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반격?… “수사 받아보니 검찰 못 믿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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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기자
입력 2019-07-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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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농단 수사 후 '위법수집 증거 부정'잇따라... 검찰에 ‘일격’

  • 법조계 "죽어봐야 저승 안다더니... 뒤늦게 문제 인식"

“검찰이 그렇게 강압적으로 수사하는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내가 맡았던 재판에서) 검찰조서를 그렇게 쉽게 증거로 인정 안했을 거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한 판사는 얼마 전 사석에서 당시 심경을 그렇게 토로했다. 그래도 판사인데 그렇게 모멸적인 처우를 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 그는 “판사한테 이 정도면 보통의 피의자에게는 어떻게 할지 짐작이 간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몇몇 판사들은 검찰의 증거수집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은 것까지 저인망식으로 자료를 긁어가는데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약점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겠다는 의도로 읽혔다고 분개했다.

검찰의 강압수사나 유도심문, 저인망식 압수수색과 먼지털이·약점잡기식 수사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법정에서 증거채택을 좌우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위법 수집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인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경우도 많았지만 주요한 증거일수록 그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적었다.

지난 2014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도 내란음모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두고 공방이 펼쳐졌지만 당시 양승태 사법부는 ‘위법수집 증거’라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발견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부분은 나중에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됐는데, 유럽 인권재판소 측은 “국가기관이 이른바 ‘프락치’를 침투시켜 얻어낸 ‘녹취록’을 증거로 인정하면 안된다”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분위기는 크게 변화될 조짐을 보인다. 유도심문에 의한 자백의 임의성(자유의사에 따른 행동)이 부인되고 별건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들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달 권성동 의원의 강원랜드 취업비리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권 의원의 혐의를 입증해줄 결정적 증거였던 ‘최흥집 자백’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나, 역시 핵심증거로 꼽혔던 산업자원부 압수수색 자료의 증거능력이 부인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27일에는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이나 영장기재범위를 초과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판결이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왔다.

법원의 변화조짐에 대해 법조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형사소송법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는 점에서는 환영하지만 변화가 갑자기 찾아오게 된 계기를 두고서는 ‘입맛이 쓰다’는 지적이다.

일선법원의 현직판사 L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일선판사들이나 시민단체들이 목이 터져라 주장할 때, 그때마다 법원 핵심층에서는 ‘실체적 진실이 어쩌고’ 하며  씨알도 안 먹힌다는 반응이었는데 어느새 법원 내부에서 앞다투어 나오는 이야기가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검찰의 위법한 수사관행이 계속됐던 것은 법원이 묵인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와서 위법수사를 운운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높다. 현직 변호사(46,변호사시험 1기)는 “바람직한 변화”라면서도 “판사들이 수사를 받아보니 문제가 뭔지 알게 된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법조계는 이번을 계기로 검찰 수사관행이나 법원의 재판에  대대적인 변화가 와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된다. 일선 판사들도 “앞으로 (사법농단 사건뿐만 아니라) 공안사건이나 노동자 파업사건, 집회시위 사건에서도 이런 원칙이 지켜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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