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人③] 디아블로 ‘핵’ 만들던 중학생, 창업을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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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03-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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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원 얼리슬로스 대표 인터뷰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2의 배달의민족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 창업가부터,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기업까지. 법인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시간은 그들 ‘인생’의 전부지만, 대부분 시간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갑니다. ‘스타트人’에서는 숫자가 아닌 속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소리소문없이 창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중학교 시절, 블리자드의 역작 ‘디아블로’가 세상에 나오자 레벨 업에 열중한 남들과 달리 이재원 얼리슬로스 대표는 '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잡지 ‘PC사랑’ 부록에 나온 게임 코드를 입력해 테트리스를 ‘만들면서’ 놀았던 경험을 십분 발휘했다. 게임 코드를 뜯어보고, 무언가를 만드는데 재미 붙이다 보니 자연스레 개발 지식이 쌓였다. 

이 대표는 젊었다. IBM 왓슨이라는 안정된 직장도 있고, 다양한 직군의 회사에서 러브콜도 많았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안정적이고 평범한 인생이었지만, 자신만의 ‘창업 회로’를 수없이 돌려본 결과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퇴사 후 계획이 있는가?’ ‘자신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에 ‘Yes'라고 선택한 상황에서 내린 결심이었다.

2018년 얼리슬로스를 창업하면서 ‘포켓서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사용자 목적에 맞는 설문을 쉽게 제작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1시간 이내에 결과분석 리포트를 제공하는 설문조사 및 분석 서비스다. 3월 초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소재 사무실을 찾은 날만 해도 울산화력본부, 롯데손해보험, CJ ENM 등에서 설문조사 의뢰가 들어와 있었다. 창업 3년 차인 얼리스로스가 현재까지 수행한 설문조사 건수만 해도 137개에 달한다.

 

[사진=얼리슬로스 홈페이지]


최근에는 사무실을 종로구로 옮겼다. 대학로 주변에 위치한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었다. 딱딱한 칸막이 사무실이 아니었다. 현관문은 일반 단독주택의 그것이었고, 운영팀과 개발팀의 탁 트인 공간도 남달랐다. 거실에서는 통유리를 통해 널찍한 마당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얼리슬로스는 이런 곳에서 일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스타트업 인터뷰를 대학로 사무실에서 하는 건 처음이다

“이사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다. 조직원이 14명인데 청라, 부천, 성남, 하남 등 사는 곳이 넓게 분포돼 있다. 출근하기 좋은 자리를 찾는데, 종로밖에 답이 없었다. 후보 건물을 여러 개 보여주면서 장단점을 알려줬고, 내부에 배치할 가구도 직원들과 보러 다녔다. 위워크나 다른 사무실의 좋았던 점들을 모아서 함께 사무실을 꾸몄다.

스타트업이 조직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높은 급여와 좋은 동료 및 환경이다. 높은 급여는 가장 나중에 해줄 수 있고, 좋은 동료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엔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 창업 3년차 인데, 벌써부터 굵직한 계약이 많다

“크고 작은 기관에서 꾸준히 의뢰를 받고 있다. 포지션을 잘 구축해 대체할 수 없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IBM 왓슨에서 리서치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정량적 데이터와 정성적 데이터를 취합해 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200개 이상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설문조사의 중요성을 느꼈다. 한국은 응답률이 떨어지고, 설문조사 툴도 낙후돼 있었다. 1990년대에는 전화를 사용했고, 다음에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네이트온 등 인스턴트 메신저를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설문조사 툴은 이메일과 문자에 국한됐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포켓서베이’를 개발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정성조사를 더 잘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집단이다. 인공지능 리포트를 베이스로 영화 배급사 시나리오 리뷰나 패널 모집 설문조사, 전시회‧박람회 고객 조사 대행 등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카카오톡 설문조사는 정성조사를 할 수 있는 툴이다. 정성조사 결과는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분야 최고 역량 쌓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아직 마케팅 비용을 집해해 본 적이 없다. 입소문을 통해 좋은 시장 반응을 얻고 있다. 모멘텀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올 10~11월 중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으로 판단한다.“
 

얼리슬로스는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에 사무실을 옮겼다.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넓은 거실과 여유로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사진=얼리슬로스]

 
인터뷰 시간이 점심때와 겹쳤다. 이 대표는 직원들 ‘밥조’를 짜야 한다면서 카카오톡을 켰다. 버튼 몇 번을 누르더니 랜덤으로 3~4명씩 팀을 배정해 공지했다. 얼리슬로스 직원들은 매일 다른 팀원들과 조를 이뤄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독특했다.


- 매일 ‘밥조’를 짜는 이유가 있나?

