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4시] 친중 건제파, 금권선거 운동으로 ‘노인 표심 잡기’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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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박세준 통신원
입력 2018-04-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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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강한 자금력으로 범민주파 텃밭 표심 공략

[박세준 홍콩통신원]


지난 3월 열린 홍콩 입법회(立法會, 한국 국회에 해당) 보궐선거에서 4석 중 2석을 차지해 ‘세 불리기’에 성공한 친중(親中) 건제파(建制派)가 중국 중앙정부의 노골적 지원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범민주파의 텃밭 표심을 공략하고 나섰다.

홍콩 최대의 일간지인 애플데일리(蘋果日報)는 최근 건제파 민간단체들이 노인들에게 무료 딤섬 오찬과 경품 등을 제공하며 선거인 등록을 유도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건제파 소속의 두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홍함(紅磡)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5일 동안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오찬회를 열어 딤섬 등을 대접했다.

행사를 주최한 단체 중 하나인 ‘웨스트카우룽 조주인연합회(九龍西潮州人聯會)’는 건제파가 이번 보선에서 지역구 선거 역사상 최초로 승리를 거둔 웨스트카우룽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단체이다.

행사 참가자들은 무료 딤섬 외에도 물통과 요대, 과자 등이 담긴 경품백을 증정 받았으며, 5일간 약 6000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참가 인원수와 경품 규모로 미뤄 짐작해 봤을 때 주최 측은 5일간의 행사 비용으로 200만 홍콩달러(약 2억7500만원) 이상을 쏟아 부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행사에서는 주최 측과 중국 중앙정부와의 ‘수상한 관계’도 포착됐다. 또 다른 신문인 대공보(大公報)는 해당 행사에 중련판(中聯辦·주홍콩 중국정부 연락판공실) 소속 담당자와 허베이성(河北省) 간부 그리고 이번 보선에서 당선된 빈센트쳉(鄭泳舜) 지역구 의원 등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무료 오찬회의 표면적인 목적은 ‘사회 약자층 배려 및 융합’이었지만, 행사에서 두 단체의 회장은 “노인들이 합심해서 ‘일지양검(一地兩檢)’을 지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보선 전에도 홍콩 언론들과 범민주파는 해당 지역구의 건제파 단체들이 무료 경품이나 현금 쿠폰, 무료 식사 등을 통해 금권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는 해당 지역구에서 건제파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이러한 막강한 자금력과 중국 중앙정부의 암묵적 지원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무료 오찬회에 참석한 노인들은 길거리에서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기입하고 단체에 가입했거나, 거주 지역의 구의원 사무실에서 개인 정보를 등록한 후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홍콩은 만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지역구 및 직능대표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최초 선거인등록 시 본인이 신청서를 작성해 직접 선거관리사무소에 팩스나 우편,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주소 변경 시에도 본인이 직접 선거관리사무소에 통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현재 홍콩은 2019년 18개 구의 구의원 479명을 뽑는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다. 주민 직선으로 뽑히는 이 구의원들 중 117명에게 홍콩특별행정구의 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위원회(1200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선거인 명부 최초 등록은 오는 5월 2일까지로, 건제파 단체들은 등록 기간 막바지에 선거인 미등록자들을 금품으로 포섭해 건제파에게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행사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60~1970년대 한국에서도 이처럼 금품을 동원한 부정한 방법으로 표를 얻는 소위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있었다. 투표장에 가면서 막걸리를 얻어먹고, 고무신을 받아가며 표를 팔던 시절의 이야기다.

홍콩에서는 오히려 반환 이후 드물었던 금권선거가 특별행정구 당국의 무관심 또는 비호를 등에 업고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범민주파는 이러한 건제파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지만, 현재 그들로서는 별다른 제재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건제파는 현재 구의원 의석 458석 중 326석(71%)을 차지하고 있으며, 18개 구 전역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정부의 묵인을 등에 업은 건제파의 총공세가 지속된다면, 내년 11월로 예정된 구의원 선거 결과 역시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영국 식민 지배 150여년과 중국 반환 20년을 지난 지금, 홍콩 땅에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민주주의의 맹아(萌芽)가 권력 앞에 시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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