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마오쩌둥 데자뷔' 시진핑 우상화는 요즘 왜 멈칫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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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8-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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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⑮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땡전 뉴스’를 아시나요? 땡전 뉴스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제5공화정의 전두환 정권 시절 뉴스를 빗대는 말로, 당시 뉴스에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활동기사를 맨 먼저 보도한 데서 나왔다. 이름의 유래는 9시 시보가 ‘땡’ 하고 울린 후 나오는 헤드라인 또는 첫 소식에서 바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라는 멘트가 나온 데서 따왔다.

‘땡시(習) 뉴스’ 라고나 할까? 시진핑(習近平)이 국가주석으로 등극한 2013년 3월부터 2018년 9월 현재까지 약 5년 6개월간 우리나라 KBS 9시 뉴스 격인 중국중앙TV(CCTV 1) 7시(현지시각) 뉴스 '신원롄보(新聞聯播)' 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중공중앙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주석 시진핑’의 활동기사를 맨 먼저 보도해 왔다.

그런데 지난 7월 12일 CCTV 7시 뉴스 방송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뉴스 시작 몇 분쯤 화면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앵커에게 종이 쪽지를 전달해주었다. 그 직후부터 시진핑 주석의 자료화면이 급감했다. 항상 시진핑 앞에 달렸던 ‘중공중앙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주석’이라는 긴 직함을 빼버리고, ‘시진핑’ 3음절 성명만 호칭했다. 시진핑 정권 출범 후 최초의 사건이다.

그 뿐만 아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지난 7월 9일자와 15일자 1면에 ‘시진핑(習近平)’ 세 글자가 사라졌다. 시진핑 집권 이후 2000여일간 일보(日報) 1면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던 석 자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심상치 않는 파천황적 사건이 발생했다. 왜 그랬을까?

왜 갑자기 변했을까? 이를 두고 '미국의소리(VOA)', '빈과일보', '대기원시보' 등 미국과 홍콩, 해외에 서버를 둔 반중단체 매체에서는 각자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흥미진진한 '삼국지'식 시나리오를 창작해냤다. 그중 걸작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대미 강경책을 주장한 시진핑의 실책(?)으로 그의 관영언론기관 및 정권 장악력이 급속도로 감퇴하고 있는 징표다.

둘째, CCTV와 인민일보 등 베이징 선전기관에 잔존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계열의 류윈산(劉雲山, 전  당서열 제5위, 전 중앙당선전부장)등 반(反) 시진핑파의 저항이 시작돼 상하이방 장쩌민의 태자당의 시진핑에 대한 총반격이 개시됐다.

셋째, 날로 심화되고 있는 시진핑 개인숭배와 1인독재로 인하여 베이징 지도부 내부에 심각한 권력암투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정변 발생 직전의 징후다. 

과연 그럴까? 이들 외신들의 지난 40년간 누적 중국 관측 적중률이 10% 이상만 되어도 믿겠는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재선출됐고, 올해 3월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조항까지 삭제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괴물황제’의 출현을 막기 위해 고심 끝에 고안한 임기제와 집단지도체제를 흔들어버렸다.

당의 ‘핵심’을 넘어 ‘영수’로 불리기 시작한 시 주석은 공산당 당장(黨章)과 헌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시진핑 신시대 사상'을 명기하고 대륙 방방곡곡에 ‘시진핑 사상’ 학습 열풍을 조장했다. 인민해방군에선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어록'을 모방한 시진핑 어록 수첩을 발간해 전 군에 배포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유행한 마오쩌둥 찬양가처럼 시진핑 찬양을 담은 노래도 암묵적인 국가 지원 아래 불리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의 대입 수학 능력 시험의 논술(작문) 시험에서 시진핑 사상과 관련된 문제들이 다수 출제되었다. 7월 1일에는 지린(吉林)성 성도 창춘(長春)시 지하철 1호선에 시진핑 어록으로 지하철을 도배한 ‘홍색테마지하철열차(红色主题地铁列车)가 개통되었다. 이처럼 올해 상반기 시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가 갈수록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시대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시진핑 우상화 열기에 냉각수를 뿌리는 징조들이 발생했다.  지난 6월 26일 산시(陝西)성 사회과학연합회는 량자허(梁家河, 시진핑이 젊은 시절 7년간 지식청년으로 거주했던 토굴로서 성역화 됐음) 개발 프로젝트 포스터를 전격 철거했다. 지난 7월 5일 중국 공산당 당 중앙 판공실은 중국 각 성에 걸려있는 시진핑 총서기의 초상을 철거하라는 긴급지시를 하달했다. 연이어 7월 12일 CCTV 8시 '탱시뉴스'의 실종, 같은 달 9일자와 15일자 [인민일보]1면에 시진핑의 이름과 사진의 사라졌다. 그 무렵 장춘 홍색테마열차 운행도 중단했다.

그로부터 두달여 지난 지금, 중국 전역의 시진핑 숭배는 지속되고 있지만 그것의 열기는 금년 상반기보다는 덜한 편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 홍콩 망명단체 매체의 중국정변설, 시진핑 권력약화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시진핑의 책임설, 언론계에 잔존한 상하이방의 저항, 등등은 전부 '삼국지연의'를 넘어선 '서유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에 쿠테타를 일으켰다는 것과 같은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다.

사실 지난 7월 시진핑 개인 우상화 급브레이크 조치는 시 주석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차가운 얼음 조각으로 자신의 뜨거워진 이마를 식히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오쩌둥의 1인지배 우상화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덩샤오핑이 제도화한 집단지도체제를 깨버린 시진핑.

하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못지 않은 비범한 전략가인 시진핑이 중국의 오랜 과두지배원칙에 반하는 1인지배와 거기에서 더 나아간 1인 우상화가 얼마나 부담이 크고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인가를 왜 모르겠는가?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딱 여기까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용케 지존의 지위를 마음껏 누리다 자연사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세대대로 받을 역사의 준엄한 비판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건가!”

요즘 한 풀꺾인 듯한 대륙의 시 주석 개인숭배 열기를 감촉하면서 필자는 이렇게 시진핑의 내심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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