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장만기 회장 "기업·국가 근본은 사람…대한민국 경쟁력은 피플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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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02-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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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CEO 조찬 모임의 창시자 "사람은 만물의 영장, 인간의 성취동기는 무한한 가능성"

  • "젊은이들이 흙수저 비관하지 않고 본인의 성장 잠재력 믿을 때까지 교육할 것"

  • CEO들에겐 "직원 부품으로 보지 말아야, 직원 소명의식 불어넣는 버팀목 되길"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소 회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메바부터 신에 이르기까지 무한대의 범위를 갖고 있는 건 사람밖에 없어요.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악인도, 천사도 될 수 있죠.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인간개발을 통해서입니다. 청년들이 더이상 ‘흙수저 비관론’에 좌절하지 않고 본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길 바랍니다.”

‘한국 CEO 조찬 모임의 창시자’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81)은 “땅도 좁고, 자원도 부족한 한국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은 사람”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Better people, better world(사람이 좋아지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그가 40년 동안 지켜온 신념이다. 그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1975년부터 43년간 사회 각계각층 리더들에게 인간에 대한 교육을 펼치고 있다.

그는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인간개발’이라는 낯선 개념을 전파하자니 처음엔 누가 들어주지도 않았다"며 "그러나 가진 게 없는 나라일수록 사람이 강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오전 7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국 19차 당대회와 한·중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주제로 진행된 경영자연구회 조찬 모임은 장 회장이 주최한 1962번째 모임이었다.

장 회장은 박정희·김영삼·김대중·정주영·김우중 등 한국 사회에 한획을 그은 인물들과 호형호제했지만 개인적인 부·명예와는 평생 인연이 없다. 독특한 삶의 이력에 후회는 없다. 딸 다섯을 모두 '사람답게' 키웠고, 사회를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장 회장. 재계에선 그를 ‘80세의 꿈꾸는 청년’으로 부른다.

◆식민지 시대···나라도, 집안도 가난했던 '흙수저'. '인간교육'에 눈뜨다.

장 회장은 전남 고흥의 작은 섬 거금도에서 태어났다. 소위 말하는 ‘흙수저’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매일 새벽 동네에 있던 작은 교회에 기도하러 나갔다. 그는 “중학교갈 형편이 안 돼 하루는 ‘(공부를) 그만둬야겠다’고 기도하고 돌아섰는데 응답을 받았다”며 “동네에 있던 사업가가 나를 눈여겨보고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학업을 중단할 위기를 몇 차례 겪었지만 그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해 한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처음 경영자 교육에 뜻을 품은 건 196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생 시절이다. 세계적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매클릴랜드의 ‘성취동기는 개발이 가능하다’는 글을 읽은 게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에는 ‘성취동기’라는 심리적 단어도, 관련 연구도 전무했다. 매클릴랜드의 가르침은 당시 미국의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 그 안에서도 흙수저였던 한 청년의 가슴을 뛰게 했다.

장 회장은 “매클릴랜드의 글은 ‘미국이 후진국에 취하고 있는 끼워팔기, 일명 바이(buy) 아메리칸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진정한 대국이 되려면 후진국의 경제적 원조를 이어가되, 각 나라의 리더들을 육성해 이들이 독립적으로 나라를 키울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며 “글을 읽고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영감을 받아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업인과 경영자를 교육시켜야 된다‘는 내용의 경영자 리더십 개발을 위한 성취동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장 회장은 “논문을 인정받아 그해 졸업자 26명 가운데 제일 먼저 교수로 발탁돼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968년 대학원 졸업 후 명지대 교수가 된 장 회장은 박정희 정부의 국가홍보 사업을 성공시키면서 글로벌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을 돌면서 한국의 기업과 국가 정책을 홍보했다. 경제개발 붐을 타고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한 때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출장 중 믿었던 직원들의 횡령으로 부도가 났다.

