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의혹, 안희정 혐의 '업무상 위력 간음'…법원 애매한 '인정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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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03-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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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간죄는 물리적 폭력, 협박 등이 주요 변수

  •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은 '위력'에 대한 판단 주관적

[사진설명=아주경제, JTBC 방송화면 캡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받고 있는 혐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다.

형법 제303조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또는 추행의 범위에 대해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처벌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위력과 위계가 어디까지 작용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까다롭다는 점에서 법적 논쟁은 좀 더 치열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두번째 피해자가 이날 오후 서울 서부지검에 안 전 지사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안 전 지사가 설립한 싱크탱크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소속 여성으로, 안 전 지사로부터 2015~2017년 동안 3차례의 성폭행과 4차례의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번째 피해자의 법률 대리를 맡은 오선희·신윤경 변호사는 안 전 지사를 상대로 낸 고소장에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및 추행’, '강제추행' 혐의를 기재했다. 앞서 검찰에 안 전 지사를 고소한 첫 번째 피해자 김지은씨가 제기한 혐의와 같다.

강간 및 강제추행은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 등이 선행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반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은 폭행·협박 없이 추행한 경우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폭행이나 협박 등 구체적 행태가 없는 만큼 처벌하기가 더 까다롭다. ‘업무상 위력’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5년 판결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서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한 세력을 말하며,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포함해 위력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그간의 판결에 따르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업무 또는 고용관계 등이 죄 성립 요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가해자가 행사한 유형력의 내용과 정도,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연령 및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이전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우, 구체적인 행태, 범행 당시의 제반 사정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1997년 유치원 원장 A씨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신입 유치원 교사 B씨를 노래방, 원장실, 원장의 아파트 등으로 불러 강체추행하거나 성폭행을 시도했다. A씨는 B씨가 시간 연장을 위해 노래방 밖으로 나갔음에도 도망치지 않았고, 직접 아파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으며, 술과 안주를 사온 점 등을 근거로 B씨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원심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적용해 피고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한 세력을 뜻한다”며 “피해자를 상대로 키스하거나 강제추행한 행위 등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미혼 유치원 교사의 성적 자유를 현저히 침해한 것이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에 해당하는 만큼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와 상반된 판결도 있다. 대법원은 중소기업 사장 A씨가 소속 여직원 B씨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주무르게 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A씨는 트렁크팬티 차림이었다. 검찰은 A씨에게 형법 제 298조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했고, 1심은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가 초범이고 벌금형을 넘긴 전과가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

2심에선 “강제추행은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고, 폭행 또는 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B씨가 △사무실의 문을 직접 잠갔고 △다리를 주무르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는 점 등을 죄 성립 주요 요건으로 고려했다. 대법원도 이런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의 범위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 전 지사 사건 역시 뚜렷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법원이 김씨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어디까지 믿을지가 판단의 주요 변수다.

류부곤 경찰대 교수는 “관련 범죄가 대부분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의견이 불일치하는 상황인 만큼 신체적 거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판례가 유용한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는 것뿐 아니라 사례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까지 개입하면 위력의 의미와 예견 가능성,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것"이라며 "위력간음죄의 성립 요건은 ‘피해자를 종속시킬 수 있는 지위’, ‘의사결정의 측면에서 복속시킬 수 있는 지위’ 등이 있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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