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뛰어 넘는다" 지리·볼보車 합병하는 리수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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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20-02-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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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볼보 합병 연내 홍콩·스톡홀름 상장 추진… 기업가치 300억 달러 전망

  • 리수푸 지리차 회장 자동차 향한 집념...中 최초 글로벌 자동차 기업 탄생 예고

“리수푸(李書福) 회장은 지리자동차를 중국의 ‘폭스바겐’으로 만들 계획인가?”

하칸 사무엘손 볼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제네바 모터쇼 개막 전 행사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은 “노(NO)”였다. 하칸 회장은 “리 회장은 더 큰 야망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볼보와 벤츠를 삼킨 중국의 ‘자동차 대부’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최근 다시 한번 그의 원대한 야망을 드러냈다. 10년 전 사들인 볼보와 지리자동차 합병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합병을 마친 두 회사는 홍콩 증시와 스톡홀름 증시에 2차 상장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 자동차업계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움직이는 다국적 자동차 업체가 탄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리자동차와 볼보의 합병 추진은 리수푸의 오랜 꿈을 이룰 첫걸음이자, 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中, 전기·자율주행차 '글로벌 공룡' 나오나

리수푸 회장은 2010년 미국 포드로부터 볼보를 인수한 후, 지금껏 합병은 하지 않고 독자 브랜드로 볼보를 운영했었다. 대신 전기차 제조업체 폴스타와 스타트업 자동차 제조업체 링크앤코를 합작 회사로 설립했다. 지리차가 자금력과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볼보를 지원하면, 볼보는 지리차에 기술력을 전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엔진 공동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외에 지리차가 인수한 말레이시아 자동차 기업 프로톤(Proton)과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Lotus), 영국 택시인 블랙캡 제조업체 LEVC도 지리차와 합병은 시켰지만 기술력을 공유하는 수준에 머무는 비교적 느슨한 연합체였다.

다만 이런 방식은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개발 등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흐름에서 입지를 좁아지게 했다. 이번에 지리차와 볼보가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다. 최근 이탈리아·미국 합작 자동차 제조업체인 피아트크라이슬러도 푸조와 시트로엥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자동차 업체 PSA그룹과 합병을 추진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자율주행차 개발과 배기가스 규제 강화 대응을 위해 손잡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

리 회장도 이번 합병으로 전기차 신기술 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회장은 “양사 합병이 낼 시너지 효과와 잠재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리차와 볼보가 합병 작업을 완료하면 기업가치는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지리차는 시가총액이 160억 달러(약 18조9000억원)다. 볼보는 160억~320억 달러를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다 2018년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이를 보류했었다. 블룸버그는 볼보의 기업가치를 120억~180억 달러라고 가정한 뒤 두 회사의 합병 후 기업가치는 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예상했다.

번스타인 홍콩의 로빈 주 애널리스트는 “합병이 성사되면 지리차는 '글로벌 기업'이 된다"면서 "영업이익은 2배, 연 매출은 3배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합병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볼보의 하칸 회장은 지리차와 2022년까지 계약이 체결돼 있다”며 “그가 합병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리 회장은 이 그룹을 총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광인(狂人)’ 리수푸

사실 지리차와 볼보의 합병은 업계 내에서는 이미 예고된 움직임이었다고 평가된다. 리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 폭스바겐과 같은 글로벌 자동차 그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수차례 밝혀왔기 때문이다.

리 회장은 항상 스스로를 ‘자동차광’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자동차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저장성 타이저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고 한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년시절 그는 냉장고 부품·장식자재·부동산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했었는데, 결국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오토바이 제조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1996년 지리차를 설립했다.

이후 리수푸는 인수·합병(M&A)의 대가답게 공격적인 M&A로 지리차를 성장시켰다. 2009년에는 세계 2위 자동변속기 제조업체인 호주의 DSI를 인수해 6단 자동변속기 기술을 확보했으며, 2013년 2월에는 영국 택시 제조사인 MBH의 지분을 사들여 해외 기업의 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장 성공적인 M&A는 역시 볼보를 인수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 회장은 당시 포드가 볼보를 매각할 것이라는 ‘선구안’을 갖고 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법률자문사, 금융자문사, 재정컨설팅사를 고용하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가졌다고 한다. 글로벌 모터쇼 등을 다니며 포드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는 등 자기 홍보도 철저히 했다.

마침내 2010년 리 회장은 같은 중국 토종업체인 치루이(奇瑞), 둥펑(東風)과의 경합에서 승리해 볼보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볼보의 기술력을 도입한 지리차는 매출도 급증하며 승승장구했다. 2016에는 전년보다 판매량이 50% 이상 늘어난 76만대의 차량을 판매했고, 2017년에도 판매대수가 80%가량 늘었다.

폭발적인 성장세에 힘입어 M&A 행보도 더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2017년 로터스 지분 61%, 프로톤 지분 49.9%를 사들였으며, 볼보 트럭·버스의 지분 일부도 인수했다. 미국의 플라잉카 스타트업인 테라푸지아도 인수했다. 뒤이어 2018년에는 독일 벤츠의 다임러 지분 9.96%를 매입했다. 벤츠 브랜드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리 회장의 이 같은 ‘집념’과 사업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이번 볼보와의 합병도 성공적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FT와 가진 인터뷰에서 “리수푸는 참을성이 있는 대담한 기업가”라며 “볼보를 인수한 후 ‘중국화’를 강요하지 않았고 하칸 회장에게 많은 권한을 준 점은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 회장의 집념이 이뤄낸 이번 합병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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