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뉴스인문학] '날씨'란 말이 그런 뜻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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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8-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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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인생의 '태양 면회 일정'이 날씨라는데…



지표면에 닿은 낮은 하늘의 상황

요즘만큼 '날씨'라는 말을 많이 쓰는 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날씨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한자어로는 기후(氣候)나 기상(氣象)이란 말로 쓰인다. 기후는 장기간의 대기현상을 가리키고 기상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기현상을 가리킨다. 중국어로는 천기(天氣)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하늘(대기)의 기운(분위기)을 뜻한다. 날씨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표면과 닿아있는 낮은 하늘인 '대기'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기의 상황은 구름과 바람과 비와 눈, 서리, 벼락, 우박 같은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날씨라는 말은 '날'과 '씨'가 결합한 것이다.

날은 하루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낮을 중심으로 본 시간에 가깝다. 날이라는 말 속에 해(日)라는 뜻이 슬그머니 들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밤을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뉘앙스가 그렇다는 것이다. 씨는 무엇일까. '씨'는 마음씨, 말씨, 글씨에 들어가 있는 것과 유사하는 쓰임새로 보인다.
 

[흰 구름이 펼쳐진 맑은 하늘.]



날의 씀씀이와 됨됨이

이때의 씨는 대개 '씀씀이' 혹은 '됨됨이'의 의미를 지닌다. 마음씨는 마음의 씀씀이와 됨됨이, 말씨는 말의 씀씀이와 됨됨이, 글씨는 글의 씀씀이와 됨됨이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날씨는 날의 씀씀이와 됨됨이일 것이다. 마음과 말과 글은 인간이 쓰는 것이니 씀씀이가 어울리지만(남이 볼 때는 됨됨이), 하루라는 날의 대기를 쓰는 씀씀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됨됨이에 가깝다. 날의 됨됨이가 날씨다. 됨됨이는 형편이나 상황이나 모양새를 가리킨다. 날의 형편이나 상황이나 모양새는, 지표면과 닿아있는 낮은 하늘 즉 대기의 형편이나 상황이나 모양새에 따른다. 날씨와 거의 비슷한 말에 일기예보라는 말에서 쓰이는 일기(日氣)라는 표현이 있다. 일기를 풀어보면 '날의 됨됨이'이며 곧 날씨다.

날씨에는 좋은 날씨와 궂은(나쁜) 날씨가 있다. 이 구분이 가능한 것은 날씨의 의미가 무엇인지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적절한 날씨는 좋은 날씨다. 즉 날의 됨됨이가 좋은 것이다. 궂은 날씨는 인간의 삶에 방해가 되거나 시련이 되는 '날의 나쁜 됨됨이'다.

19세기 이후 '날'에서 '날씨'란 말 생겨

날씨는 원래 '날'로만 쓰이기도 했다. 날이 좋다. 날이 맑다. 날이 궂다. 이렇게 쓰였다. 날씨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이후라고 한다. '날'이란 표현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라, 그것이 대기의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고정하기 위해 날씨라는 말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

날씨의 핵심은 해가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날씨가 궂다는 말은, 해를 보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태풍이 오거나 먹구름이 끼거나 간에 모두 날씨는 궂은 것이다. 물론 계속 해만 내리쬐는 일도 재앙이다. 그렇지만, 해가 쬐는 날을 궂은 날씨라고 하지는 않는다. 날이나 날씨가 좋은 것도 날이나 날씨가 맑은 것도, 오직 해가 비치는 날을 표현한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지만 인간 또한 더할 나위없는 '해바라기' 존재다. 날씨는 그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미당 시, 송창식 노래)에 들어있는, 저 황홀을 떠올려보면 그 간절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16일 오전 경남 김해시청에 주차된 승용차 유리에 구름이 반영돼 보인다. [연합뉴스]



한국어의 '날'과 몽골어의 '나란'

몽골에서는 태양을 나란(naran)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날'과 같다. 하루의 개념과 낮의 개념과 날씨의 개념이 모두 해에서 비롯되는 사고방식이 서로 닮았다는 얘기다. 특히나 유목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이 진화해온 우리의 경우, 해는 더욱 귀한 존재다.

인간의 대기에는 비가 반드시 필요하고 눈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지만, 그건 정말 알맞은 정도만 필요할 뿐이고 언제나 많이 필요한 것은 태양이다. 태양은 사실, 인간의 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에서 움직이는 비와 눈과 구름과 바람이 잠깐씩 가렸다가 보여주는 것이 태양이기에 날씨에 포함된 것이다. 날씨가 인간의 대기에서 일어나는 됨됨이라지만, 언제나 주인공은 태양이다.

날씨의 주인공은 언제나 태양

최근 이어진 장마와 태풍의 나날만큼 그게 실감나는 시절도 없을 것이다. 모든 일기예보는 태양의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알림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 옆에 앉은 인턴후배와 아침에 나눈 얘기도 그것이다. "요즘 해를 너무 못본 것 같아요. 해를 못 보면 마음이 침울해지는 것 같아요." 너무 긴 장마에 다들 지치는 까닭이 물난리와 산사태에 있기도 하지만 근원적인 것은 태양을 못만난 때문이다. 날씨는 해바라기의 '태양 면회 일정'과도 같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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