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우리’처럼 드넓은 평원을 호령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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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1-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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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가시리 마을

가시리 마을의 갑마장길

아주경제 강경록 기자= 광활한 평원 위에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오름들로 둘러싸인 이 곳은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은 ‘가시리’라는 마을입니다. 평원은 할망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꾹 누른 듯 그 흔적을 닮았고 마을 중심을 흐르는 가시천과 안좌천은 할망의 손금처럼 구불대며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저 넓은 대지는 이 마을만의 독특한 목축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주 산마장 중 최대 규모인 녹산장과 조선 최고의 말을 사육했던 갑마장(甲馬場)이 바로 이 곳에 생겨났습니다. 현재도 갑마장 자리엔 마을공동목장이 있고 녹산장엔 제동목장이 들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시리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뛰노는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말테우리들의 고난했던 삶과 애환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가시리 마을을 찾아, 휘파람 하나로 오름과 평원을 내달리며 마소들을 호령했던 말테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랑말박물관 옆 갑마장길

◆ ‘잣성’따라 가시리인들이 인생을 걷다
온 세상이 무채색이다. 대평원을 뒤덮은 억새들이 겨울 바람에 파도 마냥 밀려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 트이는 듯 한 풍경에 한 동안 말을 잃었다. 울퉁불퉁 솟은 오름들은 이국적인 멋을 더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13개의 오름이 가시리 마을 주변으로 병풍 처럼 서 있고 그 사이 검고 낮은 돌담들이 서로를 구분 짓는 듯 길게 늘어서 있다. 가시리 평원의 겨울 풍경이다.

돌담 마을을 가로질러 대평야와 오름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잣성이라고 부른다. 잣성은 조선시대 말을 원활히 방목 관리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전체 10소장에 걸쳐 화산돌로 폭 1m, 높이 1.5m 상당이 되게 겹으로 단단히 쌓아 올린 담이다. 총길이가 백 수십km에 달한다고 했다. 잣성은 조선시대 목축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공 조형물로 농경지, 우마 방목지, 산림지대의 경계를 구분 짓는 돌담을 일컫는다. 해발 150∼350m는 하잣성, 350∼400m는 중잣성, 450∼600m는 상잣성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곳 가시리 마을의 잣성은 제주에서도 가장 잘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오름에 올라 대평원을 바라다 보면 짙은 회색 도화지 위에 선을 그어 놓은 듯 경계가 분명하다. 높지도 않은 것이 누군가의 침입을 막기에도, 바람을 막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이 돌담은 말 들이 뛰어넘지 못하도록 울타리 역할을 했다. 지천에 깔린 돌들을 특별하게 옮겨질 것 없이 자신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쓰임새에 따라 담을 만들어 두었다.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돌담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주도의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잣성길은 대초원의 비바람과 안개를 걷어내며 견뎌온 가시리인들의 삶의 노정만큼이나 긴 길이를 갖고 있다. 장구한 시간이 흘러 이제는 풀숲과 한몸을 이룬채 서 있어 때로는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가시리 마을을 혹여나 찾는다면 테우리들의 애환이 담긴 잣성을 따라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조랑말박물관 3층 하늘정원에서 바라본 따라비오름

◆ 큰사슴이오름에 올라 대평원을 가슴에 담는다
말들이 뛰어 놀던 길을 따라 큰 사슴이오름으로 향했다. 커다란 풍력발전기 수십기 사이로 새로이 길이 나 있다. 길 주변에 핀 억새들이 바람따라 흩날리리며 가히 장관을 연출한다. 여행자의 발길에 박자를 맞춰 이리저리 흔들린다.

오름을 오르는 길은 녹산로를 따라가다 정석 항공관 주차장으로 진입하면 된다. 정상까지는 약 30분가량 걸린다. 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갑마장 길을 이용하면 된다. 갑마장 길은 조선 최고의 말이 노닐던 길이다. 이 길이 테우리와 말들이 이용한 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새로이 정비된 길은 오름을 오르기에 편하게 조성되어 있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바람이 세차지만 적당히 몸에 열기가 생길 만큼 적당한 높이다.

큰사슴이오름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오름 정상에서 8부 능선쯤에 일제 강점기 일본군들이 파 놓은 진지동굴(갱도진지)이 있다. 큰사슴이오름에는 이런 동굴이 1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름 정상 근처 분화구 사면에 위치한 50m 정도의 수직갱도를 비롯해 정상부 분화구 안에 위치한 6m 정도의 갱도 등 그 형태 또한 다양하다. 아쉽게도 사고방지를 위해 개방은 되어 있지 않으나 눈으로라도 역사의 흔적을 담아두기에 충분하다.

