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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디안 원장 "'예술 잡가' 한메이린, 세계를 향한 중국 문화 전파 매개체"

노경조 기자입력 : 2018-07-14 14:00수정 : 2018-07-14 14:00
"중국 본토에 뿌리, 민간 기원의 예술"

한메이린 작가가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한메이린 세계순회전-서울'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메이린 세계순회전-서울' 전시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중국 예술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작가 한메이린(82)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연 단독 전시였다. 한메이린은 '서(書)'라는 전통을 토대로 당대 사회와 시대정신을 시각·조형언어로 풀어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메이린의 예술세계에 대한 저마다의 고찰과 시사점을 쏟아냈다. 국내 수석큐레이터와 중국 미술계 저명 인사의 시선을 따라 그의 예술세계를 다시 한 번 느껴보자.>

판디안 중국 중앙미술학원장 겸 중국미술가협회 부주석은 한메이린을 '예술 명가'라고 칭하며 "문화 정신과 예술 발전의 각도에서 볼 때, 그의 종합적인 창조는 오늘날 매우 특별한 계발성 의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판디안 원장은 한메이린의 예술세계를 '대지를 마음으로 삼아, 창신을 품에 안고, 대중을 생각한다'로 요약했다. 고금의 융합을 통해 그 깊이와 축적을 실현하고, 마음과 영혼을 관통하는 동시에 전파가 광범위하다는 것. 무엇보다 민간에서 기원돼 서민에게 회귀한다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는 "'예술 잡가'라고 불릴 만큼 창작품이 풍부한 한메이린은 고대 중국이 강조한 '통(通)'을 실천하고 있다"며 "창조의 모든 과정 중에 관통하는 '통감(通感)'과 그의 배후에 '통식(通識)'이 존재한다"고 호평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전시는 한메이린의 창작 성과가 다시 한 번 집결됐다고 평가했다.

판디안 원장은 "메이린의 성장은 공화국의 발전과 함께 해 중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직접 경험했고, 역경과 고난을 겪기도 했다"먀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진취적으로 인생을 추구, 창신을 품에 안고 국민을 생각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판디안 원장의 학술세미나 논문.

한메이린 선생은 중국 당대에 극히 드문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예술 명가이다. 그의 작품은 테마가 광범위하고 신선하며, 형(形)과 신(神)이 기묘하고 그 함의가 매우 심오하다. 서예, 회화, 조각, 공예미술, 예술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의 뛰어난 예술성과와 문화조예, 특히 충만한 예술 창작 열정과 개척 창신한 예술 실천 정신은 이미 예술계의 높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력을 생성했다. '메이린의 예술세계'를 테마로 하는 이번 전시회는 한메이린 선생의 창작 성과를 다시 한번 집결한 것으로, (중략) 문화 정신과 예술 발전의 각도에서 볼 때, 그의 종합적인 창조는 오늘날 매우 특별한 계발성 의의를 보유하고 있다.

첫째, 메이린 선생의 예술은 고금의 융합을 통해 그 깊이와 축적을 실현하고 있다. 청년기에 그는 이미 중국의 문자 부호, 원고시대 암화, 청동 조각상 및 천태만별의 전통 민간 예술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갖기 시작했고, 그들의 양분과 정수를 흡수하여 자신의 예술창작을 위한 원시 활력수로 삼고 이를 작품에 응용했다. 메이린 선생은 공식화된 예술 표현형식을 탈피하고, 중화 문화의 원천에서 부단히 탐색을 모색하여 그의 작품이 문화적 숨결과 사상적 심도를 보유하게 했으며, 특히 전체적으로 중국 전통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기질과 운치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대중적인 장점의 채택과 탐색 창신을 중시하고, 전통 문화의 주관적인 재창조를 강조했다. 또한 역사에 녹아있는 중압감의 간결화를 통해 당대 미술의 표현 수법과 심미 이념을 형성했고, 신기술과 새로운 표현 언어의 결합을 통해 선명한 예술적 개성을 형성했다. 메이린 선생의 상당수 작품은 천지우주, 만물영운(萬物靈韻)을 주제로 삼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의 화합을 중시하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념과 소박하고 초연한 세계관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둘째, 메이린 선생의 예술은 그 영역이 매우 방대하고, 또한 마음과 영혼을 관통한다. 예술계에서는 메이린 선생을 '예술 잡가', '미의 삼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의 예술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며, 그 중의 '잡'은 '잡다함'이 아니라 영역이 광범위하고, 창작품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다양한 예술 영역을 섭렵했고, 이를 종합하여 경계를 초월한 창작을 실현하고자 주력함과 동시에, 심도있는 연구 과정 중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일개 예술가가 그토록 많은 체량과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이미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메이린 선생처럼 각 시리즈의 작품을 모두 각각의 다른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는 그의 탄탄한 예술 기조 및 전체적인 철학 사유와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다.

