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아이 못 낳아요"...빚 끌어안고 시작하는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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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현 기자
입력 2020-12-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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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혼인 기간 5년 이하 신혼부부 126만쌍… 지속 감소 추세

  • 평균 소득 5700만원… 대출 중앙값은 1억1200만원으로 증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직장인 정민씨(33·가명)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동산 기사를 검색한다.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중랑구 한 아파트에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한 정씨는 당장 1년 후가 걱정이다. 전세를 연장하거나 집을 새로 사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중심 없이 바뀌다 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고 푸념을 한다. 주거 부담에 출산 계획도 미뤘다. 부모님의 성화에도 현실은 현실이다. 맞벌이를 하는 정씨 가정에 덜컥 아이가 생긴다면, 육아휴직이나 퇴사로 수입이 반토막이 된다. 

신혼부부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빚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신혼집 마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정작 내 집 마련의 꿈은 멀기만 하다. 주택을 보유한 신혼부부는 오히려 줄어들어 10쌍 중 6쌍은 무주택 상태다.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다 보니 혼인 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결혼이 줄어들면 비혼 출산에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 사회 분위기에 따라 출산도 줄어든다. 심지어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양육비 부담과 경력 단절 등을 우려해서다. 

인구 절벽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결혼 자체가 사치로 치부되기도 한다. 주택 마련에다 혼수 등 결혼 비용까지 겹치다 보니, 요즘 젊은 남녀는 신혼부부가 되기보다는 동거를 택하기도 한다.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9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는 이 같은 결혼에 대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혼인 기간 5년 이하 신혼부부는 126만쌍으로 전년 대비 4.7%(6만2000쌍) 감소했다.

신혼부부 수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147만2000쌍이었으나 이후 4년 연속 감소했다. 130만쌍 이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혼 신혼부부는 99만8000쌍으로 집계됐다.

신혼부부 감소는 혼인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 때문이다.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로 계산한 혼인 건수의 연평균 증감률은 2013~2017년 -4.9%였으나 2015~2019년에는 -5.7%로 하락 폭이 커졌다.

실제로 혼인 연차별로는 최근 혼인한 1년 차 신혼부부가 전년 대비 6.4%(1만6000쌍) 감소한 23만7000쌍을 기록했다. 전체 신혼부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년 차가 18.8%로 가장 낮았다. 5년 차 신혼부부가 26만8000쌍인 것과 비교하면 3만1000쌍 줄어든 셈이다.
결혼 준비의 시작은 대출··· 내 집 마련은 '요원'

날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이 결혼을 포기하게 만든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결혼 가치관 설문조사'에서 설문에 응답한 20~30대 미혼 남녀는 혼인 계획이 없는 이유로 '결혼 비용(23.3%)'을 꼽았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 듀오웨드의 '2020 결혼 비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 자금은 1억5332만원이다. 이 중 주택 마련 비용은 1억800만원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내 집 마련 부담이 늘어나면서 신혼부부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대출 증가율이 더 가파르게 나타났다. 

2019년 신혼부부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합한 연간 평균 소득은 5707만원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소득의 중앙값은 5109만원으로 2018년의 4883만원 대비 4.6% 늘었다.

평균 소득은 맞벌이 부부가 7582만원으로 외벌이 부부의 4316만원보다 1.8배 높았다. 또한 주택을 소유한 부부(6325만원)는 무주택 부부(5242만원)보다 소득이 약 1.2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권 대출잔액을 보유한 초혼 신혼부부 비중은 85.8%로 전년 대비 0.7% 포인트 늘었다. 이는 제3금융권을 제외하고 초혼 부부가 금융권에서 받은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에 대한 기업대출을 합한 것이다.

대출 잔액의 중앙값은 1억1208만원으로 전년(1억원)보다 12.1% 증가했다. 중앙값은 대출 금액을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중앙에 위치한 값을 의미한다. 평균을 사용하면 대출 규모가 큰 소수의 경우로 결과값이 왜곡될 수 있어 중앙값을 사용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대출잔액 구간별로 보면 1억원 미만으로 대출을 받은 비중은 46.7%로 전년의 51.5% 대비 줄어들었다.

반면 1억원 이상 대출 비중은 증가했다. '1억~2억원 미만'의 비중은 전년 대비 2.2% 포인트 상승한 32.4%로 가장 많았다. 2억~3억원 미만 구간도 13%로 1.5% 포인트 증가했고, 대출잔액이 3억원 이상인 비중도 10%로 1.1% 포인트 올랐다.

대출잔액의 중앙값은 맞벌이 부부(1억2951만원)가 외벌이 부부(1억원)보다 약 1.3배 높았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1억4674만원)는 무주택 부부(8790만원)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았다.

대출잔액은 점차 고액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은 멀기만 하다.

주택을 소유한 초혼 신혼부부 비중은 42.9%로 전년 대비 0.9% 포인트 하락했다. 주택을 1건(35.9%)과 2건(5.7%) 소유한 초혼 신혼부부 비중은 전년보다 각각 0.7% 포인트, 0.2% 포인트 떨어졌다.
 
인구 절벽 앞둔 한국, 아이 낳은 신혼부부는 감소
 

[통계청 제공]



주거가 안정되지 않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면 출산 계획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9년 0.92명으로 전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에 속한다. 올해는 0.8명대 진입을 앞둔 상황이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지는 인구 자연감소로의 전환도 예정돼 있다.

앞으로도 합계출산율이 상승하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신혼부부 수가 줄어드는 데다 아이를 낳지 않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혼 신혼부부 99만8000쌍 중 자녀가 없는 부부의 비중은 42.5%로 전년 대비 2.3% 포인트 상승했다. 자녀를 출산한 초혼 신혼부부의 비중은 57.5%이며, 평균 출생아 수는 2018년 0.74명에서 0.03명 감소한 0.71명을 기록했다. 초혼 신혼부부의 혼인연차별 평균 출생아 수는 △혼인 1년 차 0.18명 △2년 차 0.46명 △3년 차 0.72명 △4년 차 0.94명 △5년 차에 1.15명이다.

초혼 신혼부부의 첫째 자녀 출산 소요 기간도 2016년 15.2개월에서 2019년에는 16.1개월로 한달 가까이 늦춰졌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7.6개월이 소요돼 첫째 아이를 낳기까지의 기간이 가장 길었다.

평균 출생아 수는 맞벌이(0.63명)보다 외벌이(0.79명)가, 무주택 부부(0.65명)보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0.79명)가 더 많았다.

부부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녀가 없는 부부의 비중도 함께 증가했다. 연소득이 1000만~3000만원 미만인 부부는 자녀가 있는 비중이 63%에 달했지만 연소득이 1억원 이상인 부부는 49.1%에 그쳤다. 이는 부부의 소득이 맞벌이 여부와 관련성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번 통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5년 차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가 1.15명에 그친다는 것"이라며 "저출산위원회에서는 결혼한 사람의 평균 출생아 수를 1.8명이라고 하니, 현실과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평균 출생아 수가 무주택 부부보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에서 더 많은 점 역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현실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조 교수의 평가다.

그는 "부동산을 포함해서 결혼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한다는 말)까지 해서 대출을 마련하고 난 뒤에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모두가 전세나 월세 등 렌트를 하라는 정부의 주거 정책은 반대로 말하면 아이를 낳지 말라는 얘기나 같다 보니 대한민국 인구 정책은 여기부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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