큰사슴이오름 마루에 서면 눈 앞으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현재 마을목장지이자, 조선시대 갑마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갑마장’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최고 등급의 말을 키운 데서 유래했다. 북쪽으로는 탐라순력도에 등장하는 산장구마의 주요 배경인 녹산장이, 동쪽으로는 십소장 중의 하녔던 성읍방향의 동쪽 목장이 자리 잡고 있어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맑은 날이면 한라산 정상과 성산일출봉을 비롯해 빼어난 오름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동부지역의 오름왕국, 성산에서 남원에 이르는 제주 동남지역의 해안선까지 시원스레 한 눈에 들어온다.
조랑말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제주마의 역사에 대해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마을의 바람을 타고 달리는 조랑말박물관
경기도 파주에 해이리 마을이 있다면,가시리 마을에는 과거의 역사를 담고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찾아 복원하는 문화공간이 있다. 말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전문 리립 박물관인 조랑말박물관이 바로 그 곳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제주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말과 관련된 유물과 문화예술작품 100여 점을 소장되어 있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삼은 문화 공간으로 제주의 지역성과 개성을 잘 살린 새로운 형식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특히 제주의 목동인 말테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제주만의 독특한 목축문화와 조랑말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또 박물관 3층 옥상정원에 올라 바라보는 360도 파노라마 뷰는 오름능선을 배경으로 넓은 초지를 가르는 아름다운 잣성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생마, 바다 풍경 등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전망이 돋보인다.

조랑말 타기나 먹이 주기 체험도 가능하다. 몽고식 천막 방식으로 넉넉하게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와 캠핑장도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언제든 말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이가 있다면 부담없이 찾아가도 좋을 듯 싶다.

◆여행메모

◇추천 코스
△말의 고장인 제주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갑마장길= 방문자센터→자연사랑갤러리→동상목→당목천→따라비오름→잣성(간장)→국궁장→큰사슴이오름→다목적광장→가시천→꽃머체→행기머체→조랑말박물관→목장길→혜림목장→서성로→소곱지당→안좌동→안좌동입구(작지슬)→한씨방묘
(약 20km에 이르는 길로 7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말 테우리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4.3사건의 중심이이었던 가시리 마을을 느끼며 걷는다면 더 좋다)

△제주의 마을문화를 만나는 가시리 지름길
가름질 코스= 방문자센터(한가름)→충의사→체육공원→중이왓→솔대왓→먼남밭물→새가름(4·3잃어버린마을)→예성읍리길→갑성이오름→주쟁이몰→나목도물→구새기물→승지물→도린동산→가시사거리→작지슬동산→안좌동→소꼽지당→알병뒤→두리동→구성물(창작지원센터)→한씨방묘

◇숙박
△해비치리조트= 가시리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해비치호텔과 리조트가 있다. 성인 2명 기준으로 빌리지뷰 객실 1박, 아침 뷔페 식사, 사우나, 해비치 익스플로러 프로그램 체험 등이 포함된 가격이 주중 24만원, 주말 32만원이다. 익스플로러 프로그램은 ‘제주의 알프스’라 불리는 영주산 등반과 바비큐 파티, 사회 유명 인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으며 와인과 칵테일을 즐기는 ‘살롱드해비치’, 어린이들을 위한 눈높이 강좌인 ‘키즈아뜰리에’ 등으로 준비돼 있다. (064)780-8000

△조랑말 박물관 내 게르 게스트 하우스도 추천한다. 몽고의 동그란 천막집인 게르에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친환경 숙박시설이다. 전통마체험과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고 문 앞에는 말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어 자연과 하나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따라비오름 뒤로 떠오르는 달과 밤 하늘의 별들의 최고의 감상 포인트다. 요금은 1인 기준 2만원, 1동 임대(6인 기준) 100,000원이다. 조식은 뷔페식으로 6000원이다.

◇먹을거리
△표선어촌횟집= 해비치호텔 앞 표선리에 가면 허름한 어촌식당이 있다. 제주 앞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으로 내 놓은 회와 물회는 입맛을 돋운다. 또 옥돔, 갈치, 고등어로 조리한 지리가 일품이다. (064)787-0175
△가스름식당= 제주전통 돼지요리와 몸순대국을 맛 볼 수 있다. (064)787-1163
△가시식당= 가시리 첫 원조 식당으로 생고기 구이와 순대백반(몸국)이 인기 메뉴다. 가시리풍 메밀순대와 몸국을 제주도 전체로 전파한 발신지로 알려져 있다. (064)787-1035
△나목도식당= 저렴하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인기메뉴는 생갈비로 1대에 4000원이다. (064)787-1202
△댓그르식당=얼큰한 김치찌개와 동태찌개의 국물 맛이 시원하다. (064)787-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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