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칼럼] '급전지시(給電指示)'와 재생에너지 정책 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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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초빙논설위원 겸 GEFRI 에너지연구위원
입력 2018-02-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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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초빙논설위원 ]

급전지시(給電指示) 라는 말을 혹시 들어 보셨나요?

이것은 돈이 부족한 일반 국민들에게 급전으로 돈을 빌려주라는 말이 아니다. 전문 전력용어의 일종인데 정부가 전력수요 감축이 필요할 때 정부(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게 공장 가동과 중단 중 어느 것이 유리한가를 따져서 전력사용 감축을 결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전력 사용 감축에 대한 각 기업의 손실을 보전해주며 이들 기업으로부터 얻은 전력을 급하게 전력이 필요한 가정과 산업에 공급한다. 

급전지시는 영어로 DR(Demand Response)로 표기하는데, 수요 감축 요청에 따른 ‘수요자원 거래제도’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수요자원 거래제도는 2011년 발생한 ‘9.15 정전사태’와 같은 비상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2014년 11월에 도입됐으며 운영주체는 전력거래소이다. 수요자원 거래제도는 도입 후 2016년까지는 총 세 차례 발령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해 12월 13일부터 2018년 1월 26일까지 44일간만 무려 8차례 발령됐다. 앞으로도 강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급전지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총 8차례 24시간의 급전지시를 통해 1만4951개 기업(중복 참여)이 총 3만9916㎿h(메가와트시)의 전력을 아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전력거래소]


급전지시는 우리나라처럼 여름과 겨울, 전력수요가 급증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하고 효율적인 제도다. 그러나 최근 너무 잦은 급전지시 발령으로 참여기업 일부가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물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수요자원 거래제에 참여했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요감축을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고 또 제도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내에는 20개 DR전문기업과 삼성전자, 현대차 등 358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참여는 자발적인 것이고 기업이 매출감소와 전력보상금의 차이를 스스로 계산한 후 정부의  요청에 응하는 방식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44일간의 8차례 급전지시와 같이 일정기간의 집중적인 요청은 기업에게 큰 부담이고 손실이다.

정부의 급전지시에 따른 전력감축은 비록 1-2시간에 불과하나 이를 위해서 사전·사후에 준비하고 정돈해야 할 일들이 상당함을 고려하면 이를 단순히 수치로 손익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전력수요 감축에 따른 공장 설비의 가동 중단이 전력 수급 외에도 기업에 미치는 손실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수요자원 거래제도는 비상시를 대비한 것으로 일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재인 정부의 급전지시가 탈(脫)원전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실제 국내 DR 총량은 4271MW 로 약 한국형 신형원전(APR 1400) 3기 분량이다. 이를 수요자원 관리가 아닌 다른 발전원으로 대체할 경우 전력구매비용과 발전소 건설비용을 포함해 비교할 때 현재의 급전지시가 훨씬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향후 문재인 정부가 급전 지시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고 만약 수시로 발령하고자 한다면 다시 이를 위한 비상대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현 정부는 DR 등록용량(전력 수요 최대 통제량)을 현재 원전 4기 분량인 4.4GW에서 탈원전과 함께 2031년 최대 8GW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전력수요 문제를 넘어 산업전반에 걸친 에너지 정책과 연결해 생각해야 하는 새로운 이슈가 된다. 

노후원전 11기의 가동을 멈추고 향후에도 추가 원전 건설은 없다는 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요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값싼 전력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원의 창출이 매우 중요해진다. 전력수요 자원관리제도로 제조업의 기반인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결국 이것이 미래의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작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전환정책을 확정했다. ‘재생에너지 3020’은 2030년까지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7%을 20%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현재 화석연료 위주의 에너지 환경에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현재 약 5GW 정도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12배 이상인 63.8GW 로 늘릴 계획이다. 이 중 태양광에너지 설비를 30.8GW나 신규 확충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풍력, 바이오 등 기타 재생에너지에 비하여 태양광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3020’ 계획에 따라 태양광 발전 수요 분명히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공급이다. 태양광 발전의 성패는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할 수 있는 사업부지의 확보에 달렸다. 실제로 전체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역인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대단위 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의 외곽지역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태양광 사업 안내를 위한 현수막이나 광고 전단이 눈에 띈다. 태양광 사업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평당 1만원 정도에 불과했던 야산이 5~6만원을 호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전국 농·어촌에 일어나고 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3분기까지 전국 땅값은 2.92% 올랐다. 특히 정부의 태양광•풍력발전 확대 정책으로 전국 시골 유휴지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와 별도로 민간 사업자 확대를 주목하고 각종 규제들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 지방 시·군·읍·면의 입장차이가 민간발전 사업자 확대를 방해하는 실정이다. 

