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입사원 채용 변천사…1966년엔 논술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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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9-04-1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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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단대부고에서 열린 삼성직무적성검사를 마친 응시자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삼성그룹 상반기 공개채용의 최대 관문 '삼성고시'가 14일 국내외 7개 지역에서 실시됐습니다.

삼성고시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는 연간 10만여명이 응시하는 필기시험으로도 유명합니다. 언어추리·수리논리·추리·시각적 사고 등 4개 과목의 110문항이 출제되는데요. 시험 시간은 2시간가량에 불과합니다. 1분에 한 문제꼴로 풀어야 하는 셈이죠. 틀리면 감점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섣불리 찍기도 어렵습니다.

올해는 언어추리와 시각적 사고 영역이 까다로웠다는 응시자가 많았습니다. '칠칠하다'나 '겸양하다' 등 생소한 단어의 유의어와 반의어를 찾는 문제가 어려웠다네요. 지시에 따라 종이를 접을 경우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맞히는 일명 '종이접기' 문제와 종이를 여러 번 접은 후 구멍을 뚫은 뒤의 전개도를 추리하는 '펀칭' 문제가 지난해 하반기 시험에 비해 난이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말도 많았습니다.

앞서 지난 2월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구직자 1040명을 대상으로 입사 희망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삼성전자가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올해도 최종 합격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것 같네요.

삼성의 공채가 시작된 것은 바로 1956년입니다. 그 당시에도 삼성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굉장히 치열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예상 외로 응시자가 몰려드는 바람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물론 당시 그룹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사원들까지 서울대 상대에서 열린 시험 감독에 총동원됐다고 하네요.

이처럼 첫 공채부터 구직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는 역시나 '인재제일주의' 덕분입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생전 "우리가 좋은 사람을 뽑아 쓰려면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그래야 소문이 나서 많은 인재들이 우리 회사를 찾아올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55년 추석 때는 전 사원들에게 급여의 1000%라는 파격적인 보너스로 지급하기도 했죠.

이때 1기로 입사한 이들은 장차 그룹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합니다. 삼성전관 사장과 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지낸 송세창 전 나산그룹 부회장, 호텔신라 사장을 지낸 손영희 전 나산그룹 유통담당 부회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1966년 9월 15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대학 졸업생을 위한 취직 수험 가이드'를 보면 당시의 시험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삼성은 인문계와 이공계로 나눠 100명가량을 선발했습니다. 인문계 지원자의 경우 논술과 영어 및 전공, 이공계는 영어와 전공 시험을 쳤습니다. 1965년까지 있었던 상식 시험은 이때 일시적으로 폐지됐습니다.

1970년대는 한국 경제의 유례없는 호황기였습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대학에 우수 인재 추천을 부탁하던 시기입니다. 1973년 9월 6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서울대 공대의 경우 무려 15개 대기업으로부터 추천 의뢰가 들어왔다고 하네요. 아이러니한 것은 "더 좋은 곳이 나설지도 모르니 두고보자"는 학생들의 반응입니다. 덕분에 추천을 의뢰한 기업들은 수요 인원의 절반 밖에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삼성은 이 와중에도 꿋꿋하게 공채 전형을 고수했습니다. 1973년 삼성그룹은 전년 채용 인원의 3배에 달하는 464명을 채용했다네요.

1983년엔 삼성 채용 시험에 이색적인 과목이 등장합니다. 고졸 지원자에 한해 전산 문제를 필수 과목으로 출제한 것입니다. 향후 대졸 신입사원 채용에도 확대할 것이라는 계획도 나왔습니다. 본격적인 컴퓨터 시대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당시 삼성 인사팀의 설명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뒤부터 채용 시험은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 영어 시험에는 기존 4지선다형 토플식 출제에서 듣기와 작문 평가가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전공 과목 또한 별도로 시험을 치르던 기존 방식을 폐지하고 학교 성적으로 대체하기로 한 것입니다. 벼락치기 한 방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죠.

1994년엔 시험이 주관식으로 바뀌었습니다. 100% 객관식에서 단답식 70%로 변했습니다. 한자와 기초기술 부문 또한 신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글 전용' 바람이 불던 당시의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데요.

이에 대해 삼성 인사팀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권 교역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 상권의 영향력을 감안해 한자 시험을 추가했다"며 "기술상식분야 신설도 기술경쟁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996년은 현행 GSAT의 전신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가 처음으로 도입된 해입니다. 학력 제한 또한 없어졌습니다. "졸업장을 이유로 기회의 차별을 두지 말고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당시 SSAT는 언어, 수리, 공간지각, 사회 상식 등을 평가하는 1부와 업무적응능력을 평가하는 2부로 나누어 200문제를 2시간 안에 푸는 방식이었습니다.첫 시험을 치른 구직자들 대다수는 유례 없는 전형에 매우 당황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실제로 출제된 문제들을 볼까요?

Q. '선장:( )=배우:( )'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로 알맞은 것은?
①의사, 박사 ②군인, 충성 ③작가, 교정 ④항해, 연기

Q. 자기의 전신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의 최소 크기는?

Q.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았을 때 상사에게 어떻게 통보하는 것이 좋을까?

Q. 외국 회사와 계약한 상품이 제때 도착하지 않을 경우 취할 방법은?


이때 형성된 채용의 틀은 지금까지도 상당수 유지됩니다. 다만 업무적응능력 평가의 경우 2013년 폐지됐습니다. 2015년 지금의 GSAT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지난해 상반기 채용부터는 상식 시험이 다시 폐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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