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유튜버 ‘함박TV’ 함정균 씨 “지하철역 환승만 30분…결국 카메라를 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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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정석준 수습기자
입력 2019-08-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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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전역 21개 노선의 환승역 돌며 장애인들을 위한 동영상 지도 만들어

함정균 씨가 태블릿을 이용해 영상 편집을 하고 있다.[사진=홍승완 수습기자]


그는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인터뷰이보다 손으로 더 많은 걸 표현했다.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 정보를 유튜브로 전하는 함정균 씨 이야기다.

함 씨는 전직 마술사다. 10년간 마술사로 활동했던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속초를 가던 중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이제 그는 몸을 기댈 수 있는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오면 몇 미터 움직이는 거조차 힘들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다. 휠체어에 몸을 싣자 비장애인일 땐 보이지 않던 벽이 그를 둘러쌌다. 장애인 이동권이었다. 비장애인들에게 5분이면 될 대중교통 환승이 장애인들에겐 때론 30분 이상 걸렸다.
 

함정균 씨가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고로 팔과 손이 자유롭진 않지만,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사진=홍승완 수습기자]


함 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건대입구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데 진동 때문에 떨어질 것 같았어요. 누군가 밀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비장애인이라면 그 공포감을 알 수 없을 거에요.” 함 씨는 수도권 전역 21개 노선, 100곳 가까운 환승역을 전부 돌며 환승 정보를 영상으로 모아 동영상 지도를 만들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그의 자택에서 함 씨를 만나 그의 삶과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의 진동 휠체어 뒤에 꽂힌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홍승완 수습기자]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쩌다 장애인’이라고 굵고 진하게 적힌 깃발이 눈에 띄었어요.

원래 직업은 마술사였어요. 6년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속초를 놀러 가다가 바로 앞에 넘어지는 일행을 피하다 사고가 났죠. 사고로 경추가 손상돼 전혀 움직이지 못했어요. 그래도 꾸준한 재활로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어요. 자유롭지는 않지만요.
 

사고가 일어나기 전 마술사로 활동했던 함정균 씨. [사진=함박TV 유튜브 화면 캡처]


2013년 3월 10일, 중앙분리대 머리 충격, 경추 3·4·5번 골절··· 그는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기자는 함 씨가 장애를 가지게 된 사고를 묻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불편한 손으로 목 뒤를 가리켜 당시 상황을 웃으며 설명했다. 그는 “머리를 부딪쳤다”는 말 대신 “머리를 박았다”고 표현했다. 머쓱해 하는 기자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그의 세심한 배려였다.
 

함정균 씨가 그의 첫 촬영 장비인 액션캠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홍승완 수습기자]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란 소재가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비장애인일 땐 알 수 없었던 불편함이 장애인이 되고 보니 눈에 들어왔어요. 특히 지하철 환승이었죠. 비장애인에겐 계단을 오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잖아요. 그러나 장애인들은 무조건 리프트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역무원에게 요청하려 해도 역무실을 찾기도 어려웠어요. 환승하는 데만 30분 걸린 경우도 있죠. 이런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내가 환승하는 과정을 휴대폰으로 담아서 올려보자.” 이게 첫 시작이었죠.

-지난해 11월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뉴스에 직접 출연해 어려움을 토로한 영상을 봤어요. 꾸준한 활동으로 무언가 변하고 있단 걸 느끼셨나요.

지하철 타기를 두려워하는 장애인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제 환승 영상을 보고 ‘밖으로 나가도 괜찮겠구나. 고맙다.’라고 하시기도 해요.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지금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리고 서울교통공사도 장애인 이동권을 고려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처음 촬영을 시작한 3년 전과 비교하면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가 생긴 역이 정말 많아졌어요.
 

그는 5분 내외 영상을 하나 만드는 데 2~3일 정도의 작업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사진=홍승완 수습기자]


-본격적으로 환승 정보 영상을 찍기 시작했을 때, 주변 분들은 응원해주셨나요.

처음엔 제 아내마저도 부정적이었죠. 당장은 돈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한 달에 치킨 두, 세 마리 정도의 수익이라면 감이 잡히시겠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제 영상을 발판삼아 외적인 수입이 생기고 있어요. 강연 요청이나 공모전을 통해서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제 응원을 받고 있어요. 때론 아내가 리포팅까지 도와주고 있어요.

-<함박TV> 유튜브 정보를 보면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지만 생활력은 누구보다 강하다"는 대목이 인상 깊어요. 그만큼 남다른 목표도 있으시겠죠.

목표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100만 구독자를 지닌 크리에이터에요. 물론 제 능력과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겠죠. 제 구독자가 4천 명인 현재로서는 1만 명이 목표에요. 그래도 가장 큰 목표는 아프지 않고 무엇 보다 다치지 않는 거죠. 지금 이대로 제가 하고 싶은 영상 촬영과 편집을 쭉 하는 게 제 장기적인 목표에요.
 

[사진=홍승완 수습기자]


2013년 사고 이후 그의 일상은 느려졌다. 400타였던 타자 속도는 60타가 됐고, 5분 걸리던 지하철 환승엔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변화를 이끄는 속도는 누구보다 빠르다. 그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이 제한된 지하철 밖 세상을 알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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