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가상현실 소설⑩끝]남자현코드(namjahyun code)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3-22 10:2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남자현이 남긴 유일한 사진.]


# 유언

그 유언은 아마도 이 땅의 역사상 가장 신념에 넘치고 애국적인 위대한 언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행낭 속에 있던 249원 80전은 3.1운동 때 경성에서 만난 해석(海石) 손정도목사와 함께 개간지를 일구는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나눈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이 돈으로 무기를 사서, 저격활동을 펼치리라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49원 80전을 손자와 친정 오빠의 손자에게 똑같이 나눠주라고 한 것은, 이 혈육들이 나의 독립활동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허덕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200원을 조선이 독립되는 날 그 독립정부에 축하금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은, 얼마 안 있어 독립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암울했습니다. 조선독립이 오지 않으면 세대를 물려서라도 그 돈을 넘기고 넘겨 반드시 독립의 그날에 내놓으라고 당부를 한 것입니다.”

# 기록

“어느 시인의 시보다도 울림있는 그 말씀이 왜 겨레의 정신자산으로 귀하게 여겨지지 않고 파묻힌 채 누더기역사와 함께 넘겨져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투쟁의 일선에서 숨가쁜 삶을 살았고 오직 가치의 실천과 실현만을 목표로 하였기에, 그것들이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것입니다. 남편 국오가 돌아간 뒤, 나의 언행을 평생 읽어준 이는 오로지 공서 밖에 없거니와, 그대 또한 만주의 어떤 객사에서 정체모를 자의 습격을 받아 불시에 돌아가니 스스로의 기록조차도 남길 수 없는 처지였지요. 문득 큰 인연이 문득 이런 일을 바로잡고자 세 번에 걸쳐 그대와 나의 기외(其外)의 만남을 만들어주었으니, 두 사람 공동의 행운이기도 할 터이지요. 공서. 당신이 이번 생에서 그토록 기록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를 아시오? 허허. 지난 생에서 그럴 힘이 있으면서도 그걸 게을리 했던 업보가 아니겠습니까?”

남자현은 웃으면서 두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왼손에 손가락 세 개가 빠진 일곱 손가락이 따뜻한 체온과 함께 떨리며 내 손 속에 들어왔다. 그 험하고 거친 시대를 이토록 깨끗하고 아름답게 산 사람이 또 있었을까. 내 손에서 일곱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문이 닫혔다.

새벽 두시. 컴퓨터의 문서 속에는 아직도 한 글자도 씌어지지 않은 채 ‘가상소설 남자현 코드’의 첫 커서가 깜박거리고 있다. 이상국 아주T&P대표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