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지금] ‘제2의 왕후닝’ 꿈꾸는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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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중국)=김미래 통신원
입력 2017-11-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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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자 출신으로 드물게 상무위원 진입

  • 이데올로기 중요성 부각시키는 신호

[김미래 상하이통신원]

향후 5년간 중국의 주요 결정을 주도할 상무위원 7인이 윤곽이 지난달 25일 이뤄졌다. 명단이 공개되자 상하이(上海) 시민들과 대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현직 상하이시 당서기 한정(韓正)과 상하이를 대표하는 푸단(復旦)대학이 배출한 국가급 인재 왕후닝(王滬寧)이 상무위원 7인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정 서기의 상무위원회 진출은 많은 이들이 무난히 예측했던 바이나 왕후닝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기 때문에 놀라움이 더 컸다.

이날 위챗(WeChat)·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는 상하이 대학생들의 왕후닝과 관련된 포스팅이 줄을 이었다. 그의 주요 저서와 논문들도 새삼 젊은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또한 주식시장에서는 후닝구펀(滬寧股份)이라는 종목의 주가가 급등했는데 단순히 종목명이 왕후닝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직을 수행하며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 3대를 보좌한 왕후닝을 가리켜 세간에서는 국사(國師·나라나 지도자의 스승), 책사, 즈낭(智囊·꾀주머니)라는 말로 수식하곤 한다.

그러나 왕후닝은 누구보다 ‘독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일설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미사여구를 사양하고 항상 스스로를 '독서인'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가 푸단대 교수 시절 남긴 일기를 엮은 책인 ‘정치적 인생(政治的人生)’을 보면 소년시절부터 남달랐던 그의 애독 정신과 왕성한 필력을 엿볼 수 있다. 1995년에 출판된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로 인터넷 헌책방 등에서 원가의 300배에 이르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태자당으로 대표되는 혁명가 2세나 공청단과 같은 당 조직 활동가 출신이 아닌 ‘학자 상무위원’의 출현은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한껏 고무시키며 ‘국사의 꿈(國師夢)’을 불어넣고 있다.

중국의 정치환경을 고려했을 때 학자형 관료의 등장은 쉽지 않다. 한국의 경우,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지식 엘리트가 정치에 입문하는 사례가 흔하지만 중국에서는 학계에서 정계로 이동하는 경로가 비교적 좁고 한정돼 있다.

또한 교수, 연구원과 같은 일련의 지식 엘리트들은 대개 기층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점이 있다. 현대 중국의 정치 엘리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가 바로 기층 경험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현지)조사 없이 발언권도 없다”는 명언처럼 다수의 지방에서 공직을 맡아 기층 인민들과 호흡한 현장 경험이 곧 정치적 커리어와 연결된다.

기층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간 지식 엘리트들은 제도 연구나 정책자문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왕후닝은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무위원회 진입에 성공했으니 상당히 파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조언과 자문에 역할이 국한돼 있었던 지식 엘리트가 사실상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새로운 역량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왕후닝의 상무위원 진입은 단순한 우연이나 계파 안배에 치중한 결과라고 보기도 어렵다. 집권 후 줄곧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시진핑의 성향으로 볼 때 ‘문과 상무위원회’의 구성은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왕후닝과 같은 학자 상무위원의 출현 역시 이러한 정치이론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인적 포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학자 상무위원의 사례가 왕후닝에서 그치지 않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린상리(林尙立) 전 푸단대 부총장은 ‘제2의 왕후닝’으로 기대되는 학자다. 1963년생 푸젠(福建)성 출신인 린상리는 왕후닝이 푸단대 교수 시절 직접 육성한 제자로 왕후닝보다 8살이 어리다.

린상리는 중국 공산당 주도의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주요 이론인 '협상민주(協商民主)'의 선구적 연구자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그’ 중 한 명이다. 왕후닝을 시작으로 학자형 관료의 계보가 린상리 등 후배 지식 엘리트에 의해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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