그는 “바닥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곤두박질쳤다"며 “모든 걸 다 잃었던 그때, 출장길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폴 마이어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인간개발연구소를 창립했다”고 말했다. 폴 마이어는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이자 최연소 백만장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인물이다. 사업 부도 후 빈털터리였던 그는 박승찬 당시 금성사 사장, 정수창 OB그룹 회장 등의 도움으로 1975년 인간개발연구원을 세웠다.

그는 “1975년 2월 5일 목요일 새벽, 교수·경영자 30명으로 출발한 인간개발연구원이 지금은 매주 150~200여명의 CEO들이 참석할 정도로 커졌다”며 “1979년 12·12사태 때도,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질 때도 매주 목요일 새벽 CEO들의 조찬 모임은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간개발연구원 43년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김대중·김영삼·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과 정주영·김종필·박원순·반기문 등 현대사의 주역들이 연구회를 찾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재계, 학계 등을 아우르는 지도자들이 모여 시대적 과제에 대해 성역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당시 인간개발연구원이 유일했다. 때문에 장 회장이 만든 조찬모임은 민·관 협동의 기틀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조찬모임 장수의 비결로 비정치·비영리·비종교 등 3개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의 협찬 요청도, 정계 입문도 많았지만 일절 관계를 맺지 않았다”며 “연구원에 특정 딱지가 붙지 않았기 때문에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토론할 수 있었고, 참여하는 강사 역시 부담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소 회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위기의 본질은 '나약한 교육'···"CEO는 청년층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리더십 보여야"

장 회장은 “한국사회가 분열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 이끌만한 리더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요즘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도전정신’과 ‘주인의식’이 없다고 말하고,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청년층의 ‘현재’를 착취한다고 불평한다. 특히 이들은 기존 세대가 구축한 틀 안에서 경쟁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실제 지난달 23일 열린 인간개발원 조찬모임에선 원로 CEO들과 청년 CEO들이 모여 이 같은 내용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에 대해 장 회장은 “100만 청년들이 국가에 빚을 지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는데 막상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보니 일자리가 없다. 참 암담한 상황”이라며 “청년들은 이 원인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부모세대도 은퇴 후 갈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양측 모두 피해자인데 서로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서로를 적대시하고, 남 탓하는 태도는 사회분열과 갈등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위기의 본질은 대학 졸업장 하나에 인생 전체를 기대려 하는 나약한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라며 "산을 가꾸듯 100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교육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사회가 갈등을 잠재우고, 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포용적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상적인 리더십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잘 관찰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리더십의 원리”라며 “사람이라는 부품은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직원 하나하나 대체할 수 없는 부품이라는 걸 경영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소명의식과 비전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며 “인재를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뽑아놓고 재교육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그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개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CEO들은 성직자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의 경험과 지식이 최고라는 오만에 빠지면 안된다”며 “이미 기성세대가 된 만큼 스스로 과거의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젊은이들과 많이 소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은 인생, 베이비부머 위한 일자리-외교 안보에 주력

그는 "올해에는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4대 강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의 외교·안보 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계획"이라고 했다.

장 회장은 소련과 수교 전인 1988년부터 뜻이 맞는 기업인 20명과 모여 ‘한-러 친선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이 모임의 회장은 손경식 CJ회장이 맡고 있다.

그는 “북핵위기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둔 상황에서 한국은 주변국들을 자꾸 적으로 돌린다”며 “이런 때일수록 한국인들이 외교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81세인 그는 아직도 새로운 계획을 벌이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 후 다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장 회장은 “한국은 국토의 60% 이상이 산인데 산이 경제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며 “농촌과 바다를 하나의 생명산업기지로 만들어 은퇴 후 인력들,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조선족, 탈북민, 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미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1995년 시작한 '장성아카데미'로 이미 성공한 경험도 있다. 매주 목요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장성아카데미는 23년 동안 1000회 넘게 지속되면서 전국 지자체에 평생학습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왜 좋은 인력들이 은퇴 후 치킨집으로만 가느냐”며 “이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직업, 생산적인 일을 갖고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지역유지, 토착민 등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 회장은 "다양성을 품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원천"이라며 "농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확산하고 공무원과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인간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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