고대 중국은 문예 창작 중 손과 마음의 상통, 융합과 관통, 다양한 영역의 능통 등과 같이 '통(通)'을 매우 강조했다. 메이린 선생의 실천 방식은 서체와 조형, 회화와 조각의 융합 상통에 있으며 정신적인 측면의 사유 형성, 의중과 형식 언어의 상통을 더욱 중시하여 '통감(通感)'을 창조의 모든 과정 중에 관통시키고 있다. 또한 '통감'의 배후에는 '통식(通識)'이 존재하고 있다. 메이린 선생의 작품에는 틀에 어긋나지 않는 절제, 손의 움직임에 대한 믿음, 기묘함과 흥겨움, 무거움과 가벼움, 준영한 생동감,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함, 웅장한 기세, 넘치는 생동감이 있으며 도형의 약동, 음악의 선율과 형체의 미감을 겸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많지만, 통일된 스타일로 자신만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고, 각 작품은 상이한 각도에서 그의 중국 문화와 전통 절학에 대한 거시적인 사고 및 시대발전, 사회생활, 인생만상, 생명정태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일종의 넓고도 광대한 문화 식별도가 이를 지탱하고 있다. 때문에 메이린 선생의 새로운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일종의 익숙한 듯 하면서도 완전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고, 영혼과 인지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

셋째, 메이린 선생의 예술은 본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전파가 매우 광범위하다. 그의 회화에는 중국 전통화 선의 의미를 함축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서방 회화의 투시와 과장된 효과 역시 병존하고 있다. 또한 형식 언어 상의 관념성 표현과 상징성 묘사의 결합을 구성하여 신운(神韻)이 충만한 도식을 창조했다. 묵을 뿌리고 색을 입힐 수 있는 경계의 극치에 도달한 그의 수묵화 작품은 만물의 형태와 생기를 표현하고, 동방 산수의 의경(意境)을 조성함과 동시에 서방 초상화의 장점을 겸비하고 있다. 그는 조각을 중국 전통문화의 부호로 여기고 있지만, 예술 창신의 격정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화 생명력에 대한 사고 역시 매우 충만하다. 그가 설계한 도안 표식은 민족성과 국제성의 유기적인 통일을 실현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이미지 식별력을 생성하여, 국내외로부터 모두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오늘날 메이린 선생의 예술 작품은 대중의 광범위한 사랑을 받으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보유한 당대 중국 예술 현상이 되었고, 또한 세계순회전 개최을 통해 갈수록 많은 국제 인사들이 한메이린의 예술을 인정함과 동시에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그는 이제 중화의 우수한 문화를 더욱 널리 전파하는 이미지 매개체가 되었다. 오늘 날 중서방 문화가 활발하게 상호교통하는 시대적 배경하에 메이린 선생은 시종일관 중국 민족문화와 전통예술에 대해 높은 자신감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민족문화 이미지와 목소리의 전파를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당대 문화의 자신감 증강에 일조할 뿐만 아니라 광대한 예술 종사자들, 특히 청년 예술가들에게 더욱 양호한 모범이 되어 젊은세대가 중국의 우수한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넷째, 메이린 선생의 예술은 민간에서 기원되었고 서민에게 회귀한다. 메이린 선생은 오랜 세월동안 예술은 사회에 서비스해야 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진실된 마음을 시종일관 유지했으며, 시대 중 자신의 예술 좌표를 모색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기층을 향한 '예술 전 시차량'의 운행을 견지하며 전국을 돌아다녔고, 주동적으로 생산 일선을 방문하며 전원 풍채 기록, 학습 체험, 전람 개최 등을 실행했다. 또한 필묵을 사용하여 생활을 반영하고 시대를 기록했으며, 예술 성과를 통해 기층과 대중에게 반응하면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그와 동시에 메이린 선생은 위기에 몰린 민간 예술의 구제와 보호에 주력했다. 그는 민간에 분산되어 있는 우수한 문화를 진귀한 보물로 여기고, 민간 예술가와 함께 창작을 추진했으며, 예술기금 설립을 통해 민간 기층 예술 종사자와 애호가들에게 무상지원을 진행했다. 이로 볼때 그는 개성이 뚜렷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있는 예술가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최근 메이린 선생이 설계한 올림픽 푸와, '원숭이와 천둥의 대결' 등 예술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사회 예술 심미의 승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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