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명사들의 제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생태학은 창조경제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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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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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학은 우리 미래 먹을거리를 담보한다

최재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는 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배워주었다.                                 [남궁진웅 기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겸 국립생태원장을 찾았다. 최재천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제자로, 그가 주장한 ‘통섭(consilience)’, 즉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통합’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생물학자이다. 그에게서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생태학이야말로 미래 먹을거리를 담보하는 창조경제의 보고라는 확신을 봤다.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생태학은 운명이다. 생태학이라는 한자어에 그 뜻이 잘 담겨있다. ‘生態’, 즉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전적인 의미는 그 의미를 축소하는 것 같다. 관계를 연구하는 ‘관계학’이라고 생각한다.

생물과 환경 뿐 아니라 생물과 생물 간 관계,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들끼리의 관계맺음이다. 사람이라는 생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경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하다.

내게 따라붙는 ‘사회참여형 학자’라는 수식어구는 때로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고 내 전공 학문에 한 번도 소홀한 적은 없다. 생태학은 논문을 펴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100편 넘게 썼다. 실험실 내 분석은 상대적으로 야생을 상대로 한 연구에 비해 쉬운 측면이 있다. 그렇게 비교하자면 1000편을 써야할 것이다.

까치 연구를 19년째 하고 있다. 더러 까치를 보면서 이런 한탄도 내뱉는다. ‘보여줄 것이 있으면 빨리 보여달라’고.(웃음) 생태학은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최소 5년에서 10년 동안 관찰을 해야 논문이 가능한 학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태학에 대한 논문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때론 사회문제와 관련해 발언을 할라치면 일각에서는 ‘초파리나 연구하라’며 비난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모습도 생태다. 미국의 생태학자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은 ‘생태학은 포괄적인 과학이고 경제학은 그것의 작은 전문분야다’고 일갈했다.

생태학을 뜻하는 ecology와 경제학을 뜻하는 economy의 eco는 같은 어원이다. 즉 두 학문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뒤 나눠졌으며, 최근에는 다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생태학은 폭이 넓은 학문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재를 진단한다면?

최근에 내놓은 책 <거품예찬>(문학과 지성사, 2016)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자웅을 겨룬 끝에 자본주의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가 잘 나가고 있느냐? 승리를 해놓고도 이상해졌다.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등 제대로 된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된 셈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인 <도덕 감정론>을 먼저 집필했다. 만일 경제학자들이 국부론이 아닌 도덕 감정론에서 출발했더라면 현재의 자본주의 모습은 상당히 다른 길로 왔을 것이다. 이른바 따뜻한 자본주의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경우 소득불평등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을 것이다.

거품예찬은 지나치게 시장논리를 들이대는 우리나라의 현실 등을 빗대 많은 것을 생태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주요 정책 결정자들은 모든 것을 자로 잰 듯이 기획하면 될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자연을 관찰하는데 익숙한 사람, 즉 생태학자의 눈에는 그것처럼 잘못된 것이 없다. 자연을 잘 관찰해보면 다음 해를 위해 올해 생산물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낭비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낭비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잘못된 계획경제 논리를 교육 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취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교육까지 거침없이 파고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언제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적이 있는가? 폐쇄경제 체제라면 모를까 공급 경쟁 없이는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름지기 넘쳐야 흐르는 법이다.’(거품예찬 中에서)

우리나라의 생태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한마디로 처참한 수준이다. 우리 정부가 생태학의 필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것은 아니다. 압축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생태학은 주요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거를 탓할 것은 없다. 조금만 더 이른 시간에 생태학의 중요성을 정부가 알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은 있다. 2002년에 국내에서 세계 생태학 대회를 유치한 적이 있다. 정말 그 당시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이 대회에 참석한 미국 록펠러 대학의 조얼 코언(Joel E. Cohen) 교수는 한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생태학이 인류를 구원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단한 질문이다. 생태학 혼자 구원을 하지 못하지만 생태학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즉 많은 생태학자들은 생태학이 없이는 지구가 처한 환경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당장은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다. 새만금 개발사업과 관련해 개발을 결정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쌀 부족이 문제였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살려 활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생태학이 더욱 필요하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2013년에 설립된 초대 국립생태원장으로 취임했다. 국립생태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 국립생태원이 생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설립과정을 보면 지역 간 균형 발전 등에 따른 대안이었지만, 정부의 결단으로 생태원이 설립된 것은 생태학계로서는 너무 고마운 일이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국토가 비좁아 환경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본은 생태학 연구 분야에 있어 교토대 생태학연구센터를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설립할 정도로 생태학이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런 일본도 7-8년 전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 연구센터의 존폐여부를 고민하게 됐다. 당시 교토대에서 저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생태연구소의 필요성을 일본 정부에 강조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장문의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연구센터는 살아남았다.

