입력 2019-01-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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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자본시장평론가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단연 가계부채다.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과거보다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움직임은 두 국면으로 나뉜다. 첫째는 2000년에서 2008년까지다. 개인부채와 공공부채를 포함한 총부채가 해마다 4.3%씩 늘었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9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 93%로 올랐다. 스페인, 영국같이 부동산 가격 버블이 일어났던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카드채 사태로 신용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을 때 부채 증가세가 잠깐 둔화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추세는 바뀌지 않았다.

둘째 국면은 물론 2008년 이후다. 상황이 좀 더 심각하다.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선진국에서는 가계부채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 늘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시점은 2014년 7월 이후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돈을 빌리는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그 결과 2018년 3분기 가계 빚이 사상 처음 1500조원을 넘었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96%로 상승했다.

규모가 적정할 경우 부채는 탓하지 않아도 된다. 부채 증가가 소비를 유발하고 자산 가격을 올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많다 해도 이 부분이 곧바로 위기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부채로 인해 위기가 발생하려면 규모와 증가 속도가 모두 비정상적이어야 한다. 여기에 정책적인 대응력 약화까지 더해져야 한다. 미국 가계부채는 2002년부터 급증했고 2005년부터는 여러 곳에서 경고음이 나왔다. 그래도 2008년 금융위기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정책 대응력 덕분이다.

다행히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시스템 위기로 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부채구조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부채는 신용도 면에서는 고신용자가, 소득별로는 고소득자가 대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2년에는 신용등급 1~3등급에 해당하는 고신용도 차주가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50%를 넘는다. 반면 중신용자나 저신용자 비율은 조금씩 하락하고 있다. 저신용자 대출은 소액 중심이어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변동금리를 적용받는 대출자가 증가하고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긍정적인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문제를 일으키려면 부채를 통해 자산가격이 오른 후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담보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이 채권 회수에 나서고 또다시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최근 10년 사이 국내 자산가격 상승률은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았다. 위기가 발생할 필요충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력은 대단히 높다. 외환 위기를 포함해 10년 사이에 위기를 3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기 인식이 높은 상태에서는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기 어렵다. 2008년 발생한 미국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에 짧은 충격만 주고 끝난 것도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력이 높아서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대응력이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다.

가계부채는 위기보다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부각되면 미래 채무상환력이 있는 가계조차 부채를 통한 소비를 꺼리게 된다.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는 계층은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로 소비가 힘들어진다. 투자에도 유사한 악영향이 나타난다. 부채가 늘어날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투자가 줄면서 장기 성장률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위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나친 위기 심리가 거시경제에 부담이 되는 건 피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언론은 위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위기를 제때 알려주지 못했다는 의식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냥 위기를 외치면 괜찮았던 경제까지 나빠질 수 있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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