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시진핑의 同鄕―중국판 공수처장 자오러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7-12-31 15:4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산시성 시안 출신 자오러지

  • 中 중앙기율위 서기, 사실상 권력 2인자

강효백 경희대 교수

◆포스트 시진핑은 누구?

고향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自己愛)다. 돈으로도 칼로도 끊을 수 없는, 영속적인 절대 본능이다. 특히 남한 면적 96배에 달하는 광활한 중국에서 지연은 혈연만큼 중요한 인연으로 학연 등 기타 인연을 압도한다. 일례로 일대일로의 육·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은 각각 시진핑의 고향 산시(陝西)성 시안(西安)(1)*, 장가오리(張高麗) 상무부총리(경제부총리)의 고향은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다.

“니반스, 워팡신.” (你辦事, 我放心, 네가 맡으면 나는 안심이야)

이는 빈사의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죽기 5개월전 1976년 4월 화궈펑(華國鋒, 1921~2008)을 후계자로 지명(당 제1부주석겸 국무원총리로 임명)하면서 지어준 여섯 글자가 적힌 쪽지다.

도대체 화궈펑이 누구지? 세계가 경악했다. 일천한 경력의 화궈펑이 초대 공산황제 마오가 낙점한 최후의 후계자라니, 하도 의외의 인물이라 외신 일각에서는 화궈펑이 '화려무쌍한 여성편력가', '마오쩌둥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유행했다. 야릇한 소문은 아직도 대만과 홍콩의 후미진 뒷골목에 깡통처럼 굴러다니고 있다. 화궈펑의 외모와 풍채 마오쩌둥을 적잖게 닮았다.

화궈펑은 산시(山西)성이 고향이지만 당 간부 경력은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湖南)성 상탄(湘潭)현 부현장으로 출발했다. 그는 상탄현에서만 현부서기, 현장, 현서기를 약 7년간이나 역임했다. 마오쩌둥이 고향을 방문해 며칠을 묵었을 때 마오의 침소 앞에서 화궈펑 현서기가 직접 보초를 섰던 일화는 유명하다.

덩샤오핑의 마지막 후계자, 장쩌민 국가주석은 1996년 8월 12일, 자신의 고향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시를 동서로 쪼개버렸다. 원래의 양저우 동쪽 부분에 타이저우(泰州)시를 신설했다. 장쩌민은 왜 사과를 두 손으로 세로로 쪼개듯 자신의 고향을 동서로 쪼개버렸을까?

지금 중국의 각종 온·오프라인에는 후진타오(胡錦濤, 1942~) 전 국가주석의 출신지는 안후이(安徽)성 지시현(绩溪)현으로 적혀있다. 하지만 그곳은 후진타오 조상의 고향, 즉 원적지일 뿐이다. 후진타오가 역대 최연소 만 49세 나이로 정치국 상무위원(당 서열7위)에 등극한 1992년 10월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공포된 자료를 보면 후진타오의 고향은 장쩌민과 같은 장쑤성 양저우로 적혀있다.

장쩌민은 자신의 동향 후배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무시해서는 안 될 걸림돌은 바로 후진타오의 출신지가 장쑤성에서도 양저우라는 사실.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후계자를 같은 출신 성, 같은 출신 시로 선정하는 일은 중국의 오랜 집단지도 원칙에 위배됨은 물론 지역 안배 차원에서도 모양이 좋지 않다. 고육지책 내지 심모원려라 할까?

장쩌민은 자신의 고향을 양저우와 타이저우로 일도양단하고 1년여 후, 1997년 11월 제 15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이듬해 3월 국가부주석 임명)했다. 그때부터 중국의 각종 공식문건에는 후진타오의 출신지가 양저우에서 타이저우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2002년 11월 제16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가 총서기로 등극했을 때부터 그의 출신지는 다시 타이저우에서 그의 원적지 안후이성 지시현으로 은근슬쩍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2)*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면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게 정이 쏠림은 인지상정이다. 사람이 땅 위에서 살며 맺는 인연, 즉 지연(地緣)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태어나고 자라난 출신지로 연결된 인연이고, 다른 하나는 경력을 쌓은 근무지에 따라 맺어지는 연고(緣故)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고향 상탄현에서 경력을 쌓은 화궈펑에게, 장쩌민은 자신의 고향 양저우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후진타오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즉 마오쩌둥과 장쩌민의 후계자는 각각 근무지의 지연, 출신지의 지연으로 연결된 관계이다.

자오러지 정치국 상무위원[사진=신화통신]


현 중국 최고 권력자 시진핑은 산시성 시안 출신이다. 현 정치국 상무위원 7인중 최연소자 자오러지(趙樂際, 1957년~)의 출신지는 산시성 시안이며 주요 경력지 역시 산시성 당서기 5년 역임이다. 즉 자오러지는 최고권력자의 출신지와 근무지 두 가지 지연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역대 중국 최고권력승계에 지연적 요소가 차지해온 비중과 패턴을 감안하면 시진핑의 후계자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은 자오러지 정치국상무위원이라고 관측된다.

게다가 첫째, 직전 인사기관 수장에 이은 현직 감찰수장이라는 전례없는 역대급 막강 스팩, 둘째, 후진타오 집권 2기 시절 시진핑의 당 서열이 6위였던 거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집권 2기시절 자오러지의 당 서열이 6위라는 점, 셋째, 최연소 성장, 최연소 성 당서기 신화에 이은 현직 최연소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나이는 젊고 힘은 강한 그의 ‘연부역강(年富力强)' 등 세 가지 부가요소를 덧붙여서 두루두루 고려한다면 포스트 시진핑은 자오러지가 거의 확실한 게 아닐까?

