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도시 이야기] 새해맞이 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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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지역전문가·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입력 2018-0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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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주 지역전문가·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새해다. 이때만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짐 거리들을 안고 산에 올라 산의 정기를 받으며 소망을 빌거나, 떠오르는 첫 해를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해맞이를 하러 간다. 해를 배경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도시는 찾아가는 길부터 북적이곤 한다. 허나 우리 조상들에겐 보다 고유한 새해맞이 풍습이 있었다.

여러 세시풍속 가운데에서도 술은 특히 우리 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다. 좋은 이들과 함께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행복이고 위안이다. 서양에서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마리아주(Mariage)라고 하여 중요하게 여겼다.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는 단어의 의미처럼 술과 음식의 어울림을 중요한 관계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물론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는 계절이나 각종 절기에 따른 궁합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3년 동안 훔친 국록(國祿) 이미 부끄러운데/ 새벽 시간 묻다 보니 어느새 세모(歲暮)가 닥쳤어라/ 주사위 노는 애들 모습 그래도 어여쁘다만/ 초백주(椒柏酒) 마신들 장부의 근심 풀어지랴/ 타 들어간 등화(燈火) 보며 분분한 세태 생각하고/ 어김없는 물시계 소리 곤곤한 천기가 느껴지네/ 말 안장 또 올려놓고 대궐 조회 서두나니/ 얇은 솜옷 파고드는 새벽 찬바람.

조선시대 문인 택당 이식(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 속 '섣달 그믐날 밤에 우연히 쓰다'라는 시의 구절이다. 섣달 그믐 밤에 초백주를 마시고, 설날 아침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대궐로 출근하는 택당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에 등장한 초백주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술로, 새해 아침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후 초백주를 마신다고 <동국세시기>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제조법이 특별하지는 않다.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 따르면 섣달 그믐날 후추 7알과 동쪽으로 뻗은 잣잎 7개를 따서 술에 넣으면 된다고 한다. 흔히 술을 빚을 때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술을 저으라는 미신적 처방이 있었듯이, 동쪽으로 뻗은 잣잎을 넣는 것 또한 삿된 것을 물리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뜻이 담겨 있다.

설날에 마시는 세주(歲酒)로는 도소주(屠蘇酒)도 있다. 도(屠)는 ‘잡다’라는 뜻이고, 소(蘇)는 사귀(邪鬼)의 이름이니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술'이 된다. 도소주의 유래는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한(後漢) 시기 명의 화타(華陀)가 설날에 마시면 모든 부정한 기운을 피할 수 있도록 처방하여 만든 술이라고도 하고, 당나라 의학자 손사막(孫思邈)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산초, 방풍, 백출 등의 약제로 빚어 새해를 즈음하여 집집마다 두고 남녀노소 모두가 마시는 약주로 어린 사람부터 시작하여 연장자의 순으로 차게 해서 마신 술이다. 주로 알려진 예법과 달리 어린 사람부터 마시게 한 의미가 특별한데, 어린 사람에게는 나이 먹는 것이 축하할 일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겐 세월을 잃어 서글프니 늦게 준다는 이유가 있다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도소주 마시는 것을 도소음(屠蘇飮)이라고 하며, 만드는 방법은 '백출 1냥 8전, 대황 1과2분의1냥, 천초 1과2분의1냥, 계심 1과2분의1냥, 호장근 1냥 2전, 천오 6전을 썰어 베주머니에 넣어서 섣달 그믐날에 우물에 넣었다가 1월 1일 이른 새벽에 꺼내어 청주 2병에 넣고 두어 번 끓인 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쪽을 향하여 한 잔씩 마시고 그 찌꺼기는 우물 속에 넣어 두고 늘 그 물을 퍼서 음용한다'고 기록돼 있다. 좋은 성분이 담긴 우물 물을 온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누고자 했던 그 마음이 경건하다.

2018년 새해가 된 지 열흘이 됐다. 우리의 새해 마음가짐과 기원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작심삼일이라 했지만, 새해 다짐에 감사의 마음을 더해 소박한 꿈을 꾼다. 무술년(戊戌年) 음력설엔 예전 그들처럼 지인들을 청해 초백주나 도소주를 나누며 다사다난했던 2017년의 묵은 재앙을 물리치고 새로운 희망과 복이 우리들의 도시 곳곳에 가득 들어서는 2018년이 되기를 기원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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