“파벌이 형성되면 조직이 무너진다. 파벌은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사람끼리 형성되고, 뒷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방지하고 싶었다. 또, 직장인들이 출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 중 하나는 오늘 누구랑 밥 먹지, 뭐 먹지 하는 사소한 고민이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측면에서, 밥조를 짜면 경영진이 외롭지 않다. 솔직히 경영진과 밥 먹고 싶은 직원이 어디 있겠나. 저는 자연스럽게 밥조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직원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 인사조직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작년에 힘든 시기가 있었다. 조직이 저를 신뢰 못 하고, 저도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 때였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대표가 방황을 한다. 대기업과 달리 한두 번의 실수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상황이 안 맞아서 한 달 정도 일한 게 날아가는 사례가 두 번 있었다. 그 때 조직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그 이후 조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인사, 조직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이 책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원들은 퇴사하지 않는다’는 전제였다. 대기업을 기준으로 두고 설명했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적용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급여를 올려 줄 상황이 아닌데, ‘급여만 올려줘선 안 된다’부터 시작했다. 우리 조직만의 HR이 필요했다. 이후에 조직에 맞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이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업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다. 대신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창업 3년 차에 가장 큰 성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문화를 구축한 것”이라고 답했다. 굳이 숫자를 들이밀 필요가 없었다.


- 팀원은 어떻게 뽑았나?

“공고를 통해 들어 온 직원은 2명이고, 나머지는 발굴해서 데리고 왔다. 가장 최근에 합류한 개발자만 해도 이제 막 20살이 된 개발자가 있다. 조직에는 유능한 개발자가 필요한데, 잘하는 사람보다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데려와서 성장시키는 방향이 기회비용에 있어 좋다고 판단했다. 페이스북에서 마이스터고 학생 중 잘하는 친구들을 찾고, 꾸준히 관찰하다가 개별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너와 함께 일하고 싶은데, 아직 미성년자이니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식이다. 이렇게 데려온 직원이 두 명이다.”

- 직원 한 명 뽑는데 에너지를 과하게 쓴 것 아닌가?

“사람 한 명에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좋은 대표의 자질은 좋은 동료를 데려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시니어 개발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3년차 이상의 개발자를 뽑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는 너와 함께 할거고, 연차 높은 사람을 뽑는 대신 너를 팀장으로 성장시킬 거야. 너가 잘해야 해’라고 강조한다.”

- 직원들에 대한 믿음이 상당해야 할 텐데

“처음엔 그걸 못해서 힘들었다. 요즘엔 최대한 모든 팀원을 신뢰하고, 그 신뢰가 대표에게 돌아오는 형태를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팀원들과 함께한다면 다른 아이템으로 사업하더라도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팀을 신뢰하고, 팀원에게 대표가 신뢰받는 환경을 구성한 것이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이룬 가장 큰 성과다.”
 

얼리슬로스 단체사진. 대학로에 사무실을 마련한 뒤 얼리슬로스 직원들은 마당을 가지게 됐다. 이재원 대표는 사진 맨 오른쪽.[사진=얼리슬로스]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가 그렇지만, 이 대표도 회사 내 모든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운영, 전략, 디자인, 기획 등 전 분야를 아우른다. 개발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 IBM에서는 리서치 업무를 했고, 최근에는 인사조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개발은 언제 배웠나?

“개발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체득해서 어느 순간부터 하고 있었다. 게임 코드와 데이터를 뜯어서 핵을 만드는데 취미가 있었다. 테트리스를 만들면서 숫자를 변경하면 바가 내려오는 속도가 빨라지거나 모양이 바뀐다는 걸 감각적으로 배웠다. 재미를 붙이다 보니 광범위하게 개발 지식이 쌓였다.”

- 남들이 말하는, 소위 천재과인가?

“천재라기보다는 호기심을 바로 실행하는 쪽에 가깝다. 한 가지 일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천재는 아니다. 그보다는 호기심이 많고, 행동력이 좋은 쪽이다.”

- 일벌레인가?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맞다. 회사 다닐 때도 4시간씩 자면서 일해도 좋았다. 일이 좋았다.”

- (일반인으로서 이해되지 않는다.) 일이 좋다는 건 무슨 느낌인가?

“성과를 내고 보람을 느끼는 거다. 자잘한 일이라도 성과를 찾아내고, 보람을 느끼는 것. 이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얼리슬로스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사가 줄을 서고 있다. 설문조사를 의뢰하는 기업이 늘어나니 매출이 발생했고, 성장 가능성을 보인 덕이다. 그동안 받은 투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첫 투자는 IBK기업은행이었다. (기업은행 창업육성플랫폼) IBK 창공에서는 우리 조직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조직의 기초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다. 완만하게 모멘텀을 쌓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넥스트드림엔젤클럽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얻고 있다. 타 투자기관은 관심을 줘야 할 기업이 수십 개인데, 넥드림은 우리 기업에 관심을 쏟는 구조다. 또, 단돈 500만원이라도 조합원들의 돈과 피가 섞여 있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스타트업이다. 사업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정성적인 조사를 하는 조직이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비즈니스 기회가 오면 잡고 간다. 이 비전은 3년 차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변한적 없다”고 말했다. 명료했다. 상대방에게 사업 모델을 설명할 수 없으면 어떤 판단이든 당장 멈추라고 했다. 창업이든 투자든 마찬가지다. 복잡한 설명은 불확실성만 키운다. 얼리슬로스의 경우는 그 반대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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