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텐센트, 비야디를 품은 '중국판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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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7-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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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덩샤오핑이 '경제특구'로 삼은 어촌마을…광둥성 선전

  •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발전

  • 창업혁신으로 '제2의 개혁개방' 추진…홍콩도 넘보다

중국 광둥성 선전[그래픽=아주경제DB]


“2018년 선전의 GDP가 3500억 달러로 홍콩(3450억 달러)을 처음으로 앞설 가능성이 높다.”

9월초 시장조사업체 샌퍼드번스타인이 내놓은 전망이다. 화웨이·ZTE·텐센트·비야디·DJI 같은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기업을 탄생시킨 도시. 바로 중국 광둥(廣東)성 남부도시 선전(深圳)이다. 한낱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 1번지'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창업혁신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홍콩까지 넘볼 기세다.

선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광둥성 바오안(寶安)현에 속한 인구 2만의 작은 농어촌 마을이었다. 선전이라는 지명도 ‘깊은 논두렁(圳)’에서 유래됐다. 선전이 오늘날 1인당 소득이 2만5000달러에 육박해 베이징·상하이를 제치고 중국 대륙 1위의 ‘부자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개방 덕분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지난 1980년 8월 선전을 주하이(珠海), 산토우(汕頭), 샤먼(厦門)과 함께 중국 4대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외자유치 첨병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덩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외쳤다. 선전특구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험장이었다. 덩은 직접 선전을 찾아 개혁개방을 지지했다.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다. 선전 중심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롄화산(蓮花山) 꼭대기에는 전국 최초의 덩샤오핑 동상도 세워져 있다. 선전은 그야말로 ‘덩샤오핑의 도시’였다.

선전은 홍콩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홍콩 주룽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45분만에 닿는다. 홍콩과 마카오, 글로벌 자본, 그리고 선전의 저렴한 노동력이 결합돼 선전은 현대 공업도시로 급속히 변모했다. 덩샤오핑이 남순강화에서 동쪽(홍콩)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는 뜻의 ‘동방풍래만안춘(東方風來滿眼春)’이라는 옛시를 인용한 이유다. 선전에서는 인민폐보다 홍콩달러가 통용됐다. 선전은 ‘사회주의식 홍콩’을 모방한 도시였다.

경제특구 지정과 함께 선전은 빠르게 경제력을 불려나갔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선전시 GDP는 평균 47%씩 성장했다. 23만명에 불과했던 선전시 인구는 10년만에 25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선전은 자본주의 빌딩 숲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선전에서 건물을 지으면 사흘에 한층씩 올라간다는 말이 나왔다. 이른 바 '선전속도'다.

1990년대초 중국에서는“돈을 만지려면 선전으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국 각지 젊은이들이 돈을 벌러 선전으로 몰려왔다. 중국 베스트셀러 작가 이중톈이 저서 독성기(讀城記)에서 "선전특구는 매우 젊다. 젊은 선전에는 청춘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말한 이유다.

극심해지는 자본주의로 선전에는 부패·범죄 등과 같은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물가도 ‘선전 속도’로 치솟으며 빈부격차는 심화됐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덩샤오핑은 오히려 "창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파리도 들어오기 마련"이라며 굴하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다른 지역에서도 서서히 외자에 문을 개방하면서 선전은 더 이상 외국인 투자의 매력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고도성장 과정에서 고임금과 부동산 가격 급등, 관료부패 등 문제점 노출되고 노동집약적 산업 역시 한계에 달하며 '경제특구'라는 의미는 크게 상실되며 경제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했다.

이에 선전은 노동집약산업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하는 '제2의 개혁개방'을 시도했다. 2012년말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도 선전이다. 그는 그곳에서 개혁과 혁신을 외쳤다. 당시 시진핑의 닷새 간의 광둥성 시찰을 당기관지 인민일보는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에 빗대 ‘신(新) 남순강화’라고 평가했다.

선전은 제2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개혁·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중국 지도부가 외치는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기치로 선전은 ‘창업 천국’이자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선전시의 창업기업 수는 인구 1000명당 73.9개로 베이징의 71.7개를 넘는다. 주장삼각주 지역에서 저가 짝퉁제품을 양산하던 단순 제조기지는 이제 선전의 IT산업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짝퉁 전자제품이나 팔던 전자상가였던 화창베이(華强北) 일대는 오늘날 대표 IT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창업혁신 분위기 속에 선전시 경제성장률은 중국 경기둔화 속에서도 오히려 가파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선전시 경제성장률은 9%를 기록하며 전년도 성장률(8.9%)도 웃돌았다. 지난해 선전 GDP는 1조9400억 위안으로 홍콩(2조3400억 위안)과의 격차도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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