단 이러한 예측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거의 모두가 미래의 시간 속에서 나타난다는 잠언이 허사가 아닐 경우에 한해서 적중될 것이다.

◆중국판 공수처 처장, 중기위 서기는 사실상 권력2인자

지난 10월에 개최된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표대회는 왕치산(王岐山) 당중앙 기율검사위(이하, ‘중기위’로 약칭)서기 후임으로 당중앙 조직국(이하‘중조국’으로 약칭)서기로 자오러지를 선출했다. 당정고위 인사총괄 중조국 서기가 최고감찰기관 중기위 수장으로 승진한 예는 자오러지가 유일무이하다(역대 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일람표 참조)

역대 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일람표 참조[강효백교수 제공]


그렇다면 시진핑 2기 최연소 정치국상무위원이자 시 주석과 동향인 자오러지가 맡은 중기위는 어떤 기관인가? 중기위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감사원과 공수처(설립 예정)를 합친 권력의 몇 배 이상 강력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큼 막강한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감찰기관이다.

진시황(秦始皇)은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뒤 행정은 승상(丞相), 감찰은 어사대부(御使大夫), 군부는 태위(太衛, 비상설 기관)에 맡겨 분담 통치하는 3정승제를 고안해냈다.

이 같은 통치 방식은 조직의 명칭과 형식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 현대에까지 이어졌다. 인민복을 입은 공산왕조의 초대 황제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자신의 역사적 멘토인 진시황을 벤치마킹했다.

마오는 진시황처럼 당권과 군권은 자신이 직접 장악한 채 자신의 양팔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주더(朱德)는 각각 승상 격인 총리와 어사대부 격인 중기위 서기로 임명했다.

초대 주더(1949-1955), 2대 동비우(董必武, 1955-1969), 3대 천윈(陳雲,1978-1987), 4대 차오스(乔石, 1987-1992), 5대 웨이젠싱(尉健行, 1992-2002) 6대 우관정(吴官正, 2002-2007), 7대 허궈창(賀國强, 2007-2012), 8대 왕치산(王岐山, 2012-2017), 현직 9대 자오러지(2017.10~ )전원이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반면에 역대 중앙정법위서기는 무기징역 복역 중인 저우용캉(周永康)을 제외하고는 정치국위원(부총리급)이 맡아 왔다.

◆중국 공산당 망하지 않는 비결···사법권 대비 감찰권 절대우위체계

중국 감찰및 사법조직도[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지금 베이징 북역 인근 대로상에 위치한 백색 고층 대형빌딩에 위치한 중앙 기검위는 중국의 탐관오리에게는 '이승의 염왕전'이다. 중기위와 그 직속기관인 국무원 감찰부(주소:北京市西城區平安里西大街41號)에는 약 1000여명의 중앙 기검위요원이 근무하고 있다.

중기위는 중국의 5대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공안부·최고인민법원·최고인민검찰원·사법부·국가안전부 등을 영도하는 중앙정법위원회를 지휘, 감독하고 있다.

중기위는 중앙과 지방의 모든 당∙정∙군 조직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대형국유기업체에 심어놓은 수십만명의 저승사자들이 종적․횡적, 정시․수시 감독 감찰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을 구성하는 25개 부위(部委:부와 위원회) 중 최고 실세 기관은 무엇일까?

단연 감찰부(minister of supervision)다. 감찰부는 이름만 국무원에 걸어놓았을 뿐, 국무원 총리의 지휘를 받지 않고 중기위에 편제돼 중기위 서기의 지휘를 받는다. 중기위 부서기를 겸하는 감찰부장은 국무원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감찰부 청사도 중기위와 같은 건물을 쓰고 감찰부의 영문명칭 역시 ‘회계심사(audit)’는 물론 ‘조사(inspection)’보다 강력한 의미의 ‘감독(supervision)’을 사용하고 있다.

요컨대 필자는 공산당 일당독재국가 중국이 망하지 않는 최고의 제도적 장치는 중기위-감찰부와 같은 사법권력 대비 감찰권력 절대 우위체계라고 생각한다. 'G2' 시대 중국 질주 비결은 캠페인이나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강력히 실행한데 있다.

특히 고위 비리공직자 척결에 대한 중국의 법제와 그 실천은 권력형 부정부패의 임계점에 다다른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의 3대 권력기관, 감찰기관, 사법기관, 정보기관에게 각각 공직자 부패, 민형사업무, 정보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는 통치시스템과 일반인일 경우에는 공안과 검찰, 당정고위층의 부패사건은 감찰기관(수장, 사실상 권력2인자)이 도맡는 투트랙 시스템, 중국의 사법권 대비 감찰권의 압도적 우위체계, 비리공직자에 대한 일반인에 비해 가혹할 만큼 엄벌주의를 실천하는 법 집행은 우리나라에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주석

(1)*중국의 공식자료에는 시진핑 주석의 출신지가 산시성 푸핑(富平)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푸핑은 시안과 불과 66㎞ 동북부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보다 96배 넓은 중국땅에서 66㎞라면 한국에서 1㎞ 정도의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의 출신지는 시안이나 다를 바 없다.

(2)*후진타오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진짜 고향을 세간에서 회자되는 걸 회피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장쩌민은 최고권력 직위 재직시에도 수십 번이나 고향을 찾아갔다. 심지어 1991년 방중한 김일성과 양저우에서 회담을 했을 만큼 그의 고향 사랑은 노골적이었다. 그와 반대로 장쩌민의 후임자 후진타오는 총서기 재직시에도 자신의 실제 고향 타이저우(원래 양저우 동부)를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최고권력자리를 시진핑에게 물려주고 난 후에야 2012년 12월 24일 37년만에 처음으로 타이저우를 찾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