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우리나라 최초의 마스터 블렌더ㆍ500년 가문의 종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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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봉화.충주=기수정 기자
입력 2018-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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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삼주 혹평에 충격…술에 인생 건 이종기 명인

  • 500년 전통 충재 종가 지키는 우직함…권용철·권재정 부부

사람은 여행을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해준다. 사람을 통해 역사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정부 역시 몇 해 전부터 '사람'에 주목했다. 좋은 경치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더해 사람을 만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까지 여행의 범주에 포함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와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가 지난 2015년부터 운영 중인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향토 역사와 삶을 함께한 명사가 고품격 이야기꾼(스토리텔러)이 되어 여행객을 이끄는 이 프로그램은 인문학을 결합한 새로운 여행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올해 충남 당진 김금순 대표와 전북 임실의 김용택 시인, 경북 상주 허호 장인, 경북 봉화의 젊은 종손 부부 권용철·권재정 명인, 충북 충주 이종기 명인, 경기 남양주 이하연 명인 등 지역 명사 6건을 새롭게 선정했다. 

이 중 봉화의 종손 부부 권용철·권재정씨와 오미자로 성공한 이종기 박사를 만나 그들이 살아온 생생한 ‘인생담’을 들어 보았다. 

◆달실마을을 지키는 우직함···500년 가문의 종손 종부
 

봉화 달실마을 명인으로 선정된 충재 권벌 종가 종손 권용철 명인[사진=기수정 기자]


봉화 달실마을에는 조선 중기의 이름난 유학자이자 선비인 충재 권벌(1478~1548)의 종가 '충재고택'이 있다.

충재는 조선 중종 때 사람으로 조광조, 김정국 등과 함께 영남 사림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기묘사화에 연루돼 파면되자 이곳으로 건너와 종가 터를 잡았다.

그렇게 500년 역사가 흐른 지금, 충재 고택은 젊은 종손 부부가 지키고 있다. 권용철 명인(45)과 그의 아내 권재정 종부(43)다.
 

권용철.권재정 종손 부부가 종가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사실 권용철 명인은 원래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종손으로서의 책임감과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렸다.

역시 젊은 종손이 만드는 종가문화는 남달랐다. 청암정과 석천정사, 추원재 등 종가의 대표 문화유산을 생산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종부인 권재정씨와는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20대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웃는 모습이 닮은 권용철 종손과 그의 아내 권재정 종부. [사진=기수정 기자]

젊은 나이에 혼인한 권재정 종부에게 신혼생활을 즐길 틈은 없었다. 혼인하자마자 충재고택의 예법을 익히는 것은 물론 시부, 시모는 물론 시조부와 시조모까지 모셔야 했다.

시집살이가 힘들어 눈물로 날을 지새우진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권재정 종부의 대답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삶이 퍽 즐거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예천 권씨 종손 집안에서 자란 덕에 종가의 생활이 익숙했단다.
 

권용철 종손과 그의 아내 권재정 종부는 최근 종가문화를 바탕으로 예비적 사회기업을 만들어 지원사업을 유치하고 전통 체험프로그램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권재정 종부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손님을 접했고 어른들께 예절을 갖추는 법도 등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나중에 결혼하면 꼭 어르신들을 모시고 살고 싶었다"고 전했다. 

권용철 종손은 종부로서 집안을 대표해 대외행사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하고 열 번이 넘는 제사와 수백명이 넘는 손님맞이 등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아내가 한없이 고맙다. 

이들 부부는 최근 종가문화를 바탕으로 예비적 사회기업을 만들어 지원사업을 유치하고 전통 체험프로그램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종가, 그리고 지역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리라 다짐한다. 

◆'우리 술의 독립운동가'···우리나라 최초의 마스터 블렌더
 

국내 최초 마스터 블렌더 이종기 명인이 직접 개발한 오미자 와인을 따라주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다음으로 만난 명인은 이종기 명사(63)다. 

이종기 명사는 ‘한국 술의 아버지’라 불린다. 국내 최초의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 위스키를 제조하는 장인)’ 타이틀을 보유한 덕이다.

‘썸싱 스페셜’, ‘윈저’,‘골든블루’ 등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술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으니, 주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종기 박사[사진=기수정 기자]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술'에 인생을 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코틀랜드로 양조학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던 이종기 명인은 어느 날 담당 교수가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의 대표 술을 가져와 시음회를 열자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그는 인삼주를 가져갔는데, 이 인삼주를 마신 교수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반면 일본 유학생이 가져온 청주와 위스키를 맛본 교수는 술맛을 극찬했다고. 이 일로 퍽 자존심이 상한 그는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술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신이 개발한 오미자 와인 등에 대해 설명해 주는 이종기 명인 [사진=기수정 기자]


이종기 명인은 자신을 ‘우리 술의 독립운동가’라고 선언하고 ‘술’에 인생을 바치리라 결심했다. 

2005년 충북 충주에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을 오픈했고 명주 개발을 위한 연구를 15년간 진행한 끝에 경북 문경의 ‘오미자’를 원료로 한 와인 개발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세계핵안보정상회의’와 ‘평창 패럴림픽’에 건배주가 되기도 했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종기 명인이 운영하는 세계술문화박물관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이종기 명인은 "술은 수백 가지 요소로 인해 결정되는 색과 맛과 향 등 매력이 있어야 한다. 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담겨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좋은 술’이 ‘좋은 술 문화’를 만든다는 믿음을 갖고 오늘도 우리 명주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한다. 

한편 문체부와 관광공사는 지역 명사에 대한 전문가 컨설팅, 다국어 홍보물 제작, 국내외 통합 홍보 등을 지원한다. 또 지난해에 이어 여행업계에서 더욱 발전된 고품격 지역 명사 여행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신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2년 주기(기존은 1년 주기) 프로그램 진단 평가제를 도입, 자체경쟁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는 등 지속 가능한 고품격 상품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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