그 연구센터의 소장이 얼마 전에 우리 국립생태원측과 협약을 맺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 연구소장은 ‘이전에는 일본이 생태학 연구의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의 국립생태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제가 생태원장으로 취임할 때 국립생태원의 비전으로 ‘세계 제일이 되겠다’고 세우지 않았다. 주변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아시아권역의 대표기관이 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국립생태원은 현재 100명 정도의 박사들이 연구원을 지키고 있지만 아시아 권역의 대표 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생태학 없이는 환경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속에는 미래먹거리도 포함되나

저는 서울대 교수로 있다가 2006년에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언론에서 이를 주목해서 보도를 많이 했다. 서울대에서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뉴스일까 하는 생각도 일었다. 제가 이대로 자리를 옮긴 것은 이 대학에서 <에코과학부>라는 학과를 신설해주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수 대학에는 생물학과 관련된 과가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실험실 분야와 야외 생태학 분야의 경우 구분이 뚜렷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주로 실험실 위주의 학과만 존재하고 그나마 생물학과가 없는 유명 대학도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각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교수들도 없다. 이런 토양에서는 생물학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이화여대는 파격적으로 과를 신설하고 교수를 뽑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도 이제는 균형 잡힌 생물학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FEW(Food, Energy, Water)가 핵심이다. 물 부족과 석유고갈, 식량 걱정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불안의 대표선수로 표현될 수 있다. 즉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책을 쓸 예정인데, 미국의 어느 출판사가 어떻게 알고 출판 계약을 하자고 연락을 먼저 취해왔다.(웃음)

우리는 현재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위기는 늘 벌어지고 있다. 세계 인구가 10억 명이 늘어나는데 11-12년 걸렸지만, 10억 명이 더 늘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년 걸린다고 한다. 중국의 경제성장도 지구에게 심각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중국의 생활수준이 미국과 같이 되려면 지구가 3개 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FEW가 가장 큰 문제다. 이 분야는 전부 생태학의 영역이다. 물, 에너지, 식량이 생태학의 영역에 포함된 것이다.

아직도 정책입안자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자연생태계를 잘 보전하는 것이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것과 직결된다. 다행히 현 정부의 창조경제는 생태학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처음에는 창조경제의 개념에 대한 혼선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혼선이 더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을 만든 것 같다. 창조경제 5년 동안 미국의 애플이나 한국의 삼성 같은 것이 1개만 새로 만들면 된다. 중국의 마윈이라는 천재 1명이 세상을 뒤엎은 것과 같다. 우리의 창조경제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 생태학에 창조경제를 접목할 수 있나

앞서도 말했지만 생태학은 자연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발전 과정에서 검증을 거쳐 시장의 반응에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늘 그렇게 살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자연선택과 창의적인 활동을 지속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지금 보이는 것은 다 성공한 사례들이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벤치마킹하면 된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는 이미 검증이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꼬마리 식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찍찍이가 있다. 식물들이 수 천 년에 걸쳐 개발해 놓은 것은 우리 인간이 가져다 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을 모방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의생학(疑生學)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생태원에도 관련 연구센터를 만들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제가 제안했지만 오히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먼저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의 경우 공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생태학자들에게 자문을 얻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생태원은 그 반대로 생태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학자들을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갈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생태산업단지로도 연결시켜 나갈 예정이다. 자연을 모방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상품화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상품화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자연에 널려있다. 차세대 먹거리가 자연에 지천으로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해오면서 아쉬운 점은 없나

우리의 연구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정부가 내세운 선택과 집중은 언제나 실패했다. 정부는 언제나 검증이 된 선진국에서 더 잘하고 있는 분야에 연구비를 집중한다. 그 게임은 우리가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구비를 가지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경기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이 잘하고 있는 것과 경쟁해서는 안된다. 따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부가 따라하는 셈이다. 이른바 잡초도 키워야 한다. 잡초에서도 얼마든지 성공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대담 및 정리 = 박원식 부국장 겸 경제부장]

최재천 원장은

△ 1954년 강원도 강릉 △ 서울대 동물학,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 하버드대학교 전임강사 △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 국제학술지 Journal of Inspect behavior 편집위원 △ 미국 미시간대 동물학박물관 종신 객원연구원 △ 서울국제생태학회 공동위원장 △ 서울대 교수 △ 이화여대 석좌교수 △ 한국생태학회 부회장 △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장 △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장 △ 국립생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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