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임원 심층 분석]① 2021 대기업 이사회의 新풍경 여성·ESG 사외이사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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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1-06-0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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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 산업계 기업들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과거와 사뭇 다른 경영환경 아래서 그 누구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경쟁이 시작된 탓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기업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이에 본지는 국내 유수의 산업계 기업 경영진을 분석해 해당 기업·그룹의 인적자원과 인사 트렌드, 핵심 키워드를 짚어봤다.<편집자 주>

10년 전 국내 최고의 대기업도 사외이사를 공시할 때 굳이 성별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상 거의 모든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터라 여성 사외이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별뿐 아니라 전문성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국내에서는 오랜 기간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를 교수, 전직 관료, 법조인 등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사외이사의 본래 역할인 감시와 견제보다 구색 맞추기나 연관 부처의 전직 관료를 예우하는 관행을 답습해온 탓이다.

그러나 최근 이사회의 역할이 커지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여성과 기업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도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이사회가 거수기에서 벗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대 기업, 10년 전 여성 '0'에서 현재 10명으로 개선

7일 본지가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개사(금융사 제외) 사외이사 52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은 10명(19.23%)으로 집계됐다. 이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해당 기업이 10년 전인 2011년 3월 말 기준 사외이사 중 여성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는 내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이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의 영향이 컸다. 대기업이 사외이사를 남성으로만 채우는 상황에서 서둘러 여성을 선임하게 된 이유다.

실제 재계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기업이 3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한화그룹과 LG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선발에 나선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에서도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실제 아직도 교수가 29명(55.77%), 법조인이 8명(15.38%)으로 사외이사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금융사 등 기업인 출신도 13명(25%)으로 적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SK그룹 지주사인 SK㈜도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 사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이 눈에 띈다. SK㈜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2015년 통합 지주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현대차는 이지윤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 부교수를 첫 여성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기아차는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포스코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자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유영숙 사외이사를 선임해 여성 사외이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사외이사, 거수기 역할 벗어나 권한 강화··· ESG경영 가속화

또한 삼성SDI는 김덕현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 박태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 ESG 관련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밖에 LG디스플레이와 네이버 등도 ESG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모셨다.

이는 그동안 거수기로 기능하던 이사회가 차츰 기업을 이끄는 중요 의사결정 기구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는 지난 3월 이사회 산하에 인사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신설키로 했다.

인사위원회의 역할은 최고경영자(CEO)와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선임된 CEO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판단하면 임기 중이라도 교체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인사위원회가 CEO 탄핵권까지 갖고 상시적으로 견제 기능을 한다. 인사위원회에 사내이사 1명이 포함되지만 사외이사가 2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다른 대기업도 유사한 흐름의 이사회 강화와 ESG 경영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는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전사 차원 협의기구인 지속가능경영협의회를 최고재무책임자(CFO) 주관으로 격상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이사회 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위원회에서 ESG 정책과 활동을 심의·의결하기로 하는 등 ESG 경영체계를 가속화한다.

한화그룹도 지난달 계열사 ESG 경영 지원자문과 그룹 차원에서의 ESG 활동을 위해 '한화그룹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앞서 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도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LG그룹 지주회사인 ㈜LG도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두고 ESG 경영의 최고 심의 기구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도 이사회 산하 전문위원회에 ESG위원회 신설에 동참했다. GS그룹도 그룹 전체적으로 친환경협의체를 출범시켰으며, 지주사인 GS㈜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여성 사외이사 유럽은 20~40%··· 국내 5% 불과 "노력 지속 필요"

최근 급격히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사외이사진의 선진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국내 100대 기업 사외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매출 상위 100곳 중 70곳은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100대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은 현재 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 500개사로 구성된, S&P 500 지수에 들어가는 기업들의 여성 이사회 진출 비율은 지난해 기준 28% 수준으로 집계됐다.

또 스웨덴(24.9%), 영국 (24.5%) 역시 이사회 여성 비율이 20%대로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확연히 높게 나타났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은 법률 등에 여성 이사 비율이 4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자본시장법처럼 최근 독일도 3명 이상의 이사회를 가진 상장 회사의 경우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사회 멤버 중 30% 이상을 여성 몫으로 할당해 놓은 셈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이 안착한다면 여성 비중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유니코써치는 국내 100대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20% 수준까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교수와 법조인이 아닌 사외이사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 사외이사의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하고 조직 운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라며 "아울러 최근 ESG 경영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높은 사외이사에 대한 필요성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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