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더 은밀하게…더 치밀하게…’ 짝퉁 레깅스업체 불법유통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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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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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CK무역' 영업장(왼쪽 첫째). 'CK무역'에서 '렛츠다이어트코리아'로 상호를 바꾼 뒤 영업장(왼쪽 둘째부터 넷째까지)


아주경제 박정수 기자 =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무렵,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야시장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 그때 그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미리 정해진 시간에 그들은 업체를 기다렸고, 업체들은 발빠르게 물품을 받고 사라졌다. 때로는 그들이 직접 물품을 챙겨 업체들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중국산 레깅스(브랜드 '렛츠다이어트')의 원산지를 한국산으로 속여 불법 행위를 일삼던 중국 수출입 및 유통무역회사 CK무역(대표 조수봉)이 다시 불법 영업을 재개한 '그곳'은 더 치밀하고 더 은밀했다.

중국으로 잠적했던 조수봉 대표가 최근 CK무역을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Let's Diet Korea)'로 상호를 변경, 한국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또다시 문을 열었다.

◆ '더 은밀하게···더 치밀하게···'

최근 국내 레깅스 업계를 통해 CK무역의 영업 재개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30일 오후 9시경 동대문역사문화 공원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영업장으로 향했다. 앞서 27일에도 이곳을 찾았으나 이른 발걸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는 사실만 확인했고, 영업 현장을 포착할 수 없었다.

30일에 밤을 새울 작정을 하고 다시 찾았다. 이미 한 업체가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영업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물품을 싣고 있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분 내에 물품을 받고 사라졌다. 물건을 싣고 내리는 작업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분위기도 지난해 10월과는 달랐다. 과거에는 가게 문을 열어둔 채 영업을 했고, 가게 앞에는 물품 상자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은 굳게 닫힌 채 대부분 물품이 가게 안에 있었다.

1시간쯤 지난 오후 10시경에 또 다른 업체가 영업장을 찾았고 이번에도 이들은 기민하게 상품을 주고 받았다. 오후 11시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직원은 가게 문을 활짝 열었고 이내 업체가 차를 세우고 거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1시간에 한 번꼴이었다.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직원들은 업체들이 가고 나면 영업장 문이 잠겼는지 꼭 확인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후 2~3개 업체가 오갔고, 다음 날인 새벽 1시에는 직원 2명이 직접 물품을 어디론가 배달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30분이 지나서야 영업장으로 나타났고 다시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서야 들어갔다.
 

▲엉업장 안에 선캡으로 보이는 물품(가운데). 퇴근하는 직원(오른쪽 첫째).

거래가 뜸해질 시간임을 확인하고 조금 더 가까이서 확인해봤다. 영업장 안에는 '렛츠다이어트'가 적힌 상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레깅스가 아니었다. 더욱 가까이 가보진 못했지만 선캡인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취급하는 선캡은 현재 다양한 쇼핑몰을 통해 팔리고 있다. 원산지는 역시나 국산으로 돼 있다. 원산지 허위 표시가 레깅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후 이들은 새벽 2시 즈음에서야 문을 닫는 모습을 보였다.

◆ 쓰레기 뒤져보니 역시나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직원들이 퇴근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새벽 3시, 이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져봤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이들의 쓰레기 속에는 찢어진 다양한 거래명세표들이 있었다. 중국으로 잠적한 조수봉 대표 이름이 선명히 적힌 영수증도 있었다. 더구나 이들이 버린 우편물에는 렛츠 다이어트 코리아 대표가 이XX씨인 것도 알게 됐다. 최근 한국 파트너를 고용했다는 전언에 확신이 들었다.
 

▲'렛츠다이어트코리아' 직원들이 버린 쓰레기봉투 안에 있는 수입화물품목카드와 거래명세표.

무엇보다 이들은 수입화물품목카드도 버렸다. 입항 일이 3월 27일자였으며 바지와 모자, 모자박스 등을 들여온 것이다. 결국 이들이 취급하는 모자(선캡) 또한 수입품, 쇼핑몰에서 국산으로 팔리는 모자가 중국산으로 의심되는 이유다. 관세청에 이들의 수입화물품목카드를 요청한 결과, 중국산으로 신고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의 거래명세표에는 홍삼 아이크림, 초록색 병, 클렌징폼, 마스크팩, 유자차, 물광 장미 등 다양한 물품이 적혀 있었다. 원산지 둔갑이 광범위하게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강제 수사는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조 대표가 다른 사람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했고, 지난해 11~12월부터 진행했다. 추후 해당 영업장을 방문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에게 국내로 들어올 것을 요청한 바 있으며, 조 대표가 입국 의사도 밝히기는 했다"며 "다만 원산지 변경 물품 확보와 수입품 대조 등 증거를 잡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손놓고 있는 사이 중국산 원산지 둔갑은 더욱 판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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