민간사업자는 자신의 땅에 태양광 발전 모듈을 설치, 전기를 생산한다. 생산된 전기를 고정가격으로 한전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 아직까지는 생소한 개념이긴 하지만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초기 비용과 인·허가 문제 등을 고려해 전문업체들이 태양광 발전소 분양계좌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심지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대기업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태양광 발전 사업에 직접 뛰어든 대기업부터 솔루션 제공업체, 인·허가를 포함한 컨설팅, 설계·건설업체를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1만여개가 넘는 태양광발전 유관 기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지가 많고 일사량이 좋은 충남과 호남 서해안을 중심으로 군(郡)별로 태양광 발전 허가 대기 건수가 1000~2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3000kW 초과면 산업통상자원부(전기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3000kW 이하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발전사업을 위한 사업부지의 확보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할 수 있는, 즉 한전과 계통연계 공사가 가능하고 일정량의 일조량을 갖고 있으며 개발이 가능한 인·허가 요건을 갖춘 사업부지 확보는 매우 어렵다.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위의 기준, 즉 3000kWh에 따라 발전사업 개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생산한 전력을 구매하는 발전전력수급계약을 한전과 맺어야 비로소 태양광발전사업이 완성된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험난하다. 발전사업자로 인·허가를 받은 후에 발전전력 수급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1000kWh 이하이면 발전사업자가 한전과 직접 계약을 할 수 있고 1000kWh 이상이면 한국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수급계약을 체결한다.

구체적으로 과정을 보자면, 우선 한전 계통연계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한전 계통연계를 위해서는 여유용량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발전사업을 하려는 사업부지 관할 한전 전력공급팀 태양광발전 담당자에게 확인을 하면 된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태양광발전을 위한 계통연계 신청이 전국적으로 약 7000건이 대기 중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해당 사업부지가 개발할 수 있는 도로와 여건이 마련돼 있는지, 민원의 소지는 없는지 등은 해당 관할 읍·면사무소에 질의하면 답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제반 여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사업부지 외에 기타 여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토지구입 비용과 추가 토목비용 등이 추가돼 발전사업자의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태양광 발전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일조량이다. 이는 태양광 발전량을 결정하기에 사전에 철저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제공하는 ‘기상자원지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신재생 에너지자원도’, 에너지코리아의 ‘에너지 자원도’ 등을 통해 1차적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복잡한 행정절차와 규제를 모두 해결한 후에 만날 수 있는 복병은 민원이라는 거인이다. 얼마 전 충북에서 본인의 땅에 태양광 발전사업을 준비하는 지인을 만났다. 지인이 보유한 토지는 임야 약 5000평 정도였는데 다행히 도로도 있고, 주변에 민원이 발생할 만한 시설도 없었다. 사전 점검에서 충분하지는 않으나 사업성이 있을 정도의 일조량도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동네 이장의 전화를 받고 발전 사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대상 사업부지를 가기 전에 약 20여 가구, 실제로는 10여 가구가 사는 동네에 마을 발전기금으로 20억원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1가구당 1억 정도를 내도 당신은 20년간 수입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막무가내식 주장을 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요구와 갈등이 전국 각지에서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정책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태양광 발전사업과 같은 재생에너지 사업은 친환경적으로 대기업이 아닌, 개인을 포함한 중소기업, 그리고 지역주민 사업으로 생성, 발전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다. 간단한 토목작업, 앵글과 샷시, 패널 설치, 그리고 패널 관리 등이 지역경제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대안이 바로 재생에너지 정책이다. 이런 정책이 잘 디자인되고, 시행돼야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급전지시가 수시로 발령되지 않을 수 있다. 

최근에 발령한 급전지시, 전력수요감축 요청에 따른 수요자원 거래제도는 분명히 유용하고 효율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한민국 전력 수급의 비상대책이지 기본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력수급의 해결사로 걸핏하면 사용되는 조커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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