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왜 사과하지 않나"…국회 찾은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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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18-04-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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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는 21일 시민평화법정서 학살 피해 증언 예정

[사진=연합뉴스]


지난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발생한 한국군 학살의 생존자 2명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왔다. 이들은 "어째서 한국군은 그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50년이 넘도록 그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

1968년 한국군 해병대 청룡 부대에 의해 발생한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생존자 두 명의 응우옌티탄씨(동명이인)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68년 그날, 저는 여덟 살이었다. 한국군의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까지 모두 다섯 명의 가족을 잃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베트남 전통 의복인 아오자이를 입고 정론관을 찾은 응우옌티탄씨는 "저는 배에 총상을 입었고 오빠는 엉덩이가 다 날아갈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죽은 남동생은 한국군이 쏜 총에 입이 다 날아갔다"며 "남동생이 울컥울컷 핏물을 토해낼 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끝내 눈물을 보인 그는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부여안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그날의 잔인한 학살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묻는다. 왜 한국군은 여성과 어린 아이 뿐이어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 어째서 집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시신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인가"라며 "어째서 한국군은 그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50년이 넘도록 그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한국 참전군인들의 사과를 받고 싶다. 최소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한 그는 "평생 학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도 고통스럽지만, 가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또한 오랜 세월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더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품고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과하고 용서함으로써 이 전쟁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후손들에게는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들은 오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자신들이 겪은 학살을 증언할 예정이다.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그는 "우리 스스로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친구들이 준비한 시민평화법정에 증인으로 나선다. 무섭고 떨리고 두렵다. 법정에 선다는 두려움에 한국에 오기 전부터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그런데도 이렇게 용기를 내는 이유는 50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의 가족 때문이다. 그들을 대신해 지난날 있었던 어둡고 고통스럽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은 응우옌티탄씨의 기자회견문 전문

한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응우옌티탄입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 마을에서 왔습니다. 함께 온 다른 한 명도 이름이 응우옌티탄입니다. 제 고향에서 가까운 하미 마을에서 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름이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꽝남성에서 벌어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1968년 2월, 퐁니 마을과 하미 마을은 한국군의 끔찍한 학살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는 학살 50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와 제사를 지냈습니다.

1968년 그날, 저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한국군의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까지 모두 다섯 명의 가족을 잃었습니다. 저는 배에 총상을 입었고 오빠는 엉덩이가 다 날아갈 정도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죽은 남동생은 한국군이 쏜 총에 입이 다 날아갔습니다. 남동생이 울컥울컥 핏물을 토해낼 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부여안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째서 우리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그날의 잔인한 학살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제 옆에 있는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학살 당시 열한 살이었습니다. 한국군은 탄 언니의 가족을 방공호에 몰아넣은 뒤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탄 언니의 왼쪽 다리와 허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혔고 왼쪽 귀는 영영 청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탄 언니도 어머니, 남동생, 숙모, 사촌 동생 등 다섯 명의 가족을 잃었습니다. 남동생은 수류탄에 한쪽 다리가 잘려나갔고 결국 사흘 만에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남동생이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동안, 탄 언니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언니도 그날의 참혹한 학살의 이유를 여태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묻습니다. 왜 한국군은 여성과 어린아이뿐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요. 어째서 집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시신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인가요.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다른 학살 피해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대신하여 묻습니다. 어째서 한국군은 그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50년이 넘도록 그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인가요.

저는 2015년에 처음 한국에 왔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저는 한국에 가면 참전군인들이 사과를 하고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군복을 입고 나타나 제 앞을 가로막았고 저는 다시 한 번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면서 베트남은 물론 한국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한국 참전군인들의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최소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평생 학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도 고통스럽지만, 가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또한 오랜 세월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더욱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품고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과하고 용서함으로써 이 전쟁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후손들에게는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해로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43년이 되었고 우리 두 사람이 학살을 겪은 지도 5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날의 일들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내일 우리는 법정에 섭니다. 한국의 친구들이 준비한 시민평화법정에 증인으로 나섭니다. 무섭고 떨리고 두렵습니다. 법정에 선다는 두려움에 한국에 오기 전부터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사실 이 자리도 많이 떨립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용기를 내는 이유는 50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의 가족 때문입니다.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때문입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지난날 있었던 어둡고 고통스럽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의 친구들 고맙습니다.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한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한국의 국회의원 홍익표, 박주민, 권미혁 의원님께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많은 한국의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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