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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리커눙 공산당 협상 달인의 전략, 트럼프에도 통할까?

배인선 기자입력 : 2018-05-27 20:08수정 : 2018-05-28 08:21
저우언라이가 키운 중국 '첩보왕' 리커눙 "10cm 낮은의자, 백기 꽂은 유엔군 지프차..." 휴전협정 치밀한 계략 주도 휴전협정 '치열한 신경전'…오늘날 북미회담 연상케 해

리커눙. [사진=바이두]

‘좌초’ 위기에 놓였던 6·12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북·미 간 첨예한 신경전 속에 ‘극적 전개’를 이어가는 북·미 회담은 60여년 전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연상케 한다.

무려 747일에 걸친 지루한 협상이었다. 회담이 중단된 것만 다섯 차례, 회담 장소도 두 차례 변경됐다. 판문점에서만 모두 159차례 본회의가 열렸다.

유엔군 지프에 백기를 꽃아 마치 '항복사절'처럼 보이도록 하고, 회담장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테이블을 선점해 마치 황제가 제후를 알현하듯 연출하고, 유엔 대표단 측엔 10㎝ 낮은 의자를 내주고···. 이는 모두 휴전협정에서 공산군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벌였던 ‘계략’이었다.

전 세계 최강국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휘말리지 않고 당당하고 침착하게 날카로운 ‘밀고 당기기’ 게임을 이끈 공산군 협상 대표단 최고 사령탑은 중국에서 '특공왕(特工王)', 즉 ‘첩보왕’으로 잘 알려진 리커눙(李克農)이다.

리커눙은 “원칙을 지키되 책략은 신축성이 있어야 하고, 타결되었을 때와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두 가지 경우에 모두 대비하여 공작해야 한다. 타협이 되면 좋고, 안 되고 오래 끌어도 걱정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커눙의 말을 되새겨보면 지난 수십년간 핵문제로 국제사회와 밀고당기기를 거듭하면서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협상에 나서는 북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1899년 출생으로, 안후이(安徽)성 우후(蕪湖)가 고향인 리커눙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직접 발굴해 공산당 '첩보의 전설'로 키운 인물이다. 1926년 27세 때 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저우언라이가 직접 지휘하는 공산당 첩보조직 '중앙특과(中央特科)'에 배속됐다. 그는 의사 겸 연기자 첸좡페이(錢壯飛), 영화배우 후디(胡底)와 함께 국민당 첩보조직인 '중앙조사통계국'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셋은 각종 고급정보를 캐내 공산당 지도부에게 제공하며 국공(國共)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해 대륙을 차지하는 데 공을 세웠다.

시안사변, 충칭담판 등 중국 공산당 혁명사의 굵직한 사건 배후엔 모두 리커눙의 기지가 발휘됐다. 특히 리커눙은 신중국 설립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휴전협상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러커눙의 능수능란함은 다음과 같은 일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리커눙은 국공내전 기간 중 특히 안후이성 군벌인 천댜오위안(陳調元)과 첨예하게 맞서는 투쟁을 벌였다. 리커눙은 천댜오위안이 자신을 구명해줬다는 소문을 곳곳에 퍼뜨렸다. 이런 얘기를 들은 장제스가 대로(大怒)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리커눙은 상대방 주역들 사이에 서로 간극을 만드는 아주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최근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 제1부상, 최선희 부상 등이 트럼프가 아닌 펜스 부통령 등을 집중 공격하는 것도 리커눙의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과 다름없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휴전 협정 당시 중앙군사위 총정보부 부장이었던 리커눙을 공산군 협상대표단 사령탑으로 지명했다. 그만큼 마오쩌둥은 그의 첩보력을 신뢰했다. 마오쩌둥은 그에게 "늦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조급해하지 말라. 적이 손 놓고 있을 때 손을 써라"고 신신당부했다.

공산군 대표단이 포로 송환 문제를 놓고 유엔군 대표단과 기 싸움을 벌이며 협상 테이블에서 장장 2시간 12분을 돌부처처럼 말없이 무거운 침묵을 지킨 것도,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25초 만에 휴회를 선포하고 자리를 뜬 것도,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야말로 총성만 없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는 치열한 협상전이었다. "회담은 싸움이다. 다만, 문의 싸움이지 무의 싸움이 아니다"고 그는 강조했다.

훗날 마오쩌둥은 전쟁 한 번 지휘해본 적 없는 그에게 일급 8·1훈장, 일급 독립훈장, 일급 해방훈장과 함께 상장 계급장을 달아줬다. 1962년 리커눙이 병사했을 때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위험인물'이 사라졌다고 기뻐하며 정보요원에게 사흘간 휴가를 줬다는 소문도 파다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북한의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의 전략을 꿰뚫어보는듯한 트럼프의 협상술을 보면, 북한도 이제는 리커눙 식의 협상전략을 버리고 좀더 담대하면서도 솔직하게 핵협상에 임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리커눙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지 이미 너무 오래됐다. 시대가 바뀌고 있음에도 여전히 리커눙을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협상전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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