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나의 '오늘의 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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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함원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입력 2017-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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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하라'(ㅈ일보) '식욕 없어도 잘 먹을 것'(ㅈ일보) '남는 게 없는 장사에 뒷짐을 져야 한다'(ㅁ신문)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 공부방에서 보는 신문 등에 실린 오늘의 나의 운세(運勢)다.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 이게 궁금해서 운세란을 펼쳐 보는 것인데 “실리 쪽을 택하라, 밥을 잘 먹어라, 남는 게 없는 장사는 그냥 두라”는 하나마나한 충고를 한다. 밥도 잘 먹고 있으니 오늘의 운세는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의 운세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분명하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이 있었다.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 선생이 만든 책으로 사람 운수를 점쳐보는 소책자를 뜻한다. 한 해 운수를 점치는 행위 자체를 '토정비결을 본다'고 한다. 토정비결을 통해 새해 정초(正初, 정월 초)에 한 해 운수를 점쳐 보아 주의할 것을 미리 알아 경계하고 조심하는 의미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한 해 운수를 점쳤지만 이 또한 우리 사회의 격변에 힘을 잃고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사실 점을 치려는 인간의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 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 존재는 미래가 늘 불안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자기의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이 크다.

우리 조상들은 태어난 年(년, 해) 月(월, 달) 日(일, 날)과 時(시, 몇시)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주(四柱), 즉 네 가지 중요한 기둥이라면서 이를 근거로 타고난 운명을 점치는 역술을 찾아냈다. 동양문화권인 중국의 고전 '논어'(論語)에도 '사생유명(死生有命)이요 부귀재천(富貴在天)이라'(논어 안연편), 즉 '죽고 사는 데는 명이 따로 있고 부유해지거나 귀한 몸이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시대가 많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점술과 무속이 아직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국민 전체의 교육 수준도 높아졌으나 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점술이 번성하고 있다. 특유의 샤머니즘과 무속 전통이 기복신앙과 급변하는 문명과 절묘하게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풀이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무속인과 점술가 등이 지난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해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 해의 운수를 보는 토정비결이 사라진 자리에 길거리 타로 점집에서 당장 닥칠 일을 점치는 조급성마저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고 신문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외국 책을 번역하며 판사를 대신해 판결하고 주식 분석도 담당할 것이라는 21세기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오고 있다고 연일 크게 보도하는 신문들이 어찌 이런 운세표를 넓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싣고 있는가? 힘들이지 않고 지면을 메울 수 있고 독자도 있기 때문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종합지와 경제신문 중에서 운세표를 싣지 않는 신문은 ㅎ신문 하나 뿐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애쓰고 있는 젊은 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어느 인터뷰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신문에서 운세표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답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미신은 불치병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 신의(神醫, 귀신 같이 병을 잘 치료하는 의사)로 불린 편작(扁鵲)은 세상에 불치병이 여섯 가지가 있다며 '신무불신의(信巫不信醫)', 즉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병을 여섯 째 불치병으로 꼽았다. 무당을 미신으로, 의원을 과학으로 바꿔보면 꼭 맞다 하겠다. 신문들이 하루 속히 운세표를 없애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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