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업통상 전문가가 본 통상 조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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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조 기자
입력 202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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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윤 전 식약처 차장(강릉원주대 초빙교수)



대외 교섭은 태생적으로 외롭고 힘든 일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아닌 바깥 존재에 대해 의심하며, 험난한 역사를 경험한 우리는 외국의 요구 사항을 접수하고 교섭하는 사람들을 쉽게 오해한다. 이들은 불신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통상 교섭은 기술적이고 복잡한 내용인 데다 국내 각계와 각 정부 부처의 이해가 민감하게 얽혀 있다. 다양한 논리와 전문성으로 무장한 외국 대표단과 교섭하는 것도 어렵고 국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조정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수의사였고 검역 전문가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여러 통상 협상에 참여했다. 한·미 쇠고기 분쟁, 한·캐나다 쇠고기 분쟁 등 많은 검역 협상에서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동료들과 10여 년 세월을 함께 일했다. 어떤 경우는 외교부가 수석인 협상이었고, 어떤 경우는 농림부가 수석인 협상이었다.

농민들의 이해와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는 농림부와 국가 전체 이해를 조율해야 하는 외교부는 다른 배경과 시각을 가진 관계로 대부분 많이 다퉜다. 그러나 농림부와 외교부 협상자 모두 전문가로서, 정직한 동료로서 서로의 등을 맡기고 외국과 협상할 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이런 측면에서 며칠 전 산업통상자원부발(發)로 실린 '미국, 외교부로 통상 이관 반대'라는 기사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산업부는 곧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인위적으로 외국의 입장을 끌어들여 자기 조직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 것이라면 대외 교섭을 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계명을 어긴 셈이다.

통상조직 이관을 둘러싼 문제가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2013년과 2017년에 이어 벌써 3번째다. 논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현 통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산업부에서 통상과 산업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오래전 주요 통상 이슈는 산업부 소관 분야를 떠나 다양한 부처가 관련된 국가적 이슈가 됐다. 그동안 가장 큰 통상 현안은 농·축·수산물 문제였음은 물론이고, 1990년대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도 주요 이슈는 조세당국과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환경부 소관인 자동차세, 안전 기준과 환경 기준 문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환경·방역·안전·보건·서비스 관련 외국의 요구 사항에 대응하고 새로운 국제 규범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산업부의 산업 전문가에게 맡기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각 부처와 협업해 넓은 시각으로 국익 전체를 조망하고 협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과거 외교부 주도의 대외경제 교섭 15년이 완벽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대국과 협상하는 것보다 외교부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 부처 전체가 외교부를 중심으로 대외교섭 능력을 조금씩 향상시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한때 농림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경제안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산업부가 이야기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공급망도 물론 중요하지만, 당장 식량 안보가 그 이상으로 급박한 현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밀 생산지인 우크라이나가 격전지가 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당장 식량 안보를 강화하고 식량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는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반등은 비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면, 지금 조직 개편을 통해 경제안보 전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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