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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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7-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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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우리와 나이가 엇비슷한 가수 이선희씨의 히트곡 ‘J에게’를 일부러 차용한 것이 아니라 진짜 J 너라는 것을 J 너는 금방 알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였던가. 35년 전 가을 우리는 K시의 변두리에 있던 재수학원에서 처음 만났지. 쇠도 녹인다는 이팔청춘이던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억눌렸던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용암처럼 분출되는 ‘환장할 수컷’이었다.

작으나 당찼고, 볼이 유난히 예뻤던 너에게 상투적인 말이긴 하나 나는 첫눈에 반했다. 나의 의도된 ‘썸’에 넘어온 너와 나는 말을 조금은 편히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넌 불쑥 내게 물었지. “혹시 절 좋아하세요?” 너의 갑작스런 돌격에 일순간 당황했던 나는 “어쭈, 이거 봐라” 싶었지만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됐다. 그러나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좋아한다’고 대답했지.

그러자 넌 쉴 틈도 없이 맞받았다. “그럼 절에 가 스님이나 되세요.” 나는 ‘아!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싶어 낙담하고 당황하는데, 너는 “왜 그러세요? 절 좋아한다면서요. 화엄사 절”이라며 깔깔거렸다.

며칠 후 내가 ‘절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려 했느냐’고 묻자 J 너는 “그럼 교회 가서 목사나 되라, 그랬겠죠” 했다. 그때서야 난 우하하 웃으며 처음으로 너의 볼을 살짝 꼬집었지. 물론 이는 안성맞춤의 유쾌한 상황을 이용한 나의 의도적 스킨십이었는데, 내 손에 처음 닿았던 네 볼의 그 부드러운 느낌은 지금도 아련하게 내 손끝에 남아 있다.

그때부터 우린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사막 같은 재수 생활에 바야흐로 넌 나의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우리는 연인 관계가 되긴 힘들었다. 원하는 대학 진학이 지상목표였던 재수생이기도 했지만 내 눈에만 네가 예쁜 게 아니어서 경쟁력 뛰어난 수컷들이 네 주변에 우글거렸기 때문이었다. 대입 학력고사가 치러졌고, 그동안의 나의 구애는 실패했다. 우리는 ‘이성끼리 동성처럼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밤을 새웠다. 결국 너와 난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하면서 너는 T시로, 나는 S시로 각자의 대학이 있는 도시를 찾아 헤어졌다.

T시에서 너를 다시 본 것은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넌 여전히 밝고 유쾌했으며 나 또한 너를 향한 구애를 접고 친구로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넌 나를 데리고 네가 즐겨 가는 클래식 다방으로 갔었다. 그날이 내겐 처음 클래식 음악을 접한 날이었지. 치고이네르바이젠! 사라사테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은 너와의 풍요로운 여름 한 날로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르는 아델라이데.

그날 이후 나 또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집에 큰 전축이 있던 넌 가지고 있던 LP판의 음악들을 녹음 테이프에 부지런히 담아서 내게 보냈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드보르자크 '헝가리무곡', 나나 무스쿠리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존 바에즈 '쿰바야'··· 테이프마다 빼곡히 들어찬 작품 목록들의 깨알 같은 너의 펜글씨는 지금 보아도 참 정갈하다.

그렇게 3년쯤 지났던가. 너는 예고도 없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너는 실연의 상처로 중병을 앓고 있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아픈 너를 위로했었는데, 그게 그만 네가 나에게로 오는 계기가 돼버렸다. 이번에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렇게 내게로 오는 널 나는 거부하지 않았지. 그러나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유였다. 어리석다 못해 유치했지만 난 끝내 너의 남편이 되지 못했고, 넌 나의 아내가 되지 못했다.

친구는 싸워도 다시 남지만 연인은 남기 어렵지. 몇 년 후 J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렸다. 나도 결혼을 했다. 그렇게 너와의 모든 것은 삭제된 채 오랜 세월이 흘러 불혹의 나이가 넘어갔다. 내 이름의 글이 가끔 신문에 실리던 때였다. 낯선 이메일이 떴다. “너 맞지? 나다! 난 누구게? 미인인데···” 나는 직감으로 이메일을 보낸 이가 J 너라는 걸 알았다. “너는 J다. 넌 미인이다”는 답장을 보냈지. 그리고 오랜 시간 통화를 했었다. 그날 너와 통화를 마친 나는 정확한 까닭이 없는 중저음의 울음을 길게 쏟았다.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한다고 했었다. 이해한다는 네가 그리 고마울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만난 옛사랑이 잘 살고 있으면 배가 아프고, 못 살고 있으면 안타깝다더라. J 너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남편은 훌륭했고 아이들도 명석하게 잘 자랐더라. 그러나 내 배는 아프지 않았다. 참 좋았다. 너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고자 했다. 우린 다시 모든 연락을 끊기로 합의했다.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였기에 먼먼 훗날 꼬부랑태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나 한 번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했다.

벌써 우리 나이가 오십 중반도 넘어버렸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많은 것들이 시나브로 빠져 나가는 머리카락에 실려 허공으로 소실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기어이 가슴 한편에 자리잡고 앉아 떠날 줄을 모른다. 나에게는 J 네가 그렇다. 저 푸르디 푸른 시월 하늘에 궤적도 없이 능선에서 능선으로 훌쩍 넘어가버리는 한 마리 새를 좇고 있자면 더욱 그렇다.

오늘 밤에는 나 홀로 조용히 치고이네르바이젠과 반드시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르는 아델라이데를 들으며 파전에 술 한 잔 할 것이다. J 너도 파전을 무척 좋아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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