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로클럭·로스쿨 출신만 편애"...경력법관 선발제도 형평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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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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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반 법조경력자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법관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사법연수원 성적순 임용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가진 이들을 법관으로 배출하기 위해 도입된 대법원의 ‘경력법관 선발’ 제도가 올해도 공정성·적절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올해 단기 법조경력자 법관임용 명단에 오른 일부가 부족한 법조 경력으로 임용되는 등 엄정해야 할 법관 선발이 되지 못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이 이에 대한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하자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 단체들은 사법부 독립의 시작이 공정한 판사 임용이라며 집단 반발 중이다.

법조 전문가들은 경력법관을 뽑는 데 있어 정확하고 공정한 선발 기준이 있어야 문제가 야기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엉뚱한 경력자들 선발...경력검증 부실 논란

경력법관 선발제도는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 중 법관을 선발하는 제도다. 법조경력을 기준으로 △단기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절차(법조경력 3년 이상 5년 미만) △일반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절차(법조경력 5년 이상) △전담법관 임용절차(법조경력 15년 이상) 등 세 종류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된 올해 법조경력자 법관임용 명단에는 법조경력이 부실하거나 다른 일을 하다 선발된 인원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명단에 오른 A씨는 의대를 졸업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해 의사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A씨는 지난해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동시에 소형 법무법인에도 이름을 올려 법관 임관에 필요한 법조경력 3년을 채웠다.

변호사 경력을 인정받아 판사가 될 A씨가 이름을 올린 판결문은 1건도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그가 마무리한 사건은 20여건이었지만 화해권고·소취하 등으로 끝났다. 수임 사건들도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송전선 관련 소송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이 기간 A씨는 해당 병원까지 가 야간당직으로 일했다.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주 5일 근무였다. 변호사 생활과 제대로 병행했다면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병원 측은 A씨를 직급이 과장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월급은 두 곳에서 모두 받았다.

​A씨는 “소속한 법무법인에서 화해나 조정으로 끝나는 사건이 많아 어쩔 수 없었고, 대신 소송 이외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해명했다. 겸직에 대해서는 “야간 당직이라 변호사 일과 병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해당 병원에서 야간당직을 맡아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주 5일을 근무하면서 법률가로서의 일은 얼마나 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 현재 제기돼 있는 상태다.

또다른 대상자 B씨는 로스쿨 졸업 후 법률구조공단에서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던 때 교통신호 위반 과태료와 관련해 잘못된 법률상담을 해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구조공단 상담게시판에 올라온 문의 글에 '긴급차량을 위해 진로를 양보한 경우에도 과태료처분은 피할 수 없다'고 답변한 탓에 당시 B씨의 상급자였던 출장소장 변호사에 대해 경위서가 징구되기도 했다. 이는 도로교통법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빚어진 사태다.

◇올해도 로클럭 순혈주의 고집과 로스쿨 출신 혜택 주는 현상 이어져

경력법관 선발제도의 또다른 문제는 법원이 새 제도 취지를 무시하고 순혈주의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로스쿨을 나와 경력법관으로 뽑힌 37명 중 27명이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이었다. 올해도 법관 임관 예정자 20명(군·공익법무관 제외) 중 14명이 로클럭에서 선발됐다.

로클럭은 로스쿨 졸업자 가운데 선발돼 2년 동안 판사들을 돕는 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가 법관임용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용문’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경력법관 임용에 있어 로스쿨 출신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뽑은 경력법관 가운데 로스쿨 출신만 8개월 동안 추가 교육을 시켰다. 함께 뽑힌 사법연수원 출신 판사들은 2주 교육이 전부였다. 연수원과 로스쿨 출신들이 호봉은 같은데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법원 스스로 로스쿨 출신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면서, 교육을 시켜 법관을 만들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임용에선 로스쿨 출신을 위해 정원을 따로 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법원은 올해 연수원·로스쿨 출신의 실력이 똑같다는 것을 전제로, 각각의 임용 정원을 두지 않고 통합해서 뽑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한 8개월 연수는 계속할 예정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 경력자 임용을 도입한 목표는 다양성이다. 기존의 연수원 성적순 임용의 공정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채택한 제도”라며 “법원에서 순치된 사람들을 위주로 법관을 선발하는 것은 순혈주의를 유지하면서 불투명성만 강화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전경[사진=연합뉴스]


◇변호사단체들 "대법원, 경력법관 임용 법조일원화 의지 없어"

서울변회, 변협 등 변호사단체들은 대법원이 경력법관 임용에서 여전히 로클럭과 로스쿨 출신을 지나치게 편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변회는 “경력법관 대부분을 법원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법조인보다는 법원 내부에서 재판 업무만을 보조하던 로클럭들로 채우겠다는 대법원 태도는 여전히 법관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법원의 근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법조일원화는 허울에 불과하고, 로클럭 제도는 법조일원화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로 악용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변회는 경력법관 임용 대상자에 국선전담 변호사가 다수 포함된 점도 문제 삼았다.

서울변회는 “미처 임기를 마치지 않은 국선전담 변호사들조차 단기 경력법관 임용 예정자로 발표했다”며 “이는 ‘국선전담 변호사 임기를 마치지 않고 도중에 법관에 지원한 사람은 법관으로 선발하지 않는다’는 종전 방침을 대법원 스스로 뒤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협도 "변협에서 시행하는 면담에 출석하지 않은 경력법관 임용 대상자 10명에 '미흡'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대법원은 이를 무시한 채 3명을 경력법관 임용 대상자로 발표했다"며 "대법원은 해당자를 최종 법관 임용에서 배제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변협은 "법조일원화의 일환으로 대한변협의 의견을 묻고서도 이를 반영하지 않는 대법원의 태도는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대법원은 올해 경력법관 임용 대상자 101명을 공개한데 이어 경력법관 임용 대상자에 대한 재야 법조계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임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법조 전문가들 "로스쿨과 사법연수원 출신 공평하게 혜택줘야"

법조 전문가들은 경력법관 선발 제도가 자리잡으려면 공정한 선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뽑힌 경력법관과 올해 선발된 법관 임관 예정자 대부분이 로클럭과 로스쿨 출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법원이 지난해 뽑은 경력법관 가운데 로스쿨 출신만 8개월 동안 추가 교육을 시켜 형평성 논란까지 일어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모 부장판사는 "로스쿨 출신을 편애해서 경력법관을 뽑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혜택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가 이 제도의 잘못된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출신이든 로스쿨 출신이든 간에 뛰어난 인재는 있기 마련"이라며 "대법원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관출신인 이모 변호사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로스쿨 출신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대법원 스스로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인정한 것"이라며 "공평하고 공정하게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판사들의 과중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뛰어난 경력법관을 뽑겠다는 취지도 있는데 한쪽 출신을 편애해서 선발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공정하지 못한 제도는 외면받기 십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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